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윌리엄스

공포영화가 낳은 슬래셔 무비의 돌연변이!

3일만에 각본을 완성한 캐빈윌리엄스는 말그대로 공포영화광이다. 아마도 그는 세상의 모든 공포영화들을 빼놓치 않고 섭렵했을 것이며 인상적인 플롯들을 줄줄이 꿰찰 정도로 대단한 기억력을 가졌다.

<할로윈>과 <프롬나이트><나이트메어>를 보며 자란 세대인 그는 일찌기 슬래셔 무비의 모든 법칙들을 마스터 해버린다. 그리고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져버린 장르의 법칙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할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해나간다.

젊은 천재의 결실은 <나이트메어>등 16편의 공포영화만을 만들어 온 호러거장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공포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웨스 크레이본은 <스크림>의 시나리오에 완전 매료되고 캐빈 윌리엄스와 함께 멋진 합작품을 이룩해 낸다.   

<스크림>은 재기발랄한 영화이다. 웨스와 캐빈 커플은 반복되어온 공포영화의 법칙들을 줄줄이 꿰차고 앉아서 이를 천재적으로 조율해 낸다. 장르의 법칙을 과감히 깨트리며 재창조한다. 또한 일부러 반복하기도 하며 허를 찌른다. 호러무비의 해체와 재조립이라는 기막힌 승부수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지는 라스트까지 관객들은 아무도 살인마를 예상할 수 없었으며 설사 예상했다 치더라도 절대로 알아맞출 수 없는 기막힌 반전으로 그들을 경악케했다.

감독은 거장답게 섬세하고 강렬한 연출력으로 박진감 넘치면서도 곳곳에 자신만의 독특한 유머들을 배치해 둔다. 게일과 시드니의 관계를 통해 메스미디어의 횡포를 우스꽝스럽게 고발하기도 하고, 괴팍한 교장을 통해 기성세대를 조롱하기도 한다. 또한 <나이트메어>는 1편빼고 모두 꽝이라던가, 교장의 죽음직전 프레디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청소부(감독 자신)를 통해 매너리즘의 관습조차 기묘한 위트로 활용해버린다.

하지만 역시 수훈은 빼어난 각본의 힘에 있었다. 장르의 전복은 오프닝부터 그 빛을 발해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주도면밀하게 위험장소들을 확인해 나가던 교장이 살인마가 파놓은 도저히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함정속에서 어이없이 죽어버리는 대목은 기존 호러무비(기성세대)에 대한 통렬한 반격이었다. 교장의 죽음과 함께 이어지는 대단원의 혈전은 정교한 각본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영화의 하일라이트이다. 모든 법칙들은 무의미해지고 그 때까지 <스크림>을 지탱해온 재기발랄한 규칙들마저도 또 다시 무너지며 혼동과 공포속으로 몰아간다. 이러한 재치넘치는 상황설정들은 <스크림>의 속편으로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는 장르의 법칙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그 위에 <사이코><엑소시스트><나이트메어>등 유명한 호러영화들을 절묘하게 패러디하며 동시에 전복시킨다.

공포영화를 보고 자란 캐빈 윌리엄스는 그 토대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해낸 것이다. 그것은 <스크림> 이 후 그가 쓴 모든 시나리오에 그대로 적용된다.

<스크림>과 함께 90년대 후반 슬래셔 무비의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 역시 호러무비에 대한 캐빈 윌리엄스의 자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공포의 여대생 기숙사>에서 기본 초안을 빌려온 듯한 <나는 네가...>는 <스크림> 때처럼 공공연한 조롱은 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때문에 관객들은 더 헷갈린다. <스크림>에 익숙해져버린 관객들은 이번에는 그것을 역이용하는 캐빈의 재간때문에 <나는 네가...>에서 역시 범인을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양들의 침묵><제시카의 추리극장>등을 인용하기도 하며 공포영화 매니아임을 자부했다.

<나는 네가...>역시 세계적으로 1억 5천만불이라는 경이적인 흥행을 세우며 그를 일약 스타 각본가로 만들어준다. 당시 그는 <나는 네가...> 같은 흥행각본은 1주일에 한 편씩 1년에 50 여편도 만들어 낼 수있다며 자신의 재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 말과는 정 반대로 그 후 그의 행보는 급격하게 비탈길로 치닫는다.

<스크림2>까지의 시나리오를 쓴 후 그는 <할로윈H20><패컬티>를 통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이 각본과 감독을 겸한 작품 <팅글부인 가르치기>를 통해 완벽하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관습의 전복과 해체라는 그만의 방식은 더이상 십대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공포영화로서의 긴장감도 잃게 된다. 때를 같이해서 오컬트 무비의 부활을 멋지게 알린 <식스센스>의 메가톤급 흥행기록은 <스크림>식의 웃기는 호러무비를 깨끗하게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크림>때의 신선한 충격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아직 캐빈 윌리엄스의 재능을 저버리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제이슨 친구의 경우도 그러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그가 각본을 쓰면 분명 뭔가가 틀릴 것이다. 그가 손을 대지 않은 <스크림3>과 <나는 네가... 2>가 신랄한 혹평과 함께 흥행에서도 부진했던 것처럼 <스크림> 매니아들은 캐빈의 시나리오를 목말라하고 있다.

캐빈의 활동력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슬래셔 장르는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지금은 <디아더스><왓라이즈비니스>등의 유령영화에 가려서 완전하게 쇠퇴해 버렸다. <발렌타인><컷> 같은 졸작 슬래셔 무비들때문에 슬래셔 무비는 더욱 바닥으로 떨어져버려 기사회생하기 힘든 지경까지 와 버렸다. 아니 공포영화 자체가 시시해져 버린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캐빈이 있다. 우리는 그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캐빈 윌리엄스의 천재적인 두뇌가 다시 움직일때 비로서 슬래셔 장르는 다시한번 부흥기를 맞게 될 것이고 공포영화의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호러매니아들은 그것은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