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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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던 여자가 괴한에게 납치된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낯선 집의 불 꺼진 욕실 안에 묶여 있다. 불안에 떨고 있는데 느닷없이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진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년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레를 들고 있다. 잠시 후 소년은 다시 나가고 불이 꺼진다. 잠시 후 다시 불이 켜지고 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은 손에 든 피자를 여자에게 내민다. 먹을래? 피가 묻어 있진 않아!


일본 미스터리에 이어 중화권 작가의 미스터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내 출간작 중 '13, 67'을 비롯한 찬호께이의 작품들은 이미 입소문이 대단한 화제작이다. 그 외 레이미의 '심리죄' 시리즈, 미스터 팻 '범죄의 붉은 실', 루추차 '원년 봄의 제사', 쯔진천 '동트기 힘든 밤' '무증거 범죄차이쥔 '생사의 강',  저우하오후이 '사악한 최면술사' 등이 재미있게 본 중화권 미스터리다.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는 대만 작가 쿤룬이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살인마가 살인마를 죽이는 이야기다. 제프 린제이의 소설 '덱스터'에서 여러모로 설정을 빌려온 느낌이 든다. 다른 점은 덱스터는 스릴러지만, 추리소설의 문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소설은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무 살 남짓의 어린 미소년 살인마다. 그는 사람의 배를 갈라 죽이고 스너프 필름으로 남기는 극악무도한 살인마들을 골라서 죽이는 킬러다. 여기엔 좀 더 깊은 사연이 숨어 있다. 처음엔 미소년 살인마의 살인 에피소드 위주로 소설이 진행되다가 뒤로 갈수록 소년의 과거 및 주변 인물들과 얽힌 슬프고 참혹한 진실이 한 겹씩 벗겨진다.


일명 '잭'이라 불리는 살인마 집단을 분쇄시키는 데 목숨을 건 미소년 살인마 캐릭터는 무척 독특하다. 그는 늘 살인마를 죽인 후 그 현장을 깨끗이 청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결벽증자다. 또 살인마나 흉악범 외에 일반인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에겐 지옥보다 끔찍한 과거가 있다. 그에게 그 과거는 그의 자아이자 고통이고,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긴, 인간은 누구나 미래보단 과거에 더 매달리는 존재일 테다. 과거에 두고 온 그 무언가가 아쉬워 끊임없이 뒤를 돌아본다. 그것이 좋은 추억이든, 슬픈 주억이든- 어쨌든 과거는 지금의 나를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약한 우리는 그래서 그 과거에 미련을 두고, 또 위로도 받는다. 


다채로운 캐릭터와 뒤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 스피디한 전개로 꽤 흥미로운 독서였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이 작품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물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살인마 집단 '잭'과의 승부가 진행형으로 끝나버린다. 물론 주인공이 가진 사연과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선에서 1부를 마무리했다고 볼 수는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몇 가지 떡밥을 뿌려놓은 탓에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든다. 후속작들이 빨리 출간된다면 또 모를까... 


약간의 아쉬움을 빼면, 가독성 높은 작품임엔 틀림없다. 살인마와 청소라는 미묘한 조합 때문에 얼핏 유쾌한 미스터리 소설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다크한 스릴러였다. 특히 살인 행각을 무척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어, 마음 약한 사람은 책장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 다크 계열의 잔혹한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추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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