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Pan's Labyrint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길예르모 델토로는 존카펜터부터 내려오는 현대 호러영화감독의 계보- 웨스크레이븐, 샘레이미, 피터잭슨을 이을 최고의 거목이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면 모두 호러영화임을 알 수 있는데 직접 각본을 쓴 데뷔작 '크로노스'부터 헐리웃 진출작 '미믹', '블레이드2', '헬보이', 그리고 그의 생애 최고의 두 작품인 '악마의 등뼈'와 '판의미로'까지. 델토로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가 혹독하고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보내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특히 그는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을 두 편의 영화에서 다루었는데, 아마도 그의 체험적 고찰에서 나온 것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들은 한마디로 현실의 잔혹함과 냉소를 축으로 하는 호러판타지라 할 수 있다.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현실의 참혹한 부분들을 잔혹호러라는 판타지 기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점이 바로 여타 판타지 영화들, 혹은 여타 호러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이라 하겠다. 암스테르담 판타스틱 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한 그의 명실상부 대표작인 '악마의 등뼈'에 이러한 그의 세계관이 집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한 편의 영화에 그가 담고자 한 모든 영화적 상상력을 총 집결시키고 환상적인 연출력으로 숙성시켜낸다. 호러영화지만 한 편의 성장소설과도 같고, 또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고발영화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인간과 영혼에 대한 심도깊은 해석으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기까지 한다. 그의 영화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으로 그는 세계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 거듭나게 된다. 칸느 영화제에서 기립 박수와 찬사를 아낌없이 받은 '판의 미로'는 '악마의 등뼈'의 확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똑같은 배경을 담고 있으며 역시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현실의 잔혹함과 판타지의 신비로움을 교묘하게 조합하고 비틀어보인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 오필리아가 겪는 '신비체험'은 '판타지'의 속성에 대한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판타지가 순수한 판타지로 끝이 날 때 그것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애초에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 모든 중심의 축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순수한 판타지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천상의 소유물에 불과할 뿐, 우리와는(인간과는) 무관한 영역이다. 그래서 판타지를 말하고자 할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판타지라는 수식이 붙게 마련이고, 인간의 판타지- 인간에 의해 생성된 판타지란 천상의 판타지와 다를 수밖에 없다. 어째서인가, 라고 한다면- 인간의 판타지란 '현실 속의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도 없고, 따라서 인간의 판타지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요는-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의 공간, 그것이 지극히 판타지적인 판타지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악마의 등뼈' 때도 그러했고, '판의 미로' 때도 그러했다. 감독은 판타지의 공간에 접속하기 전에 현실의 공간을 냉철하게 보여준다. 현실은 잔혹하다. 더구나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본 현실은 두렵고 절망적인 곳이다. 현실이 무섭고 참혹할 수록 아이들의 판타지는 더욱 선명한 영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애초에 현실에 뿌리를 둔, '인간의 판타지'이기에 판타지 순수의 판타지함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판타지가 아름답고 신비하다고 한들, 인간은 애초에 현실의 공간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판타지 공간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현실'을 버려야 가능하다. 그러기에- 인간의 판타지는 더욱 더 안타깝게 갈망되어지는, 닿을 수 없는신비로운 꿈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길에르모 델토로 만이 가진 '판타지'의 속성이 날카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아름답지만 잔혹할 수밖에 없는, 잔혹하기에 더욱 더 애틋할 수밖에 없는 슬픈 영혼의 판타지...! 

말 그대로 '판의 미로'는 슬픈 영혼의 판타지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 소녀 오필리아는 자신에게 닥친 무서운 현실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원래 자신의 자리인 '공주'로 되돌아가고자, '판의 미로'의 문을 두드린다. 낯설고 두려운 판타지의 공간 속에 발을 들여놓은 오필리아지만, 갖은 공포와 위기를 용기있게 헤쳐나간다. 그녀만의 판타지를 이루기 위해...!

그러는 동안 현실 공간에서는 내전이 더욱 악화되고 인간들의 살육과 증오는 극에 달한다. 극중에서 반란군에 속해있으면서 사실은 좌익혁명단을 도와주는 '의사'는 이런 말을 한다. 좌익혁명단의 이러한 전투는 결국엔 무의미한 것이다. 반란군 몇몇을 죽인다고 한들 더 많은 반란군이 다시 채워질 뿐이다. 의사의 그러한 말에는 상당한 뼈가 있다. 영화 속에서 반란군 장교는 '악한'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속한 반란군은 '악', 그리고 '좌익단'이 '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테다. 의사의 말처럼- 서로 죽이고 죽는 '살육'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든!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정의라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목적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죽음과 화염의 아비규환 속에서 그들만의 판타지를 꿈꾼다. 그러나- 그러한 판타지는 절대로 오지 않을 터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피와 시체만 쌓일 뿐이다. 그 참혹한 현실적 결과과 그들이 총칼로 무의미하게 달려온 '판타지적 결과'와 닿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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