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님은 나를 조금 칭찬해 주셨음 좋겠다. 

배명훈 작가님의 트윗 하나로 덜컥 사버린 이 단편집을 더욱 재미 있게 읽기 위해 정 작가의 네권의 책을 미리 찾아 읽었다.
한 권 한 권 곱씹어가며 익혀 내 텍스트 독해 주행을 '정세랑 모드'에 맞추고 싶었다.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을 거라는 흔치 않은 '감'이 이상하게도 이번에 있었다.  

식도락으로 비유하자면, 미슐렝 가이드에 소개된 프랑스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고 미리 비슷한 식당 네 곳을 미리 찾아 프랑스 코스요리의 특징과 순서를 익히고 간 샘이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면 맛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아니, 맛이 없어서는 절대 아니된다). 


자, 결론은 이렇다. 짐작컨데 내 투자(사실 따지자면 뭐 보잘것 없는 투자지만)이익률은 100%를 상회한듯 하고 정세랑 작가가 직조한 신묘한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버린 요 며칠을 선사해 주었다. 새로운 감각, 다른 삶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문학독자라면 2019년 이 책을 꼭 읽길 권한다. 그리고 '정세랑'이라는 이름을 앞으로 머릿속에 심어두고 신간 알림이 뜬다면 열심히 읽어두길 바란다.  

작가가 빚어낸 이 이야기들 속에는 '소수자의 긍정', '조화로운 연대', '기품있는 자존'이 살아 있다. 그것들은 굳이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야기들 속에 녹아들어 있어 캐릭터들의 행동과 말들이 물결치는 사이 시시때때로 윤슬처럼 빛난다. 다채로운 소재와 이야기 형식들도 새로워서 하나하나가 기대된다. '곶감'이 언데드라는 하나의 생각에서 시작한 언데드물에서는 보기 드문 유머와 상상력을,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개인으로서의 삶과 사랑을 버무린 이야기에서는 문학이 필요로 하는 외부인의 시선, 관점을 가지고 있어 반가웠다. 

배명훈 작가님께도 감사해야겠다. '처음엔 무려 창비가 낸 소설집 치고 표지가 좀 요즘 책답게 이쁘게 뽑았다 싶은 느낌 뿐이었는데, 작가님 언급 덕분에 의무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배명훈 작가님은 그저 믿고 따를 뿐이죠. 






    





처음의 미세한 스파크는, 관계사 세미나를 위해 가왜(假倭)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발견한 한 구절에서 발생했다. 가왜란 고려말부터 조선에 걸쳐 수탈에 지친 백성들이 거짓으로 일본계 해적인 척하며 약탈과 방화를 저지른 경우를 칭하는 말로, 드문드문 남아 있는 관련 사료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그 한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가여운 백성이 산과 바다와 계곡에 모여 거짓으로 왜적이라칭하니, 한탄할 뿐이다. 이와는 달리 은열(隱熱)과 그 휘하의 무뢰한들은 실제 왜인과 청인들을 끌어들여 서쪽 섬들을 잠식하여그 위세가 두려울 정도다.
– 『청도문집(淸文集)』

나는 가끔 건우 선배가 반자본주의 요정비슷한 게 아닐까 의심하는데, 건우 선배 같은 타입들이 부잣집에태어나 집안의 재산을 조금씩 사회로 돌려보내며 축적의 고도화를막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역사는 그 순간을 살았던 그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전근대사는 무기로 쓰면 안되고, 근현대사에 있어선 더철저하게 책임을 져야겠지. 민족주의자 말고 각자 나라에서 좋은시민들이 되면 지금과는 다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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