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 초특가판
타키타 요지로 감독, 히로스에 료코 외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사실 필자는 <러브레터><철도원><4월이야기><쉘위덴스>를 통해 일본의 멜로물 혹은 드라마가 가지는 독특한 강점과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러브레터>의 경우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멜로물이라고 밖에 더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기발한 설정과 뛰어난 각본, 세심한 연출력뿐만 아니라 나카야마 미호의 매력이 영화속에서 충분히 발휘되어 강렬한 힘을 발휘했고, 시종일관 만화같은 코믹터치와 감수성으로 일관하던 영화가 라스트에 이르러서 심금을 울리는 감동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과 함께 진정한 첫사랑의 비밀이 밝혀지는 대목은 완벽하다고 밖에 말할수 없습니다.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멜러물 입니다.
감동의 명작이라고 칭송하던 <미워도 다시한번>을 보고도 전혀 감동을 받지 않았던 제이슨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기위해서 처절할 정도로 가혹한 운명을 끊임없이 가중시키며 혹독하게 괴롭히는 방식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래도 안울래?'식의 억지 눈물짜기를 굉장히 싫어하죠.
하지만 국내에서 만들어진 멜로물의 대부분이 이 <미워도 다시한번>식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분위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웬지 멜로물 하면 시종일관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만 흘리는 어둡고 축축하고 무거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중후반부 부터는 꼭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기가 일반이죠. 비련의 여주인공은 꼭 '선생님,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죠?'를 외치고 굳은 얼굴의 중년 신사는 '이것이 우리의 가혹한 운명인가보다!'라며 고개를 떨구는 식으로.

그래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멜로물은 <8월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죽음전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랑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죽음과 사랑이라는 두가지 테마 모두를 적절하게 감싸면서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긴긴 <미워도 다시한번>의 그늘에서 벗어날수 있었던 작품이죠. 한국 멜로물의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온 작품이었습니다. 우선, 심각하게 갈등하며 눈물로 일관하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작품은 <번지점프를 하다> 정도였습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아무튼 우리나라 멜로영화의 역사와 비추어 볼때 <러브레터>는 그 분위기부터 굉장히 틀리다,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멜로영화임에도 코미디를 방불케하는 코믹요소가 가득했고, 만화같은 감수성과 밝고 유쾌한 터치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라스트에 눈덮힌 산위에서 끝없이 '오겡끼 데스까?'를 외치는 나카야마 미호의 모습은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절묘한 스토리텔링이 멜로영화에서도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히로스에 료코는 나카야마 미호, 마츠 다카코를 이을 차세대 여배우로 <비밀>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뤽베송의 영화에 출현하기까지도 한 최고의 인기 스타 입니다.(뤽베송은 <비밀>에 극찬을 보내었으며 이미 <비밀>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들인 상태)
또한 <비밀>은 99년 개봉되었을때 엄청난 관객동원을 기록했으며 아시아 전역에 비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으며 일본에서는 료코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화제작입니다. 23회 일본 아카데미에선 최우수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남우주연상, 그리고 최우수 조연 여우상을 휩쓸기도 했죠. 료코는 같은 해 개봉했던 <철도원>으로 이미 최우수 조연 여우상을 거뭐쥐기도 했었죠. 네티즌들 사이에선 역대 일본 최고의 영화다,라는 찬사가 끊이질 않았으며 <러브레터>와의 비교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러브레터> <비밀>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비밀>은 알다시피 빙의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사고로 딸의 몸속으로 엄마의 영혼이 들어가게 된다는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딸 모나미의 몸으로 들어온 아내 나오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남편 헤이스케는 모든 것을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합니다.
이 영화를 칭찬해 주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자칫 위험한 선을 넘어 무겁고 낯뜨겁게 진행될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시종일관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딸의 몸속으로 들어온 아내라는 대단히 파격적인 소재임에도 금기의 선을 넘지않는 제작진의 의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약 선을 넘었다면 영화는 근친상간이라는 불륜이 되었겠고 그것은 곧 폐륜적이고 더티한 질낮은 성인 멜로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러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멋진 스토리텔링 능력과 뛰어난 연출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불륜이라는 어두운 분위기를 일체 배제한, 그래서 청소년들도 부담없이 볼 수있는 밝은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사실 선을 넘기기란 쉽죠. 자극적인 영화가 되어버리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관객들을 붙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선을 넘기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비밀>은 대단히 코믹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합니다. 딸의 몸이 된 나오코가 펼치는 학창생활과 남편 헤이스케와의 미묘한 갈등이 일본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무장해서 재미를 선사합니다. 조금은 과장된 듯한 튀는 캐릭터들과 뜻밖의 사건들로 이야기는 중반을 넘길때까지 끊임없이 폭소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워낙에 원작소설이 탄탄한 구성을 지닌 탓에 영화는 단한번의 늘어짐도 없이 오히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전혀 예측불허의 또다른 국면을 맞게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오코는 점점 모나미 화가 되어가고 그래서 모나미로소의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게되죠. 헤이스케의 입장에서도 아내가 그립기는 하지만 무리하게 붙잡을 수만은 없는 실정인지라 모나미의 몸을 가진 나오코가 완전히 모나미로서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더 이상 줄거리를 얘기할 수는 없겠네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예측할 수 없는 반전들이 꼬리를 물다가 마침내 가슴찡한 최후의 반전까지, 모든 것을 비밀로 하겠습니다. 직접 감상해보세요~!


끝으로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헤이스케가 모나미의 몸이 된 나오코를 자신들의 첫 데이트장소인 등대로 데려가는 장면입니다.
등대 아래에서 헤이스케는 나오코를 놔주고 모나미로서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하는데 이때 감미로운 테마곡과 함께 눈물맺힌 히로스예 료코의 연기는 감동 그자체였습니다.
겉은 딸이지만 속은 아내인 미묘한 감정처리를 놀라우리 만치 완벽하게 연기해내며 '사요나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심금을 울리는 가슴찡한 명장면이었습니다.

이제껏 영화를 보며 진정으로 감동을 받은 적은 <러브레터>에서 한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한번, 그리고 <비밀>이 세번째였습니다. (워낙 무딘 감정을 지닌 탓에 아마도 더 이상 저를 감동시킬 영화는 없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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