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 The Dark K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거나.

영화 '다크 나이트'의 명대사 중 하나다.

난세의 정국을 비유한 날카로운 표현이다. 영웅은 믿음과 동경의 대상이지만 너무 빨리 죽게 마련이다. 빨리 죽지 않으면 영웅이 아니다. 극중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마제국 말기, 난세에 등장한 시저는 처음에는 민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영웅으로 부상했으나 결국 그는 한번 잡은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고 독재자가 되어버린다. 영웅도 시간이 흐르면 타성에 젖기 마련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악당이 될 수밖에 없다. 악당이 되면 오래도록 권력의 단맛에 빠져지낼 수 있다. 그래서 영웅은 본디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수록 빛을 잃기 마련이다. 악당이 되든지, 빨리 죽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 배트맨은 스스로를 영웅화시키지 않는다. 그는 그저 도시의 정화에 있어 '심벌'과도 같은 존재다. 진짜 영웅이 나타나 주길 바란다. 그러한 영웅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악당이 되어줄 각오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선택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죽은 자는 영웅이 될 수 있지만, 오래 살아남은 자는 악당이 될 수밖에 없다.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거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재창조된 배트맨은 팀버튼이 만든 배트맨보다 더욱 복잡미묘한 정체성을 선보인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될 수 없는 그의 존재는 그래서 '다크나이트' 어둠의 기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은 선악의 구분이 공식처럼 뚜렷하지 않다. 모순적이고 혼란스럽다. 민중은 청렴하고 믿음직한 영웅을 원하지만, 사실 그러한 영웅은 판타지의 세계에서나 존재 가능하다. 세상이라는 공기속에 머물면 영웅도 결국 오염되기 마련이다. 민중들이 원하는 영웅은 등장과 동시에 소멸하거나, 혹은 조작될 수 밖에 없다. 신기루 같은 것이다.

영화 속의 조커는 그러한 신기루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꺼내보이고 싶어 한다. 조커가 원하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돈을 태연하게 불태우기도 한다. 돈에 집착하는 악당에게 이런말도 한다. 넌 돈밖에 관심이 없지? 이 도시에는 좀 더 근사한 악당이 필요해. 그런 점에서 조커는 오히려 오래 살아남아 부와 권력을 누리려는 타락한 영웅들보다 더 순수하다고 볼 수 있다. 조커는 그런 오염된 영웅들의 가면을 벗겨내고 싶어한다. 그 상징적 존재로서의 배트맨을 '적'으로 삼는다. 본디 영웅이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잘 알기에. 배트맨이 오랫동안 영웅으로 추앙받는다면 그는 가짜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 가면 뒤에는 모순되고 조작된 '가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짜를 향해 말한다. 너는 영웅도, 정의도, 무엇도 아니다. 허상이고, 무기력함이고, 신기루일 뿐이다.

이 영화는 현재 미국에서 연일 신기록을 수입하며 폭발적인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관객과 평단의 평점이 만장일치에 가깝게 만점을 향하고 있다. 썩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상당히 창조적이고,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혹은 꽤나 주관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작품성의 측면을 떠나서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닌 듯했다. 러닝타임 2시간35분은 다소 길고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긴 러닝타임에 비해 액션 씬이 너무 적다. 영화도 결국 문화이고, 오락적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을 감안해볼때- 이 영화는 작품 자체가 가지는 창조성과 깊이를 높이 평가하더라도 지나치게 무겁고 다소 현학적이다. 버라이어티하고 익사이팅한 시각적 액션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에 많은 실망을 할 수도 있다.

다크나이트가 현재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에는 역시 히스레저의 죽음이라는 의외의 카드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히스레저의 연기는 좋았다. 잭니콜슨의 조커를 능가한다는 현지의 평은 좀 과장된 듯하지만- 상당한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다크 나이트' 전체를 통털어 배트맨보다 더욱 눈부신 매력을 발산한 것이 조커였으니- 이 영화 흥행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히스레저다. 그는 죽은 후에도 카드게임의 조커처럼 빛을 발한- '다크나이트'의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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