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맞지 않는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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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회 메피스토 상 수상작 구로사와 이즈미의 '인간에 맞지 않는'은 어느 날 자식이 벌레로 변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의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도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라고 밝힐 만큼 '변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다른 게 있다면 이 작품은 일본 사회 특유의 닫힌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를 좀 더 내밀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다. 히키코모리와 니트, 가족 붕괴, 더 나아가 열정을 상실한 일본 사회의 절망적인 부분까지 작가의 날카로운 펜끝이 닿아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 몇 년째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니 아들은 기괴한 형체의 벌레로 변해있다. 지렁이와 지네를 합친 듯한 외모에 몸체보다 큰 듯한 둥그런 머리와 더듬이, 길고 가느다란 네 개의 앞다리. 아들은 뮤턴트 신드롬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라 불리는 특이병으로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은둔형 젊은이들이 특히 많이 걸린다.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이 병에 걸리면 즉시 사망 신고를 해야 한다. 즉 이형체로 변하면 그때부터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시체, 혹은 야생 동물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소설은 벌레로 변한 아들을 그래도 정성껏 돌보는 엄마의 이야기를 축으로 이형체를 둔 다양한 가정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책장에서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소설을 발견하고 뭔가 무서운 책인 것 같아 조마조마하며 읽은 기억이 난다. 몇 개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는데 워낙 어릴 때라 어린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유독 한 편만은 비교적 쉽게 읽혔다. '내 아내가 지네라니'이라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수십 년간 함께 부부의 정을 쌓아온 아내가 알고 보니 지네 요괴라는 이야기다. 지나가던 스님이 지네 요괴를 죽일 방도를 알려주지만, 남편은 끝내 지네로 변한 아내를 죽이지 못한다. 아무리 겉모습이 흉측한 지네 요괴라도 그간 지내온 가족의 정이 있었기에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 맞지 않는'을 읽으며 어릴 적 읽은 이 소설이 문득 겹쳐졌다. 


아들이 벌레가 되고,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고 나서도- 엄마는 차마 아들을 외면할 수 없다. 아무리 괴물 같은 모습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아들의 혼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차마 없앨 수 없다. 남편은 당장 버리라고 소리치고, 주변에서도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만, 엄마이기에 끝까지 아들을 지켜줄 수밖에 없다. 소설은 그렇게 벌레가 된 아들을 끝까지 보살피는 엄마의 분투와 이형체 가족 모임이라는 '물방울회'라는 집단의 이야기가 맞물리며 진행된다. 그렇게 이어지던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뜻밖의 전개를 맞는다. 이형체가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더욱 커다란 위기와 공포에 직면한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시대에 조금은 어울리는 소설이기도 하다. 또 청년 실업과 은둔형 외톨이 문제 등 극단의 개인주의로 치닫는 오늘날의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도 있다. 독특한 소재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전개, 그리고 요소요소마다 잔혹, 비애, 비정, 애수 같은 극단의 감정이 방점을 찍는다. 특히 벌레가 된 아들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모정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런 상상력을 가진 작가의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p.s. 조금 아쉬운 것은 이런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너무 가족극으로만 범위를 좁혀서 서사가 더 크고 흥미롭게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차단했다는 점이다. 그 차단의 공백에 작가의 목소리가 제법 많이 들어갔다는 점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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