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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2019.7.7 읽다.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 첫 산문집이다 보니 데뷔 초기에서부터 근 10여년 넘게 작가로서 남긴 산문이 지층의 켜처럼 쌓여 있다. 팬이라면, 작가의 소설 외 시선 뿐만 아니라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하여, 첫 소설집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문학상을 하나 둘 씩 받으며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 떠오른 이력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듯 하다.
책을 읽으며 작가님의 글이 내 가슴에 박히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내 삶의 이력들과 묘하게 시공간이 겹쳐지는 순간들 때문인데..
내 기준으로 재구성 해 보자면 김애란 작가가 첫번째로 대상에 오른 대산대학문학상에 몇 년 후에 응모했던(보기 좋게 탈락했지만) 부끄러운 흑역사를 가슴에 품은 한 때 작가 지망생이자, 작가가 다닐 당시 남아있던 옛 안기부 건물(옆에 있는 의릉의 유네스코 유산 정비 사업으로 지금은 허문)을 산책하곤 했던 한 때 한예종 주변 반지하 방 차취생으로서, 팟캐스트 유혹하는 책읽기의 꿈타장이 운영했던 미아사거리 북카페 ‘꿈꾸는 타자기’(지금은 다른 분께서 인수한)를 자주 갔었던 손님이자, 고려대 앞 헌책방(지금은 사라진)을 기억하는 졸업생으로서 이 글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내 넉넉하지 못함과, 어리석음과, 치기와 허풍과 좌절과 설레임과 우정과 이상과 사랑의 공간들을 보드라운 필터로 감싸 되짚어 보게끔 해 준 글들. 그래서 혹여나 작가가 거닐었던 공간에 배경으로나마 저 멀리 총총대며 걸어갔던 가난하고 어리숙했던 시골출신 자취생으로 내가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게끔 하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공간들도 벌써 태반이 사라지고 교체되고 허물어졌다. 기억의 공간들이 무참히 자라지곤 하는 서울에서 그 사라짐을 애써 기억해주고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작가(게다가 지극히 훌륭한 글솜씨를 가진)가 있어 이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