최근 집에 있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쌓아놓고 찬찬히 살펴본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사들여 고이 간직한 당시 '창작과 비평사'  판 1권, 폐사지를 향한 사랑이 오롯이 담겼던 2권, 경북 북부 문화상에 한참 웃으며 읽은 3권. 설레어하며 4권을 기대하고 있을 때 중앙M&B판으로 나온 당시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1, ,2권(현재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4권, 5권) 


오랜 선생님의 외도로 인해 희미해진 아우라에 지칠 때 쯤, 목 메여 기다린 보람을 다시 느끼게 해 준 6권, 7권. 그리고 개정판내용을 다시 보고자 사들인 개정판 1, 2 권. 도합 9권이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유홍준 선생님께서 지으신 다른 평론집이며 평전, 미술사 책등은 제외한 숫자다.


이 시리즈는 숫자도 숫자지만, 이 시리즈만큼 나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채워준 책, 아니 TV 등 여타 매체를 비롯한 여타 미디어가 있나 싶을 정도다. 더군다나 다른 열성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시리즈만큼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 누빈 책이 있나 싶다. 소중히 간직했음에도 군데군데 바랜 모서리며 빗물, 흙물이 튀긴 자국은 이 책이 나를 비단 방 구석에만 머물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책은 나에게 책 속에 담긴 현장과 문화유산 사이로 누빌 수 있도록 해준 가이드이자 행동지침서였고 나아가 내 평소 삶과 문장의 방향이 되어 주었다.


어딜 가든지 그 배경과 얽인 일화 등을 살펴보는 인문지리학을 몸소 익히도록 한 것이며, 그저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몸소 겪고 느끼는데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 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얽힌 사람의 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 독자들의 하나인 나에게 전해준 소중한 깨우침이었다. 선생님의 소개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낑낑대며 읽어간 것 하며, 전공도 아니건만 역사, 미학, 건축, 디자인, 가구, 지리학까지 일반인 이상의 식견을 갖추고자 한 노력들은 모두 중학교 1학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서점에서 꺼내든 이후 형성되었다.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 교양인으로 길러냈지만 문화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워낸 것은 오롯이 선생님의 덕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타향 서울살이에 지쳐있다 '서촌'에 정착하게 된 것도. 아마도...


앞으로 선생님이 다룰 지평은 더욱 넓어진다. 일본 규슈, 나스카 편 2권을 시작으로 해외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를 돌아 우리 나라 아직 다루지 못한 지역에 대한 답사가 곧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규슈, 나스카 편은 고대사의 문화교류 현장이기도 하지만 근세, 근대를 지나서는 왜구가 발원하고 메이지 유신을 지나 '정한론'의 본거지가 되었던 지역. 선생님의 눈으로 대립과 침략, 분쟁의 역사를 넘어 교류와 화해의 실마리가 되는 지역으로 한,일 독자들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실 선생님께 배운 가장 큰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서로 어울리고 주고받고 나누고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사의 향연이 바로 문화라는 것. 어느 누가 먼저고 뒤쳐지고가 아닌 함께 어울림으로 사람 삶이 좀더 풍요로워진다는 것. 다름이 틀림이 아니란 지극히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것들.


끝으로, 독자로서 선생님께서 늘 건강하시어 오래오래 독자들의 바램처럼 소중한 답사기를 계속 발간해 주시는 것 외에 더 큰 바램은 없다(사실 죄송스런 고백이지만 '독자'로서 나는 '조중동'보다 더 선생님의 공무원 생활 퇴임을 반겼으니 ^^) 


나는 우연히 출판사 행사로 함께한 선생님과의 답사여행을 여전히 내 일생 가장 충만한 하루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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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요 2013-07-16 20:39   좋아요 0 | URL
부끄러운 제 글을 실어주신다면야 영광일 따름입니다. 선생님의 새 책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련지 걱정입니다만.

좋은 책들 내 주셔서, 그리고 창비 구독자로서 늘 창비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더욱 번창하세요.

ps. 창비 홈페이지를 통해서 선생님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데 창비홈페이지에선 언제쯤 구매가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