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 살인사건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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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봄, 다섯 살 난 여자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겠다고 집을 나간 뒤 행방불명된다. 밤이 돼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과 동네 주민이 수색에 나선다. 하천 부지에서 아이의 시신이 나온다. 부검 결과 끈으로 목 졸린 흔적이 있었고, 아이가 입고 있던 치마 주머니에서 정성껏 종이접기 한 색종이를 발견한다. 


3주 후 두 번째 피해자가 나온다. 여섯 살짜리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하교하던 도중 행방불명됐고, 이튿날 집 근처 신사 정원에서 교살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2주 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온다. 네 살짜리 여자아이였고, 낮에 집에서 놀다가 유괴되어 교살된다. 연달아 일어난 아동 유괴 살인사건. 피해자 근처엔 늘 정성스럽게 접은 색종이가 놓여 있고 언론은 이를 두고 '종이학' 살인사건이라 불렀다.


치넨 미키토의 '종이학 살인사건'은 병리학 전문의와 그녀의 동기이자 제자인 또 한 명의 의사- 두 여의사가 콤비가 되어 펼치는 장편 추리소설이다. 이전에 읽은 '유리탑의 살인'이 정교한 퍼즐식 본격 미스터리였다면 이번 작품은 로스 맥도날드, 할런 코벤의 느낌이 물씬 나는 사회파 스릴러였다. 


치넨 미키토의 장기 중 하나인 휘몰아치는 듯한 필력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며 시작부터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거기에 병리학 전문의로 나오는 여의사 캐릭터가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데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시리즈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치 미드 '본즈'의 여주인공처럼)


소설은 28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의 추적을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시간을 거꾸로 되짚는다. 이 장르의 공식처럼 언제나 모든 비밀은 과거에 숨어있고, 그 과거의 탐색을 통해 아버지의 인생을 새롭게 알아간다. 이 장르의 공식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이것은 우리네 인생의 공식과도 닮았다. 


현재의 시간 위를 달릴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지나고 나서 되돌아 보면 그때 몰랐던 많은 것을 새로이 깨닫는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머나먼 시간 저편에 아련히 숨어 있는 진실을 엿본다. 인간은 늘 과거와 때늦은 화해를 한다. 그렇게 현재를 위로받는다.


치넨 미키토의 작품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번 작품도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한 서사와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다만 한 가지, 작가가 처음부터 반쯤은 의도적으로 패를 내보인 것처럼 여겨지는 '반전' 하나는 소설 중반부터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종이학'에 얽힌 사건의 비밀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 범인의 정체만큼은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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