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날들 - Happy Tim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장예모 감독의 2000년도 영화. 무협 대작 '영웅'을 만들기 직전에 만든 소박한 영화. 그래서 이 소박한 영화는 전작인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길'에서 이어지는 소박함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이 소박함 시리즈를 끝으로 감독은 '영웅', '연인' 같은 거대한 대작 액션 영화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어쨌거나 필자는 장예모 감독의 소박한 영화들에서 의외로 '진짜 감동'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이런 작은 영화들에서 감독의 '진짜 재능'이 빛을 발했던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홍등', '귀주 이야기' 같은 영화들도 소박하지만 날카로운 걸작들이었다.  

감독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서부터 새로운 변주를 시도한 듯했는데 그것은 중국의 피폐하고 남루한 현실에 카메라를 더욱 밀착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뇌, 한숨, 소박한 히로애락의 숨결을 포착하고자 했다. 또한 신인배우들을 통한 꾸미지 않은 리얼함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영화적 분위기는 언뜻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 향기' 등과 닮아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한 감독의 노력과 재능이 녹아들어 의외로 '진짜 걸작'들을 탄생시켰는데 '책상 서랍 속의 동화'가 그러했고, 이 작품 '행복한 날들'은 그 정점에 올라 있는 듯했다.

'행복한 날들'은 눈먼 소녀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한 아름다운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와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가난한 50대 남자 자오는 우연히 눈먼 소녀 우를 알게 되고 그 소녀를 위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우에게 취직을 시켜주겠다며 가짜 안마시술소를 차린 후 그녀에게 가짜 돈을 건네준다. 이러한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너무나 휴머니즘 적이라, 감미로움 마저 느껴진다. 소녀는 자신을 위해 이웃들이 '따뜻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만 속았다는 기분보다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그렇게 가난하지만 그들만의 '행복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채플린과 베니니가 결국, 라스트에 가서 진실된 거짓말이 현실 속에서 기적같은 사랑의 승리로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장예모는 그러한 판타지를 절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현실의 비극을 우울하게 그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장예모가 선택한 이 영화의 '라스트'에 특별한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소녀를 위해 마지막 거짓말의 '편지'를 남긴 자오는 트럭에 치어 생사불명에 놓인다. 때를 같이 해서 소녀 역시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자오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생사가 불투명한 자오와, 미래가 불투명한 소녀의 모습이 교차로 보여지며 나레이션처럼 읽혀지는 두 메시지의 반복과 혼합은 '감독이 가진 영화적 미학의 진정한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명장면이었다.   

자오의 생사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함 만큼이나 소녀의 앞날이 이제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함이 극에 달했다. 소녀 앞에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든, 소녀는 다만, 걸어나갈 것이다. 그것이 산다는 것이니...!

p.s. 이 작품의 여자 주연을 맡은 배우는 동결이라는 80년생 배우로(촬영당시는 19세였다) 장예모가 '책상서랍 속의 동화'의 여주인공(이름을 잘 모르겠음), '집으로 가는 길'의 장쯔이에 이어 발견한 보석같은 신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데뷔작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놀라운 내면연기와 완벽한 장님 연기를 선보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순수한 듯하면서도 인생을 어느정도 달관한 듯한 섬세한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미모도 워낙출중해서 앞으로 중국은 물론 홍콩 영화를 이끌 여배우로 대성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후의 프로필을 보니 시시한 영화들에만 출연을 한 듯해 안타까웠다. 아마도 그녀의 영화인생에 있어 '행복한 날들'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나기란 힘들 듯 싶다.(최근에는 견자단 주연의 액션극 '용호문'에 출연을 했음)

최근 주윤발, 공리를 주연으로 '황후'라는 초대작을 준비중인 장예모 감독이지만,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행복한 날들'과 같은 소박한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것처럼 감독의 피속에 살아 숨쉬는 진정한 영화적 재능은 이러한 소박한 영화들에서 발휘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와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팬들이라면 이 작품 '행복한 날들'도 절대 놓쳐선 안될 것이다. 진정으로 오랜만에 별 다섯을 주고 싶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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