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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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5
산 책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요즘 세상에선 마치 멸종해 가는 종을 우연히 만나는 기적과 같다. 지하철에서 모두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풍경에 불안해 하는 감정을 나누는 일이다.

동지를 하나 더 만나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여기 적힌 책들의 리스트는 덤. 덕분에 읽어 볼 책 리스트가 또 한가득 늘었다.

집착하지 않고, 가장 격렬한 순간에도 자신을 객관화할 수있고, 놓아야 할 때에는 홀연히 놓아버릴 수 있는, 삶에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태도랄까. 그렇다고 아무런 열망도 감정도 없이 죽어 있는 심장도 아닌데 그 뜨거움을 스스로갈무리할 줄 아는 사람. 상처받기 싫어서 애써 강한 척하는것이 아니라, 원래 삶이란 내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잠시 스쳐 가는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눈부시게 반짝인 다는 것을 알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세상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기 마련. 반대급부로 내 인생에 주어진 안전망 같은 것들도 있다. 먼저했복해지기 위해 그리 대단한 것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님을 몸에익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행복이라고 해도 펄펄 끓어넘치고 불꽃놀이처럼 펑펑 터지는 종류의 것까지는 아니다. 그럭저럭 뜨뜻해서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고 있을 정도의 미지근한 온기다. 그래도 그 정도가 어디 쉬운가.
어린 시절의 나는 책 한 권만 있으면 싫은 상황, 싫은 곳에서도 용케 틀어박힐 구석을 찾아내어 책 속으로 잘도 피신하곤 했다. 거대한 우주선에서 탈출하는 구명정처럼, 내게는 그리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외부와 적절히 차단되는 안온한 작은 공간만 있으면 족했다.
물론 나이를 먹은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한 삶을 살고있지만, 험한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최후의 보루 하나는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든든하게 해준다. 다닐 도서관 하나만 있어도, 서점 하나만있어도, 몸을 누일 방구석에 쌓아둔 내 취향의 책 몇 권만 있어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무지는공포와 혐오를 낳는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든 언어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소음과 위협, 공포에 둘러싸여서 사는 것은 불행하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면 의외로 타협하고 수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에게도평화를 준다. 동시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준다. 미디어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오는 지금은 더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귀를 닫아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당장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세상에나 빼고는 다 정신 나간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성난 눈으로 부모를노려보는 아이가 진짜 하고 싶어하는 말을. 감기는 고통스럽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신호다. 열이 펄펄 끓는 것도 우리몸이 열심히 병과 싸우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여러갈등은 실은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다. 국론 분열이 사회를 살리기도 한다. 중간자들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양끝에서 몸을 던지이들이 이를 악물고 외쳐대는 욕설 때문에 이들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결국 가장 먼저 넘어져 뒹굴고 흙투성이가 될것은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교도소에서라도 이들이 제대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들 모두를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고, 이들 중 대부분은 언젠가는 이 사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인과 다른 지점에서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다양한 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간들의 오욕칠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고전은 거울이다. 그 앞에 서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내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동기로 정교한 거짓말을 한다. 그것만도 가리기 힘든데 참말조차도 다양한 이유로 부정확한 것이다. 뇌과학 발전으로 사건 관련자들의 기억을 CCTV처럼 재현하게된다 해도 그 기억이 뇌에 저장되는 과정에서 이미 일부는 동지고 일부는 왜곡하여 저장하기 때문에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다.

사형폐지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도 여기에 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야말로 가장 냉혹한 범죄자일 수 있다. 조국 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불타는 수사관과 법조인들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상범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라. 자신이 믿는 정의 때문에 분노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또는 틀렸어도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이런 책들을 읽을수록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결국 최첨단의과학이 알고자 탐구하는 대상은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감각은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지, 인간의 뇌는 어떻게작동하는지, 우리의 감정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진화되었는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우리의 도덕 감정은 어떻게형성되는지. 아주 오래된 존재인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고 연구하여 그중 극히 일부를 모방하고 재현한 결과물이 하나씩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알파고 이후 쏟아진 온갖 요란한 기사들보다 ‘멍때리기 대회‘ 기사가 더 혁명적인 함의가 있다고 느꼈다. 미래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지?‘라는 질문만 하지 말고 그런데 우리는 꼭 일을 해야 되나? 그런데 일이라는 게 뭐지?‘라는 질문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기계에게 일을빼앗기는 상상만 할 뿐 기계에게 일을 시키고 우리는 노는 상상은 하지 못할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에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과거 시대 사람들 눈에는그냥 쓸데없는 놀이나 미친 짓일 뿐일 거다. 혀와 배꼽에 피어싱해주는 직업, 프로 스케이트보더, 먹방 찍어 돈 버는 유튜버들,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유행의 패션 산업…… 인간이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유희의 축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전히 동굴 생활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쾌락은우리를 단조로운 동굴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쾌락의 카탈로그를 늘리고 늘리며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상력도 재미도 없는성공충들의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엔 즐기는 자들이이길 것이다.

미래는 결국 우리가 공유하는 이야기다. 자기실현적인 예언이다. 다수가 공유하는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것이 곧 법이되고, 도덕이 되고, 가치가 된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발전도 인간들의 무수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패턴화해 모방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현재의 사회부터 바꾸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쓸모가 없어진 인간을 어떻게 대우할지 궁금하면 지금 이 사회가 탑골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과 편의점 알바 청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이 낳을 부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의 분배 구조를 보면 된다. 더 먼 미래에 인공지능 또는 그와 결합한 신인류가평범한 인간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다음 여행을 꿈꾸고 있으면 지금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좀더 관대해진다. 여행자가 굳이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으니까. 여행자답게 가능하면 좀더 친절한 사람이 되려 애쓸 뿐이다. 어쩌면이번 삶 전체가 다 스톱오버일지도 모르겠다. 그전, 그후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구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구아수폭포를 보고 싶다, 남극에 가보고 싶다 등 크고 강렬한 비일상적 경험을 소원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쾌락에 불과하고,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사람이라고 16 마치 동화 『파랑새』를 연상시키는 일견 익숙하

사회적으로는 시민들이 행복한 습관을 누릴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야하다. 한강시민공원에서 걷고, 자전거를 타고, 연을 날리고,낚시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라. 공원과 도서관은 행복 공장이자 행복 고속도로다. 교육도 중요하다. 책을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요리를 하고, 다양한 운동을 즐기고,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행복한 습관을 찾을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이 영재교육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인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솔직한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찾아야 한다.

감히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이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 람, 마지막 순간까지 책과 함께하는 사람.

현재 쓸모 있어 보이는 몇 가지에만 올인하는 강박증이야말로 진정 쓸데없는 짓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필요하고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쓸모 있을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게 진짜로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도리가 없다.
물론, 슬프게도 지금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고 모든 것이 언젠가 쓸모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로또 긁는 소리다. 하지만 최 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면, 이 불확실한 삶 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쓸모 있는 일을 이미 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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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1-1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스 책방에서 진행하는 김하나의 측면돌파 책읽아웃 들어보세요.
오늘 팟빵에 올라 온 문유석의 인터뷰를 듣고 쾌락독서 리뷰가 있나 싶어 찾아보다가 여기 왔네요.
엄청 재미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