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빌어먹을

 

박남철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하지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 80년대 해체시의 대표적인 3인, 장정일, 황지우, 박남철 시인 중 위 '주기도문, 빌어먹을'은 박남철의 주기도문에 대한 패러디 시이다. 박남철은 이 시를 통해 '신성 부재의 타락한 현실'을 냉소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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