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우 - Millennium Act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랑을 찾아 꿈속으로까지 달려왔건만, 그는 눈덮인 안개 언덕 저 너머로 또 한번의 그리움만 남기고 사라지네'

나름대로 이 영화의 이미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창립 70주년을 맞아 개축을 위해 촬영장을 철거하는 `은영' 영화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설적인 여배우 `후지와라 치요코'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타치바나 겐야' 에게 맡긴다. 평소 그녀의 작품을 수십 번이나 봤을 정도로 열혈 팬이었던 그는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녀는 전성기를 누리던 30년 전 갑자기 은막 뒤로 사라진 뒤, 신비에 둘러싸여 온 인물. 타찌바나는 어렵게 찾아낸 그녀에게 그녀가 잃어버린 추억의 열쇠를 내 놓으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퍼펙트 블루'로 이 감독의 놀라운 재능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미야자키 하야오' 종교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곤 사토시는 신선한 자극이라는 표현을 넘어서는 전율의 영상으로 단숨에 매니아층을 확보했다. 실사로 찍었어도 무방했을 '퍼펙트 블루'의 사실적이고도 충격적인 영상에 매료되었던 팬들이라면 '천년여우'에 다시한번 감탄의 황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로맨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판타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범위를 극한으로 넘나드는 각본과 표현의 절대 수위! 언어로는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이 환상적인 영화는 인간의 한계적 시각과 청각으로 미처 좇아가기조차 힘든 경이로움의 서사시다!

시작부터 이렇게 과다한 칭찬을 늘어놓는 데에는 필자로서 정말로 '이런' 애니메이션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는 것에 대한 감격 때문이다.

 

위에서 잠시 줄거리를 언급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액면 줄거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 한번의 만남이 있고, 그 만남을 가슴속에 간직한 한 여인이 있고, 그녀의 순정과 그녀의 열망과 그녀의 그리움이 녹아든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의 이야기가 시같이 아름다운 영상속에 질주하듯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무한의 로맨스를 아우르는 것은 곤 사토시 특유의 화려하고 충격적인 연출력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액자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전설적인 여우가 절정의 시기에 돌연 은막을 떠나고 30년간 은둔생활을 한다. 어째서 그녀는 돌연 은막을 떠난 것일까! 그 여배우의 열혈 팬이었던 감독이 그녀의 인생 다큐를 찍기 위해 그녀를 찾아온다. 그녀의 입을 열게 한 것은 감독이 그녀에게 건넨 '비밀의 열쇠'이다. 그리고 노여우는 그녀의 과거, 사랑을 찾아 끝없이 헤맸던 벅찬 기억들을 풀어놓는다. 그 때부터 현재와 과거, 심지어 미래까지, 모든 상식적인 시공의 범위는 무너진다. 여우의 일생을 좇아 카메라는 끊임없이 그녀의 곁에 머물고 심지어는 직접적인 개입까지 한다. 전국시대부터 에도, 막부 시대, 전쟁과 근대 시대, 나아가 미래의 우주까지, 가슴 속에 순정을 품은 여우의 사랑찾기는 장대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퍼펙트 블루'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더욱 복잡하고 전율적인, 그러나 더욱 치밀하고 세련되어진 퍼즐 게임이 시작된다. 시공간의 해체는 기본이고 현실과 환상, 허구와 진실, 영화 속과 영화 밖, 심지어는 다큐 속과 다큐 밖까지, 가능한 모든 스토리텔링의 문법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기막힌 연출법은 감독의 능수능란하고 감각적인 재능 때문에 전혀 산만하지 않고 꿈 같은 황홀감에 빠지게 한다. 그 무아지경의 마지막에는 얼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미스터리의 답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사랑을 찾아 천년을 헤맨 여우의 스토리가 우리네 가슴속에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불변의 진리 중 하나였음을 우리는 자각하게 된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비밀의 열쇠'로 우리의 가슴 속을 열어보게 되고, 우리의 일상과 잃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벅찬 감동 속으로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마법같은 연출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장황한 미사여구가 사실상 이 영화에게는 무색할 정도로 그 신비로움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직접 보고 느끼지 않고서야 어찌 그 터질 듯한 무한의 감각을 한낱 글자로 적어낼 수 있으랴!

 

'퍼펙트 블루'의 충격을 사랑한 팬들이라면 '천년여우'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필자가 최고의 저패니메이션으로 꼽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한치도 뒤짐이 없는,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공동 1위로 할 만큼, 걸작 중의 걸작이다! 걸작 중의 걸작이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두번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01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같은 해에 만들어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함께 제5회 일본 미디어예술영화제에서 공동대상을 수상했고,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캐나다 판타지 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치요코의 달리는 모습이다. 그녀는 무수한 모습으로, 무수한 방법으로 사랑을 찾아 달리고 또 달린다. 특히 극후반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달리고 또 달려 눈덮인 홋카이도, 땅끝까지 도달하는 모습은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제까지 그녀의 마음 속에, 피 속에, 시간 속에, 그리움 속에 녹아있던 모든 열정의 응어리들이 다시한번 풀로 가동되며 그녀를 한없이 격정적으로 몰아가는 하일라이트였다. 그 때 흘러나온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하고 빠른 교차편집, 그리고 반복되는 이미지의 세련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압권이었다!

'퍼펙트 블루'에서 처럼 관객들에게 작은 파문과 여운을 던지며 새로이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열정'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곧 영화이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 아닌가 싶다!

 

첫사랑의 열정을 간직한 어리고 순수한 여배우는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사랑을 간직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사랑하는 이가 혹시 보아주길 갈망하며 영화를 찍고 또 찍었다. 그것은 그녀의 예술이었고 그녀의 사랑이었고 그녀의 인생이었다. 우주의 어느 별 한 가운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그,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비밀의 열쇠'의 주인공, 그를 찾아 우주까지 달리는 그녀의 목마른 그리움과 열정은 그녀를 이루는 전부였고, 그 순간 그녀는 언제까지나 만월(滿月)을 꿈꿀 수 있는 14일째의 달(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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