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자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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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봉우리 칸첸중가를 등반하다 눈사태로 사망한 형의 등반 유품에서 칼집이 나 있는 자일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손을 댄 흔적이다. 그렇다면 형은 정말로 눈사태로 죽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죽인 것일까? 그러던 중 형과 함께 칸첸중가를 등반한 대원 두 명이 생환한다. 그런데 그들의 증언은 정반대로 엇갈린다. 진실은 무엇이며, 칸첸중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69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른 시모무라 아쓰시의 '생환자'는 유메마쿠라 바쿠의 '신들의 봉우리'에 필적하는 산악 미스터리다.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칸첸중가- 실제로 에베레스트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낳는 악명 높은 곳이다. 이토록 지옥 같은 봉우리를 그래도 오르고자 하는 산악인들은 많다. '신들의 봉우리'에서도 느꼈지만 그러한 산악인들의 뼛속에는 산을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산을 이기려 하지 않고, 산을 우롱하지 않고, 산을 만만하게 보지도 않는다. 산을 존경하고, 산을 신성시하며, 혈관까지 얼려버리는 설산의 공기마저 깊이 사랑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산악인들이 산에서 조난을 당하고 대다수가 눈사태로 죽는다. 그리고 가까스로 생환한 남자. 모두의 이목이 주목되는 가운데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산에서 조난 위기에 처했는데 한 등반가가 구해줬다. 그 등반가 때문에 무사히 생환할 수 있었으나 그의 생존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후 두 번째 생환자가 나타난다. 두 번째 생환자는 첫 번째 생환자와 정 반대의 말을 한다. '첫 번째 생환자를 구해줬다는 그 등반가는 다른 등반팀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배신자다.' 전혀 다른 두 생환자의 증언. 누구 말이 옳은 것일까? 누군가 거짓말을 한다면 어째서일까? 산악인은 산에 관해 절대 거짓을 얘기하지 않는 법인데!


칸첸중가를 비롯해서 많은 산들의 이야기가 언급되고, 또 산악인들의 생생한 등반기가 히말라야의 폭설처럼 무섭게 휘몰아치지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미스터리 소설이다.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빙벽과 설산이라는 공간이 그 자체로 외부와 차단된 커다란 밀실이 된다. 그 고립무원의 봉우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진실은 차가운 얼음 속에 동결되고, 두 생환자도 입을 다문다. 형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고자 동생은 마침내 죽음의 산, 칸첸중가의 빙벽을 오르는데... 


'신들의 봉우리'를 읽었을 때와 같이 이 소설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를 히말라야 14좌 눈 지옥 속으로 끌어당긴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현장감, 빙벽 등반의 서늘한 공포와 긴장감- 그리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날의 미스터리'. 산악소설과 추리소설의 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수백 미터 빙벽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아찔한 재미를 선사한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은 무섭고, 슬프고, 처절하면서도 따뜻하다. 작가는 그렇게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도 따스하게 숨 쉬는 인간의 온기를 희망처럼 그려내며 긴 여운을 던진다. '신들의 봉우리'와 함께 강력 추천할만한 산악 소설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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