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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작년, 어느날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단편이 화제가 되었다. 우연한 경로로 그 전문을 전달받곤 단숨에 읽어 내렸다. 곧바로 메신저의 공유버튼을 눌러, 친한 친구들 특히 IT 기업에 하루 하루 '혁신'이라는 이름아래 고민이 많다 생각되던 친구에게 보냈다.
30분 후, 속속 메신저 스크롤들이 줄달음을 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처럼 갑자기, 준비도 없이 맞닥뜨린 장류진이란 작가의 소설이 한 권의 소설집으로 나왔다. 창비 SNS를 통해 들은 소식에 얼른 들어가 보니, 사전 서평단이라는 것이 있어 난생 처음 신청을 해 보았다. 순전히 먼저 읽고 싶은 마음이 앞서였다.
사전 서평단으로서 받아 본 '잘 살겠습니다'는 어느 직장인이 결혼을 앞두고 마주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직장내 관계망의 피상성과 경력과 스펙을 누구 못지않게 관리하며 살아온 화자의 현실재인식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재인식은 최근들어 동년배작가들로부터 부쩍 자주 살펴볼 수 있는 흐름에 일견 부응하는 작품의 하나로 분류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가만의 장점은 관계의 서늘함과 정서의 건조함이 잘 배합된, 소위 현장에서 정말 '굴러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현장성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판교라는 시공간에서 '혁신'과 '미래'라는 이름 하에 손쉽게 허용하고 자행하는 불합리를 드러낸 화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처럼 '잘 살겠습니다' 역시 광화문 어디쯤, 또는 테헤란 로 어디쯤에 있을 만한 오피스 빌딩에서 일어날법한 현장성이 독자를 소설 화자의 마음 어딘가로 빠르게 소환한다. 그라운드에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은 안다. 저 공이 어떻게 흘러 흘러 나에게 툭 건네질지. 그리고 공 한 번 터치하려고 수 많은 어깨싸움과 태클을 건너 뛰어야 할지를. 저 멀리 관중석과 감독 벤치에서 보이지 않는 잔디의 결과 흙냄새, 부딛친 어깨의 충격이 갈비뼈로 전해지는 느낌까지도. 우리는 일 좀 해본 '선수'의 언어를 통해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한편, 이 작품에는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기에 독자의 현실인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심상히 여겼던 청첩장 돌리기 미션, 애자일 스크럽 미팅에 남다른 촉감을 통해 걸러진 시선이 가미되었다. 우리가 얻은 이 시선을 통해 심상한 행위는 더이상 심상하지 않은 공론의 대상으로 발전한다.
감히 한 명의 독자로서 바라건데, 한 권, 한 권 상재해 나가는 작가의 소설을 통해 함께 그라운드에서 구르는 사람으로서 우리인식의 지평이 노동자로서의 계급정체성, 성 정체성 인식, 정치 주체로서의 인식까지 담아낼 수 있는 성찰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p.s. 어제 저녁 소설집이 도착했다. 2편의 단편만을 읽었기에 아직 6편이 남았다. 오랫만에 이번 주말이 설렌다. 하나씩 우리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