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우마서먼, 루시리우, 데이비드 캐러딘, 쿠리야먀 치아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속으로 들어간 사무라이 잔혹미학

 

 

 

<킬빌>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이자 그가 <재키 브라운> 이후 6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그런 만큼 그의 '헤모글로빈의 시'를 기다려 온 많은 팬들로부터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관심과 비평의 중심에 놓이게 될 작품이다.

필자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의 B급 액션에 녹아 있는 폭력미학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또 개인적으로 공포영화 마니아라 피가 난무하는 잔혹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스토리가 복잡한 영화는 싫어하는 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킬빌>은 제작 과정에서 부터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영화였다. <킬빌>은 복수라는 가장 간단명료하면서도 매혹적인 테마로 장장 3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피와 광기로 물들인다.



조직을 떠난 킬러, 브라이드는 결혼식 날 조직의 보스 빌로부터 피의 응징을 당한다. 그리고 4 년 뒤 그녀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킨 다섯 명의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간다. 이 간단한 스토리에 타란티노는 자신의 주 특기인 B급 액션 영화의 모든 매력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킬빌> 1부에서는 타란티노가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청엽옥 결투에서 일본 사무라이 영화가 가진 칼 끝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매력과 비장함, 그리고 사지절단의 잔인함을 모두 보여준다. 그는 사무라이 영화에 매혹당했던 무명 시절의 기억들을 폭력과 블랙 유머의 펄프픽션으로 포장해 과도한 액션의 연속에서 분출되는 흥분과 쾌락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분명히 극과 극으로 찬반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오마주니, 짜집기니를 운운하기 전에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보다 가시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예전부터 타란티노의 가장 큰 특기 중 하나는 장르와 관습을 해체하고 재조립해서 전혀 다른 색깔,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버리는 솜씨라고 생각했다.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픽션>에서 그는 시간의 재조립을 통해 내러티브의 파괴를 시도했고 수 십년 동안 내려오던 장르적 고정 관념을 깨버렸다. <킬빌>에서 그는 사무라이 영화에 대해 간직하고 있던 열정들을 미국 웨스턴 무비의 내러티브 속에 중화시켜 국적불명의 독특한 액션영화를 재창조한다. 그 결과 적어도 관객의 눈을 지루하지 않게 할 폭발적인 애너지의 오락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개성강한 개릭터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의 향연과 사건의 근원에 대한 감추어진 사연들은 유쾌한 보너스다.

이번 영화에는 그의 예전 작품들에 있었던 대중 문화에 대한 블랙 코미디적인 철학은 없다. 그저 한 여인의 복수에 관한 잔혹한 이야기만 있다. 복수는 강렬하면서도 단순해야 한다. <킬빌>은 바로 그러하다. 청엽옥에서의 결투가 그러하고 고고와의 대결이 그러하며 오렌 이시이와의 진검승부가 그러하다. 타란티노는 그 위에다 추억의 명곡들을 향수처럼 깔아놓아 잔혹한 폭력 뒤에 쉬어갈 수 있는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는 역시 장르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탁월한 역량가임에 틀림없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러닝타임이 좀 길다는 것이다. 너무 길어서 반으로 자른 것이 1시간 50분인데, 사실 오락 영화로서는 좀 긴 러닝타임이 아닌가 싶다. 시종일관 즐거워야 할 영화임에도 액션과 액션의 공백이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액션의 임펙트가 너무 강한것에 대한 반작용인 듯 싶다. 약 15분 정도 짧았더라면 더욱 타이트한 오락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시각적 즐거움을 표방하고 나선 영화라면 액션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러닝타임을 최대한 짧게 해야 치고 빠지는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킬빌>은 오락 영화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필견의 가치가 있는 영화다. 우마 서먼이 노란 추리닝을 입고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사지절단하는 일당백의 결투씬과 라스트 루시 리우와의 눈밭에서의 진검승부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지나친 폭력이나 단순한 오락영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장르적 특성을 훤히 꿰뚫고 자유자재로 변형시켜 폭력미학으로 승화시킬줄 아는 타란티노의 네 번째 펄프픽션과 조우해 보기를 권한다.

 

살인교수 | 200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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