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와 수수께끼
랜디 코미사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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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에서처럼 인생과 사업에 언제나 존재하는 선택의 갈림길, 그 선택의 길에서 깨달은 삶과 직업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는 지침서!

"계란이 하나 있다고 칩시다. 이 계란을 1미터 아래로 떨어뜨리되 깨뜨리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독특한 책은 바로 어느 승려가 던지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떠나는 인생 여행이다. 실리콘 밸리의 CEO인 저자는 20년 이상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해온 최고 경영자이자 벤처 캐피털리스트이다. 그는 독특한 행동과 생각으로 실리콘 밸리에서도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통한다. 이 책은 그가 들려주는 인생과 비지니스에 대한 유쾌한 성공 철학이다. 벤처를 인생을 여행하는 것으로 비교하는 랜디는 그래서 여행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 책은 그가 낯선 땅을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승려를 만나 묘한 수수께끼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의 대한 답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온라인 장의사 벤처 사업을 창업하려는 가상의 인물 레니를 통해 승려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이자 성공 철학서이자 인생 지침서이다. 랜디와 가상의 인물 레니와의 대화 속에서 실리콘 밸리와 그 게임의 법칙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언뜻 딱딱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 책을 이틀만에 다 읽을 정도로 굉장히 흡입력이 강한 책이다. 무엇보다 여타 비지니스 철학서와는 달리 소설 형식에 간결하고 독특한 문체가 읽는 재미를 살려준다. 랜디는 성공을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언지를 래니와의 대화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자연스럽게 피력하며 삶과 비지니스의 돌파구를 제시해 준다.

감명 깊었던 말은 의지와 열정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열정이란 어쩔 수 없이 어떤 대상에 끌려드는 것을 말하지만 반면 의지란 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일로 떠밀려가는 것을 말한다' 즉 성공의 의지만으로는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가서 수수께끼의 정답이 밝혀진다. 벤처는 곧 인생이고 인생은 곧 여행이다. 여행은 다른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기쁨인 것이다. 비지니스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재정이 아니라 애정이다. 그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뻗어나갈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나 기대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 자체에서 행복과 만족, 보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느날 문득 삶이 지치고 힘들때, 꿈을 잃어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을때 이 책은 분명 단비같이 메마른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실리콘 밸리는 (Silicon Valley)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타 클라라에 있는 유명한 반도체(semi-conductor)생산지를 말하며 다수의 반도체 기업이 모여 있고 세계 제1의 생산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마이크로프로세스 공장, 칩 제조실, 소프트웨어, 인터넷 사업지원 등 유행의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가 승자가 좁혀지면 또 다른 사업의 리더가 되고 싶은 벤처 지망생들이 순식간에 밀려와 빈자리를 매우는 곳. CEO(Chief Executive Officer)란 최고 경영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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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 - [할인행사]
M.나이트 샤말란 감독, 브루스 윌리스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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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는 한 마디로 1999년 최고의 충격이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 영화가 개봉 되었을 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제작자 측에서 철저히 비밀 유지를 했다고 함) 무방비로 영화를 감상하게 된 사람들은 태어나서 최고로 황당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말 그대로 두 눈 뻔히 뜨고 완전히 속은 느낌이었다. 영화는 분명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되고 이제 끝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영화는 차분히 정리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의 기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리며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플래쉬 백과 함께 터지는 충격적인 반전은 관객 전원을 바보로 만들었다. 관객들은 그 믿을 수 없는 결말에 '과연 저것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 하게 되었고 신들린 듯 또다시 표를 구입해 극장으로, 극장으로를 외쳤다. 관객들로 하여금 꼭 두 번 이상 보게금 만드는 마력이 있는 영화. 덕분에 영화는 개봉 5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라는 대 신기록을 세우며 북미지역에서만 2억 7천만불이라는 경이적인 흥행기록을 수립한다. <식스센스> 그 마지막 5분의 충격은 마치 95년 개봉되어 전 세계 영화인들을 K.O시켰던 가공할 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유주얼 서스펙트>때도 분명 그랬다. 관객들은 모든 것을 결론 짓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고 그 순간 마지막 5분의 충격은 안심하고 있던 관객들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케빈 스페이시의 발걸음이 선사했던 그 기막힌 반전의 황홀경.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위대한 반전이 <식스센스>에서 다시한번 부활했던 것이다.

그 대단한 반전때문인지 흔히들 <식스센스>를 반전 빼면 시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제이슨 친구는 <식스센스>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뒤집어 버리는 엄청난 반전의 충격 뒤에 가려져서 쉽사리 인식하지 못했던 영화의 진짜 매력을 이제부터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이제부터 영화의 반전에 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겠지만 간접적인 언급은 있을 수 있으니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과연 있을까?)이라면 이쯤에서 리뷰 읽기를 그만두시길...

이 영화는 사실 유령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이는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말콤 박사이지만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이는 꼬마 아이 콜 이다. 이제 잠깐 콜의 이야기를 해 보자. 콜의 눈에는 유령이들이 수시로 보인다. 그것은 육감이 아주 발달된 특별한 능력이다. 그 능력 덕분에 콜은 반 아이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더구나 콜에겐 아버지가 없다. 또 어머니도 바쁜 일과때문에 아이에게 세심한 신경을 쓸 수 없다.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만의 비밀을 홀로 간직하게 되고 쉽사리 어머니께 말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는 곧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미국의 파괴되어가는 가정사를 대변하는 전형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러한 환경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버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소년은 스스로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홀로 고민하게 되고 공포와 고립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콜은 자신의 명성이 과장되어진 빈껍데기였음을 깨닫고 번뇌하는 심리치료사 말콤 박사와 조우하게 된다. 이들의 만남으로 인해 내러티브는 사실상 안정된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해 간다는 보편적인 플롯으로 접어든 것이다.

말콤 박사는 화려했던 자신의 인생경력이 한 사건을 계기로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심리치료사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져든다. 나는 누구인가, 심리치료사이다. 심리치료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 주는 일을 한다. 상까지 받은 나는 이제 껏 상처받은 이들을 제대로 치료해 주었던 것인가, 하지만 나에게 치료를 받았던 이가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껏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치료했던 거란 말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정도 뒤로하고 깊은 고뇌에 시달리고 있던 말콤 박사는 콜을 통해 자신의 지난 과오를 회복하고자 한다.

샤말란 감독은 영화를 굉장히 차분하고 안정되게 이끌어간다. 다소 지루하리만치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기법이었다. 정말로 제이슨 친구는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 도중에 깜빡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희미하게 놓쳐버린 몇 몇 주요 복선장면들을 재 확인 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다시 보아야만 했으니~!

이 영화의 조상이 <엑소시스트>와 히치콕의 영화들임은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더라도 쉽게 수긍이 갈만한 사항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소시스트>도 히치콕의 스릴러들도 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이다. <엑소시스트>의 90년대 판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식스센스>는 오컬트 무비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샤말란 감독은 기존의 장르적인 연출법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비법으로 영화에 기묘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한 편의 심리드라마 혹은 휴먼드라마처럼 기복의 변화없이 침착하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관객들로 하여금 금방이라도 뭔가 근사한 장면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하게 하지만 끊질길 정도로 차분한 호흡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의 거리에는 마치 말콤 박사와 콜 외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없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식 스쳐지나가는 무존재의 존재인 유령들이 더욱 강렬한 느낌으로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일게다. 샤말란만의 이러한 독특한 호흡법은 영화의 적재 적소에서 보석같이 빛을 발하다가 최후에 이르러서는 폭발하듯 최대치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것이 샤말란 식 충격효과인 것이다.

샤말란의 각본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흔한 소재를 가지고도 관객들의 호흡을 자유 자제로 조절하며 결국 대중들의 감정을 기가 막히게 이끌어내는 탁월한 스토리 라인은 가히 천재적이다. 반전을 제외한다면 <식스센스>의 스토리는 그저 뻔한 심리극 혹은 가족애를 불러일으키는 디즈니용 휴먼드라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슷한 예로 <스튜어트 리틀>역시 흔하디 흔한 가족용 드라마라는 소재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샤말란만의 재기 넘치는 각본덕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단 재미면에서 말이다~!

샤말란은 조용히 영화 곳 곳에 복선을 숨겨두었다. 그리고 콜의 특출한 능력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저 소외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차츰 존재감이 짙은 유령들을 등장시키며 사건에 대한 모호함을 시각적인 공포감으로 흐려놓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진실에 관한 조금의 갈피도 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선 마지막에 가서야 결정타를 날린다. 그리고 관객들이 유령이란 존재에 대한 놀라움, 기이함, 경외감에 빠져 있을 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말하며 감동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인도 출신의 젊은 감독, 샤말란. 그는 애초부터 인간의 정체성과 고립에 관해 끝없이 탐구하는 감독이었다. <식스센스> 이전의 두 편의 영화 <분노의 기도><와이드 어웨이크> 역시 이러한 사상에 기초를 두고 만든 영화이며 그의 후속작이었던 <언브레이커블>이라든가 최신작 <싸인> 역시 비슷한 주제와 갈등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그는 <식스센스>를 통해 오컬트 영화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에서 접근해 보고자 했던 것일게다. 성장기에 막 접어든 콜이 느껴야만 했던 유령들에 대한 두려움은 곧 그 시기 소년들이 겪게 될 미지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기댈 수 없는 홀로서기에 대한 불안감과 세상 속에서 과연 나는 누구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일련의 인생과정이다. 소년은 결국 두려움의 존재에 맞서 과감히 부딪히게 되고 해결방안을 찾는다. 비로소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콤 박사는? 그도 역시 정체성과 소외감에 고뇌하는 인간이다. 화려한 명성들이 거품에 불과함을 깨닫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지금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는 결국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숙제이다.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여기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또, 대답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수많은 타인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 나 혼자 떠들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은 상실 당했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가설 조차도 내가 인간이고 그래서 인간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오류성 결론일지 모른다. 아예 처음부터 나란 존재는 없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삶과 죽음의 뚜렷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 과연 내 얼굴은 존재하고 있을까? 만약 그 질문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당신이 이제 껏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정서적 관념들에 위배되는 지독한 반전이라면,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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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 (2disc) - 스펙트럼 인기외화 할인20선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제시카 하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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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호러영화를 말할때는 호러스릴러의 원조인 <사이코>나 슬래셔무비의 시초 <할로윈><13일의 금요일> 혹은 가장 무서운 영화로 거론되곤 하는 <샤이닝><엑소시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아니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크림>이나 혹은 거슬러 올라가 같은 감독이 만든 <나이트메어>등을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호러영화를 두루 섭렵한 매니아들이라면 아마도 이러 헐리웃 식의 틀에박힌 공포영화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최근 세계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급부상하고 있는 일본 호러영화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거나 아니면 스파게티 호러의 원조인 이태리 호러의 잔혹미학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태리 호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마 다리오 아르젠토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며 적어도 <서스페리아>라는 작품의 제목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서스페리아>가 세계적으로 미친 충격의 강도는 컸다. 국내에서도 <서스페리아>의 흥행성적은 서울에서만 무려 50만명의 관객동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당시의 배급환경과 극장수를 감안해 볼때 지금의 서울관객 150만명과 맞먹는 수치라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13일의 금요일>이나 <헬나이트>등이 30만 선을 동원한 것에 비교한다면 낯설디 낯선 이태리 영화가 국내에서 세운 기록적인 흥행은 가히 사건으로 기록될 만 했다.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마디로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기가 막힌 경험이자 이제껏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공포의 최고점이었다. 시작부터 관객의 혼을 빼놓는 극한의 잔혹함은 여성관객들의 비명소리로 극장안을 떠나가게 했으며 강렬한 사운드는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잊지 못할 끔찍한 악몽을 선사했다. 극장을 나서는 그들은 <서스페리아>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날 줄 몰랐으며 그들에게 제대로 된 공포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다리오 아르젠토에 관심이 모아졌다. 비로소 호러 매니아들 사이에서 마카로니 호러의 발견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태리의 히치콕이라 불리우는 현존하는 최고의 공포영화감독 다리오 알르젠토의 1977년도 작품 '서스페리아'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럽을 대표하는 호러무비다.

흔히들 마카로니 호러무비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서스페리아><데몬스><아쿠아리스>로 대표되는 마카로니 호러란, 유럽의 공포영화들이 미국으로 수입되어 지면서 붙여진 유행어 다.

미국호러물이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이태리나 스페인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미국식의 거대한 호러물과는 달리 색다른 스타일과 미학적인 공포로 미국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그무렵 이태리에선 마리오 바바, 루치오 풀치, 다리오 아르젠토가 미국의 기계적인 슬래셔무비와는 느낌이 다른 예술적인 호러무비들로 그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공포영화를 만들어 내며 수준높은 고품격 호러란 이런 것이라는 일침을 가했다. 그것은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이태리 호러 3인방이 만들어낸 호러물은 분명 헐리웃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그것들과 차별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호러세계였다.

호러 3인방 중 단연 최고의 명성을 떨친 감독이 바로 다리오 아르젠토 이며 <서스페리아>가 바로 그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다.

<서스페리아>를 논할 때에는 크게 세 가지를 손 꼽는다.

첫번째는 바로 역대 호러영화사상 단연 최고라고 회자되어지는 충격의 오프닝 씬이다. 이루 다 설명이 되지 않을 잔인함과 충격의 극한을 달리는 아트한 살인장면들은 보는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함과 동시에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금 만든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만큼 타공포영화들과는 비교도 안될 강렬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96년 만들어진 <스크림>의 오프닝씬이 잘 만들어졌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서스페리아>의 오프닝을 패러디 한 것이며, 그 충격의 강도면에선 <서스페리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두번째로 영화 전반에 걸쳐서 풍겨져 나오는 환타스틱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들수 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은 글로서 설명하기가 힘든데,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상당히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칼라플한 악몽속을 허우적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붉은 색깔의 조명들과 극단적인 원색의 색체들은 이태리의 유명한 락밴드 '고블린'의 기괴한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서 공포의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특히 고블린의 테마음악은 강렬하면서도 극도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그로테스크함이 뿜어져 나와 보는 이를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고간다. 공포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곡임엔 틀림없다.

세번째로는 이 영화가 유명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잔혹한 살해장면들이다. 그 잔혹한 살해장면들은 다리오 아르젠토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함의 한계를 뛰어넘어 예술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 어떤 호러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그만의 살해장면은 보고난 후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충격적이다. 과연 다리오 아르젠토가 아니면 결코 흉내낼 수도 없는 아트호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서스페리아>의 줄거리는 수지라는 여자가 발레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미스테리한 일들을 겪게 되다가 결국 학교에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그다지 독특할 게 없는 내용이다. 마녀라는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헐리웃 슬래셔무비와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듯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서스페리아>의 미덕은 결코 스토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매니아라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초반부의 강렬한 살해장면 이 후 후반부로 갈 수록 약간 처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과, 마지막을 너무 성의없이 끝내버린 것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다리오 아르젠토의 진정한 최고걸작은 <서스페리아>가 아니라 그보다 2년전에 만든 <프로폰도 로쏘>임이 틀림없다고 본다.

단 이 DVD타이틀은 잔혹한 장면이 대체적으로 어둡게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 불만스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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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어린 시절의 기억속으로~

'창가의 토토'는 뒤늦게 발견한 보석같은 작품이었다. 일본에서만 900만부가 팔리며 전세계적으로 200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지만 '창가의 토토'라는 작품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써핑으로 알게된 이작품을 곧바로 구입한 후 삼일 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감동을 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류의 책들 중 국내에 나와있는 작품들은 대다수가 감동을 억지로 주기 위한 설정들이 많다. 가난한 달동네, 희생적인 어머니, 삼라만상을 통달한 듯한 멋진 아버지, 이웃의 불우한 아이들, 고아, 미치광이 노인네, 술주정꾼 등을 포석처럼 깔아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다 '좀머씨 이야기''앵무새 죽이기''새의 선물'등이 이미 이루어 놓았던 문학적인 미덕들을 교묘히 차용해서 뿌려놓는다. 이런 류의 책들은 이제 질린다)

'창가의 토토'는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들보다 5,60년 전 아이들의 일상을 너무나도 섬세하고 세밀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마치 그 시절로 확 돌아가 아이들 바로 옆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공감이 간다. 이는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을 어린 시절 기억들을 아우르고 있어서 전세계 어린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자국적인 것인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어설프게 외국 성장소설 배끼려다간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비빔밥이 되고 만다)

지극히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약 50개 정도의 에피소드가 있다) 토토가 학교에 입학해서 새로운 학년을 맞을 때까지의 일상들을 디테일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평범한 에피소드 속에서 삶의 작은 교훈들과 올바른 교육의 의미등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특히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등은 굉장히 이채로우면서도 날카롭다. 그리고 마지막장에 그것은 적지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세계 3대 성장 소설로 꼽고 싶다. (좀머씨 이야기, 앵무새 죽이기, 창가의 토토) 읽다보면 아이의 심정과 완전히 일치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p.s 일본 만화 중에서 '모모는 엉뚱해'라는 작품이 있다. '창가의 토토'를 읽는 내내 모모는 엉뚱해가 떠올랐다.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다루었다는 점이 비슷했다. 모모는 엉뚱해는 거기에다 유머와 오락적인 면이 가미되어 있다. 여유가 된다면 이 만화도 꼭 추천하고 싶다. (이작품은 일본에서는 '짱구 시리즈'보다 더 유명하고 인기있는 장수 만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엇비슷하게 배낀 유사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영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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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정신을 뒤흔든 통렬한 메시지!

 

특별한 홍보 없이도 지금까지 꾸준히 매년 수십만 부 이상씩 팔리고 있는 초베스트셀러. 필자로선 이 책을 너무 늦게 읽었다는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상당히 멋진 작품이었고 필사까지 해 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진 소설!

퇴학을 당한 홀든 콜필드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상의 부조리와 추악한 현대인의 단상, 그리고 꽉 짜여져 돌아가는 틀에박힌 세상의 질서와 권위에서 느껴지는 혐오감들. 이 모든 것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성장기 소년의 눈과 입을 통해 적나라하고 거칠게 모사된다. 그 느낌은,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통쾌하다!

1951년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문단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셀린저 특유의 거침없는 언어와 사회성 짙은 메시지, 성장기 소년의 예민한 심리 성찰 등으로 출간 즉시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젊은이들에겐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 반면 청소년 들에겐 금서가 되어 버렸다. 노벨상 수상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극찬을 했다.

한번 책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주인공 콜필드의 내면 세계로 동화되며 겉잡을 수 없을 속도로 빠져든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기 때문에 이런 류의 소설에 거부를 느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낼만큼 멋진 작품이다!

반 세기 전에 출간된 이 소설이 지금까지 전 세계 젊인들의 정신세계를 주도하는 이유는 콜필드가 바라본 세계가 세대를 초월한 세상의 부조리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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