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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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에서 연이어 세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들은 모두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나는 교실에서 너무 큰소리를 냈습니다. 조율되어야만 합니다. 안녕.' 한 학급에서 세 명이 자살한 사건으로 교실은 물론 학교 전체가 우울감에 빠진다. 그러나 한 아이만은 이 모든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가 벌인 '살인'임을 깨닫는다. 교묘한 수법으로 살인을 자살로 위장한 '살인마'가 교실에 숨어 있다. 살인마의 살인 목적은 무엇이며, 교묘한 살인 수법으로부터 교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국내 출간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컸다. 완벽한 수법으로 '자살'을 가장한 연속 살인이라는 줄거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제목이 암시하는 바로는-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살인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처럼 여겨져, 과연 어떤 놀라운 방법으로 이런 '대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몹시 궁금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소설은 '능력자 배틀물'을 베이스로 깔고 간다. 이는 책 표지에도 버젓이 나와 있기에 스포라고 할 수도 없다. 아무튼 이런 설정의 소설인 줄은 몰랐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의 살인마 역시 '초능력'을 이용해 완전범죄를 이뤄낸다. 미스터리 소설에 초능력이 개입하면 사실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읽기 전의 이런 우려와는 달리 소설은 초현실적인 설정을 가지고 가면서도 나름 그 세계관 위에서 철저히 논리적인 미스터리를 선보였다. 소설 속 살인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역시 살인마와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능력치를 최대한 활용해서 살인마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간파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주인공이 많이 불리한 상황이라 싸움이 만만치 않다. 상대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내야만, 최종적으로 살인마를 제압할 수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탄탄한 논리적 전개를 선보인다. 판타지적 설정을 바탕에 깔고 가면서도 결국 이 소설은 판세를 뒤집는 결정적 한 방에 있어선 '추리소설의 묘'를 잃지 않는다.


교실이 혼자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소설을 읽으며 제목이 뜻하는 바를 내내 곱씹었다. 학창시절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교실에 드리워진 왁자지껄한 소음이 일순간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 내 눈에 비친 그 소음의 결정체는 '가식덩어리'였다. 친한 척, 친구인 척, 유쾌한 척, 동료애인 척, 활기찬 인간인 척, 그렇게 무리에 끼지 못 하면 초라해지지 않을까 하는 몸부림들의 아우성! 보이지 않는 칼만 있다면 그 가식의 아우성을 난도질하고 싶었다. 교실이, 찍소리 못 할 때까지. 책 속 주인공의 능력이 예기치 못하게 인물들의 '진실'을 캐치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어쩌면 인간은 '혼자'가 가장 편하다는 진실을 인정하면서도 '함께'이어야 한다는 거짓에 몸을 맡기는 건 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하 호호 거리며 가식을 떠는 행위는 사실 피곤하다. 편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결국 '교실'을 떠나도 '세상'이라는 집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능력과 추리- 상반되는 두 세계관이 어긋나지 않고 조화롭게 믹싱한 잘 빠진 청춘 미스터리 성장물이다. 생각보다 라이트한 소설이었고, 그런 만큼 가독성은 좋았다. 하지만 묵직한 감동은 없었다. '살인마의 심리'에 무척 공감했지만, 동기 및 사연이 조금 빈약했다. 살인마와의 최종 에피소드도 '이런 식으로 처리해야만 했나'라는 반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테마는 좋았지만, 인물들의 세세한 동선, 감정선이 조금씩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긋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가 촘촘하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이든 뭐든 소설은 역시 '드라마'가 강해야 묵직한 감동이 느껴진다. 작가가 좀 더 설득력 있게 인물의 감정선을 다듬었다면 걸작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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