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 들오리의 코인로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신의 소리에 마음이 움직인 네 청춘...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이삿짐을 옮기는 시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한다.
딜런?
돌아보니, 키가 크고 묘한 눈빛을 한 남자가 서 있다.
딜런은 신의 목소리야.
그렇게 말하는 그는 가와사키.
가와사키는 시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서점에 침입해 대사전을 훔쳐오자는 것!

 그렇게 시작하는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25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한 이사카 고타로의 동명원작소설이다. 원작이 워낙에 탁월한 작품이라 그것이 영상으로 옮겨지며 탄탄한 작품성과 완성도를 이끌어냈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지만 그 특유의 복잡한 구성 때문에 영화화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
하지만 영화는 원작을 꽤 근사하게 스크린에 옮기는데 성공한다. 원작에서는 라스트에 가서야 밝혀지는 기막힌 구성의 반전이 영화에서는 중반에 밝혀진다. 영화는 그렇게 전체적으로 두 단락으로 나뉘어진다.
전반은 시나와 가와사키의 이야기로, 후반은 가와사키와 도르지, 고토미의 이야기로.
아마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영화를 감상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감수성도 영화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만 본 사람이라고 해도 '이사카 고타로' 그 특유의 세계관이 뿜어내는 묘한 매력에 충분히 사로잡힐 수 있을 듯 싶다.
아마도 아주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 서점을 털기 위해 나서는 두 남자!
비극은 항상 뒷문에서 일어난다!

 


딜런?
딜런은 신의 목소리야.
이 영화는 딜런의 노래로 인해 자연스레 감정의 교류를 하게 되는 네 청춘의 이야기다.
음악은, 타인과 타인의 벽도, 국경과 국경의 벽도 초월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이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낯선이라 해도
어쩐지 동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꼭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음악이란 그런 정도로 신비한 힘을 가졌다.
과연 신이라 부를 만도 하다.

 




함께 서점을 털지 않을래?
모델건을 보이며 그런 제안을 하는 가와사키.
옆집의 옆집에 외국인이 살고 있어. 부탄 사람이지. 그는 사귀던 여자와 헤어져서 침울해하고 있지.
그런 그에게 대사전을 훔쳐서 선물하면 좋아할 거야!
하지만, 하고 시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꼭 훔쳐야하는 거지? 돈이라면 내가 빌려줄 수도 있는데.
훔친 사전이 아니면 소용없어.
왜?
너 샤론과 마론의 고양이 이야기를 모르는구나!
...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방인을 돕는 것이 '사전을 훔치는 것'만큼이나 번거롭고 위험할수도 있는 일이라면?
분명한 것은 '사전을 돈주고 사는 것' 정도의 일이 아니라 반드시 '사전을 훔치는 것' 정도의 일이라는 것이다.
1. 뭐하러 그런 수고를
2. 사전을 훔친다.
가와사키는 구태여 사전을 훔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팻숍을 운영하는 레이코라는 여자를 조심해! 그녀를 믿지마!
하지만 시나는 서늘한 매력을 지닌 그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간다.
레이코는 말한다.
가와사키, 부탄사람,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 그 세 명에게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었어.
넌 그 끄트머리에 휘말려 든 거야.
누구에게나 스토리는 있다.
제각각 자신들만의 이야기. 아련히 스치고 지나간 무수한 스토리들.
그 스토리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스토리에 본의 아니게 끼어드는 수가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스토리의 조연에 머무르고 만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무수한 스토리가 뒤엉켜 돌아가는 퍼즐과도 같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퍼즐식 구성이 절묘하다. 






도르지와 고토미.
부탄인과 그가 사랑했던 여인.
시나와 가와사키의 스토리 도중에 회상씬으로 삽입되는 이 에피소드들은 모두 흑백으로 처리되었다.
이 흑백 영상들은 영화 후반부 칼라 영상들과 절묘한 대치를 이루며 반전을 이끌어낸다.
원작의 감수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인다.


 




시나는 그저 모델 건을 들고 뒷문을 지키고 있기만 하면 돼. 간단한 일이야.
가와사키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실제로 서점을 습격하러 온 시나.
가와사키가 대사전을 훔치는 동안 시나는 뒷문에서 망을 본다.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하지만 생각한다.
어째서 이 밤중에 나는 모델 건을 들고 서점 뒷문을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묘하게 얽혀 있는 이 스토리는 지금 어디쯤을 어떻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


 




책은 훔쳤어?
완벽해!
어디 있어?
뒷좌석에.
맙소사, 저건 대사전이 아니라 대법전이잖아!
그래?
뭐 별로 대수로운 건 아니니까...
그 날 이후...
가와사키는 밤마다 어딘가로 외출한다.
시나는 수상함을 느끼고 가와사키를 미행하게 된다.
 





시나와 가와사키.
부탄인은 옆집의 옆집 사람이라고 했잖아?
맞아. 옆집의, 옆집!
...
하마다 가쿠와 에이타가 열연을 했다.
정말로 원작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두 배우의 완벽한 연기력에 새삼 놀랐다.
어딘지 맹하고 우유부단한 시나와 유쾌하지만 슬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가와사키!
특히 가와사키 역의 에이타는 영화 속에서 놀라운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에이타의 나이 답지 않은 연기력과 감수성에 늘 감탄하는 바다.
그 외에도 모든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위의 두 배우는 또래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에이타가 여섯 살 더 많다. 

 



마츠다 류헤이.
어김없이 이 작품에서도 그만의 특유의 카리스마가 넘친다.
등장 분량이 적은 게 아쉬을 따름.
하지만 역시 류헤이는 류헤이다. 그에게 소화하지 못하는 역이란 없다.
데뷔작 '고하토'에서의 중성적 매력의 미소년부터...
'이조'에서 신비의 남자...
'악몽탐정'에서 내면의 갈등과 싸우는 불안한 영혼의 탐정역...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천부적 연기자!


 




고토미 역의 세키 메구미.
조금 낯선 여배우다.
하지만 원작의 캐릭터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 듯 했다.
연쇄 애완동물 살해범에 맞서 싸우는 강한 의지의 여자.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다.
좀 더 뜨겁게 살 수 없어?
개가 차에 치이려 하면 목숨을 걸고 달려가서 구해준다거나...
여자친구가 떠나려 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붙잡는다거나...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을 습격해서라도 손에 넣는다거나...
 

 




레이코 역의 오오츠카 네네.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 꽤 많이 등장하는 여배우. 키무라 타쿠야 주연의 '히어로'에서 특히 좋았다.
원작 소설에서도 느껴졌던 차가운 카리스마의 소유자.
그와 그들의 스토리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점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그녀에 의해서 퍼즐은 완성되고 스토리는 끝을 찾아간다.


 




어째서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랬어?
폭력을 사용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먼저 잘못한 거잖아. 그들은 애완동물 살해범이라고.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고.
어쨌거나 폭력은 나쁜 거니까. 부탄 사람들은 폭력을 싫어해. 모기도 죽이지 않아. 죄를 지으면 다음 생에서 반드시 벌을 받는다고 믿거든.
괜찮아. 잠시 신을 가두어두면 되니까.
신을?
신을 잠시만 가두어두면 돼. 그럼 신도 눈감아 줄 거야.
그러니까 그런 나쁜 녀석들은 조장시켜버려!
(조장 : 부탄의 장례풍습. 죽은이의 시신을 들판에 내버려둬 까마귀들의 밥이 되게 하는것. 정화의 의미가 있다고 함)

 




정의란 과연 뭘까?
정의는 법률일까?
만약 그 나라의 정치인들이 정치를 엉망으로 하고 있다면, 그래도 그 나라의 법률은 정의일까?
도처에 애완동물을 죽이는 이들이 있고-
외국인들에 대해 선을 긋고 경계하는 이들이 있고-
폭력을 일삼는 이들이 있고-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이 있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이 있고-
결국은-
전쟁과 테러와 고통과 눈물과 차별과 폭력과 무시와 저주와 모순과 혼란이
들끓는 이 도시에서-
정의는 어떻게 하면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열심히 법률만 지키면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일까?
모두 다 어릴 적에는 '선'을 동경했는데...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이나 '살벌해'지는 것일까?
어째서 세상은 온통 슬픈 스토리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이어야 한다.
한 사람은 정면을- 또 한 사람은 뒤를...
반드시 뒤를 지켜주는 동료가 필요하다.
비극은 언제나 뒷문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그렇게-
밥 딜런의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자.
밥 딜런의 노랫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
즐겁고, 행복하고, 가슴 미어지도록 슬프고... 그 찬란했던 나날의 기억들이... 
 

 





이 영화의 라스트에는 각별한 울림이 있다.
에이타가 차 속에서 절규하는 장면에서부터 마지막 코인로커 씬까지-
감동이라기보다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느낌의 감수성...! 영혼의 아우성...!
밥 딜런의 음악이 흐르고, 서점을 털기 위해 질주하는 두 남자~
그리고 그 날 밤, 그 진실이 밝혀질 때-
우리는 제각각 가슴 속 깊이 담아두었던 자신만의 스토리를 꺼내보게 될 것이다~!

 
 




에이타의 연기는 이제껏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에이타라는 청년 그 자체가 바로 슬픈 기억을 간직한 가와사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는 곧 키무라 타쿠야, 다케노우치 유타카, 오다기리 조 등의 뒤를 이어 일본의 차세대 배우로 우뚝 설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자.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가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이사카 고타로는 늘 그렇다.
저 떠돌이 개보다 위대한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작가다.
개들은 착하다.
인간과 삶을 공유하면서도 절대로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없다.
인간을 따르면서도 자연을 배반하지도 않는다.
개들은 세상의 이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비둘기도 마찬가지다.
사자도 마찬가지다.
개미 한 마리 조차도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인간만이 모른다.
무심코 혹은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그들의 악행들이 세상의 종말을 광속으로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 속 고토미는 어쩌면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마리의 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 순간, 애완동물 살해범들에게서 무사히 도망치는 한 마리의 개를 보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폭력은 법률적으로 범죄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어떨까?
어느 평화로운 부족국가. 그 마을에 악당들이 침입한다. 악당들은 재물을 뺏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무능한 국왕은 악당들의 폭력에 억눌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이에 마을은 더욱 더 고통으로 물든다.
악당들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한 청년이 마침내 분연히 일어선다. 그는 정의를 위해 열심히 수련을 한다. 무술을 익히고 강해진다.
그래서 악당들을 하나씩 처단한다. 악당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친다.
하지만 폭력은 법률적으로 범죄다.
그 조그만 부족국가에도 그러한 법률은 있다.
청년은 소신껏 싸웠다.
악당이라고 여긴 이들에 맞서서.
그러나 법률적으로 살인은 범죄고 사형이다.
청년은 악당을 처단함에 있어 법률적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니 법률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
이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법률과 인간의 심판이 아닌-
자연과 우주와 신의 심판이라면?
영화 속 결론은- 신을 잠시 가두는 것이다!
하느님, 이 이야기만큼은 눈감아 주세요.


 




집오리와 들오리의 차이는 뭘까?
그런 것이 사전에 나와 있을까?
영화 속에서는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외국에서 들여온 것과 원래부터 있던 것!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외국에서 들여왔건 원래부터 있었건, 다 같은 오리다.
오리의 종을 논하는 것도 아니고-
집오리와 들오리라는 모호한 기준은 대체 뭘까?
들오리도 집에서 기르면 집오리가 되는 것이고, 집오리도 들로 내놓으면 들오리가 되는 것인데.
어째서 다 같은 오리에게 그런 분류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선을 그으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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