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년 전 일가족이 독살된 블랙우드 저택. 그 끔찍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두 자매, 콘스턴스와 메리캣. 그녀들은 외삼촌과 함께 커다란 저택에서 고립된 채 살아간다. 어느 날 저택을 찾은 낯선 남자 찰스. 그녀들의 사촌인 찰스가 나타나면서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저택의 공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찰스가 악마라고 믿는 메리캣은 그를 몰아내고자 저주의 주문을 외우는데...


헨리 제임스의 '나사못 회전'과 함께 고딕 호러 소설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힐 하우스의 유령'의 작가 셜리 잭슨.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이 소설은 '힐 하우스의 유령'처럼 본격 호러물은 아니다. 심리 스릴러에 가깝지만 스토리 내내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함과 낯선 위화감, 그리고 으스스한 살의를 품고 있어서 오히려 '힐 하우스의 유령'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힐 하우스의 유령'때도 느꼈지만 셜리 잭슨의 문장력은 정말 탁월하다. 설명이 아니라 몇 개의 에피소드와 심리 묘사만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그려낸다. 또한 시한폭탄과도 같은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도 허를 찌르는 유머감각이 일품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그러한 장점이 정점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스토리만 떼어놓고 본다면 잘 읽히고 전후 관계 또한 뚜렷하다. 다만 '나사못 회전'처럼 이 소설도 작품 내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여러 해석이 나올 여지가 있다. 소설 속 메리캣 가족은 정말로 집 밖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외삼촌과 언니는 아예 집 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고, 메리캣만 가끔 바깥으로 나가 식료품을 사 온다. 메리캣은 바깥 세계를 자신들을 위협하는 '적'으로 생각한다. 안전지대는 오직 집안이고, 그러므로 언제나 집을 둘러싸고 있는 벽 안에서 꼼짝 안고 사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다. 그녀가 그런 강박증을 갖게 된 이유는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메리캣 자매를 마녀 취급하며 조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많은 부분 작가의 자의식을 반영한다. 사실 메리캣은 어느 정도 작가의 분신과도 같다. 셜리 잭슨도 '마녀'로 매도당한 경험이 있기에 언제나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한다. 그녀가 이 소설에서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과 집단의 공포'가 아닐까 싶다. 군중 심리란 묘해서 언제나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아 나선다. 실컷 욕하고 조롱하고 마녀사냥을 하는 동안에는 초라한 자기 모습을 잊을 수 있고, 얕은 우월감을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소설은 사르트르의 '타자는 지옥이다'라는 말에 가장 걸맞은 작품이다. 소설 중반부터 등장하는 찰스라는 낯선 남자는 그 자체로 메리캣에게 지옥이다. 그때까지 잘 지켜오던 침묵의 질서를 찰스는 멋대로 휘젓고 다니며 깨뜨린다. 찰스는 그 자체로 타인과 군중이 가진 공포 모두를 대변한다. 어찌 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성'에서 안락하게 지내길 원한다. 그 공간을 침해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메리캣이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녀들의 집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자아'였던 것이다.


작가는 유령이 등장하는 공포소설을 많이 썼지만, 그녀는 유령을 통해 늘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건드린다. 또는 인간을 통해 '실체가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충격의 라스트를 지나 에필로그에 이르면 '나사못 회전' 때처럼 이 소설이 가진 세계관에 혼돈이 찾아온다. 애초에 메리캣은 누구였을까? 이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인가 유령의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유령은, 과연 무엇인가? 셜리 잭슨의 소설답게 많은 상징적인 부분을 되짚어보게 만들지만 그러한 여운을 떠나서 앞서 말했듯 소설은 스토리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독성과 흥미로움으로 넘쳐난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첨예한 긴장감과 오싹한 공포, 그리고 탁월한 블랙 유머와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셜리 잭슨 최고의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