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수와 만수 - Chilsu and Mansu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들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칠수와 만수는 페인트 공이다. 날마다 고층 빌딩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들은 젊지만 무기력하다. 거품경제의 호황 속에서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삶은 더욱 서글프다. 칠수는 미국에 사는 누나가 자신을 초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누나는 창녀였다. 미군에게 시집가서 이제는 소식도 없다. 사랑했던 여대생 지나는 결혼 준비에 바쁘다. 칠수는 알고 있다. 지나가 절대로 자신과 결혼할 수 없음을. 그는 사회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무기력한 인간이기에. 답답하긴 만수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버지는 사상 문제로 투옥중에 있다. 그로인해 만수는 무엇을 하던 경찰의 감시와 제재를 받는다. 어떤 꿈도 속시원히 펼쳐보일 수 없다.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여동생의 모습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장난으로밖에 안 보인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직과 진실이 아닌 것이다. 돈이 움직이는 세상이고 권모술수가 움직이는 세상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세상은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빌딩벽이다. 칠수와 만수는 그 빌딩벽에 매달려 오늘도 하루를 버티고 있다. 젊기 때문에, 아직 펼쳐보이지 못한 그들의 끓어오르는 꿈들은 더없이 허망한 한숨과 눈물로 되돌아올 뿐이다. 아무리 세상을 향해 아우성을 쳐봐도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단번에 유명해지고 만다.

 

고층빌딩 옥상에서 페인트 칠을 하던 도중 울분을 참지 못하고 칠수와 만수는 세상을 향해 고함을 쳐본다. 장난으로 시작한 그 소동은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 되고 만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멀리 떨어진 그들과 사회. 들리지 않는 목소리. 닿을 수 없는 거리. 바로 그 거리가 그들 사이에 치명적 오해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사회는 그들을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는 노동시위자로 오인해버린다. 경찰이 출동하고 메스컴이 달려온다. 이제껏 무수히 그들을 외면했던 이 사회조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푸념과 농담에 진지한 경청을 한다. 하지만 왜곡된 이 사회의 시선은 아무리 해도 그들의 진실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칠수와 만수는 옥상 위에서 고함을 지른다. 우린 그냥 장난을 친 것 뿐이니 다들 돌아가라고. 해산하라고. 우린 자살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시위를 벌이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술김에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질러본 것 뿐이다. 조금 있다가 알아서 내려갈 테니 제발 다들 돌아가라! 하지만 옥상위에서 그들이 그렇게 진실을 외쳐도 까마득히 떨어진 아래에서 그것이 들릴 리 없다. 오히려 점점 일만 커질 뿐이다. 만수의 아버지가 처한 사정을 알게된 관리당국은 노동, 인권, 사회문제로 포커스를 확대한다. 세상은 왜곡의 논리로 칠수와 만수를 멋대로 정의한다. 

 

제발 그냥 돌아가라니까요! 옥상 위에서 아무리 외쳐보아도- 진실의 목소리는 아래에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칠수와 만수를 비추고 있는 무수한 카메라 그 많은 시선들, 그 많은 귀들-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칠수와 만수의 진심은 전달되지 않는다! 마침내 만수는 결단을 내린다. 세상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 소통이 단절된 사회, 진실이 포위된 세상, 젊음이 갈 곳 잃은 시대. 만수는 그 분출할 길 없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빌딩 아래로 뛰어내리고 만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이 사회가 그를 정말로 '자살자'로 몰고가버린 것이다.


소통이 단절된 사회, 진실이 포위된 세상, 젊음이 갈 곳 잃은 시대!

 

이 영화가 걸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빛나는 각본 때문이다.

젊음의 꿈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도시를 살아가는 칠수라는 청년- 하지만 그는 무기력하다. 부자도 아니고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며 얼굴이 특별나게 잘 생긴 것도 아니다. 그는 80년대 말 하층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직업도 없이 전전하다 우연히 알게 된 만수에게 빌붙어서 페인트 공 일을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한다. 만수 역시 마찬가지다. 만수는 사상 문제로 장기 복역중인 아버지 때문에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초고층 건물에 밧줄 하나로 목숨을 유지하는, 페인트 공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칠수와 만수는 어떡해서든 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속에 편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직 젊기에, 유쾌하게 살아가려고 노력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사회는 높고 단단한 벽과도 같다. 결코 뛰어넘을 수도 없고 부딪혀 돌파할 수도 없는, 경계선! 그렇다. 이 사회는 선을 그어 그들을 선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박광수 감독은 바로 여기에 이 영화가 지닌 메시지의 초점을 맞춘다.

6,70년대를 거쳐 가쁘게 달려온 초고속 성장의 거품효과가 절정을 맞던 80년대 말- 그 시기는 오랜 군사정권으로 인한 사회의 경직과 모순이 맞물려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게임의 성공으로 이 나라 전체가 묘하게 들떠 있을 그 무렵, 그러나 젊음은 한없이 공허했던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선은 더욱 뚜렷해지고 가진자들에 비해 가지지 못한 자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치명적 모순의 시대. 감독은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허상의 빛을 걷어내고 그 속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실상의 어둠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들은 라스트에 이르러 기막힌 아이러니로 표출된다.

아무리 외쳐봐도 귀 기울이지 않던 이 사회가- 무기력한 두 청년에게 모든 카메라를 다 들이댄다. 두 청년의 자살소동은 사회조직에 '위기'가 될 수 있기에 사회조직의 입장에서는 시급한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작 두 청년은 전혀 자살을 할 마음이 없다. 두 청년의 진심이 사회조직에 전달될 수만 있었다면. 전달될 통로만 있었더라면- 사회조직도 불안 요소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엔 그러한 통로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조직은 계속해서 불안을 더해간다. 사건이 비대하게 커져만 가고 불안과 공포도 거대해진다. 이 불안과 공포는 놀랍게도 사회조직 스스로가 만들어낸 왜곡된 불안과 공포인 셈이다. 왜냐하면 사회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자 엔진이라 할 수 있는 '고층빌딩'- 사회조직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 고층빌딩으로 인해 두 청년과 그들 사이에 절대 닿을 수 없는 '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칠수와 만수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이 사회를 향해 아무리 진실의 목소리를 외쳐봐도 소용없다. 그 진실의 목소리는 절대로 이 세상과 닿을 수 없으니. 진실이 닿기에는 빌딩이 너무 높다. 이사회의 시선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다. 


이 시대의 칠수와 만수

 

젊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과 꿈도 무한히 빛나던 시절. 그러나 이 사회는 냉혹하기만 하다. 풋풋한 꿈도 진실된 열정도 쉽게 알아주지 않는다. 칠수와 만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거짓과 허위, 가식과 모순 투성이다.

영화 속에서 곧잘 비쳐지는 도시의 높은 빌딩은 곧, 진실을 가로막는 벽이자 닿을 수 없이 까마득한 '사회'에 대한 상징이다. 칠수와 만수는 그 벽 위에서 밧줄 하나에 매달린 삶을 살아간다. 밧줄은 곧 그들의 생명줄이고 그들과 벽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하지만 그 통로는 너무나 나약하고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전달되기에는 너무나도 가늘고 위태롭다.

언뜻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떠오른다. 라스트에- 공주는 종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경찰서에서 온갖 몸부림을 치며 진실을 얘기하려 한다. 하지만 그 진실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전달되지 않는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회조직의 금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아무리 진실을 말하려고 해도 절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공허한 외침이 되어 허망하게 사라지거나- 기이한 형태로 왜곡되어 변질 될 뿐이다. 진실이 소통되지 않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순은 어디에서 오는가. 필자의 생각은- 부조화다. 모순은 부조화에서 온다. 그렇다고 한다면 둘러보자. 이 사회를 이 세상을 이 시대를. 조화로운가? 영화 속 칠수와 만수는 세상과 조화롭지 못했다. 아무리 조화를 이루어보려 해도 절대로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제2의 IMF와 청년실업 100만을 맞은 지금- 아무리 해도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 시대의 칠수와 만수. 그들이 가진 무수히 응어러진 꿈들은 회색 하늘 어디 쯤을 부유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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