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대 살인귀 스토리콜렉터 88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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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둘러싸인 외딴섬에 지어진 아동보호소. 사고와 폭우가 겹쳐 마침 섬에는 아이들만 남는다. 어른들이 없는 그 틈을 타서 세 명을 죽이려는 소년. 그러나 소년 보다 한 발 앞서 살인을 감행한 이가 있었다. 외부와 접속이 끊어진 섬, 살인은 내부자의 소행이다. 소년은 자신의 살인 계획을 은밀히 밀고 가면서도 자기 말고 또 한 명, 정체를 숨긴 채 연속 살인을 일삼는 '살인귀'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살인범 대 살인귀'는 국내 출간 전부터 기대하던 작품이었다. 88년생인 이 작가는 27세에 '00000000 살인사건'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추리소설로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작가의 필모그래피 및 작품 소개 글들을 보면 상당히 독특한 발상과 감각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이 국내 출간하길 기다렸고, 특히 '살인범 대 살인귀'는 소개 글만으로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다. 섬에 고립된 아이들끼리의 사투라는 서바이벌적인 요소와 살인을 계획한 범인 보다 앞서 살인을 감행하는 살인귀와의 격돌이라는 부분이 너무 흥미로웠다. 


소설 자체는 무척 깔끔하게 잘 빚어진 미스터리였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구성을 지녔다. 개인적 이유 때문에 살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한 소년과 그보다 앞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귀의 이야기. 그리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살인귀의 어린 시절 이야기. 이 두 이야기가 교차로 이어지며 라스트에 이르면 완벽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짧은 시간 동안 살인이 여러 번 일어나고, 살인의 엽기성도 높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가볍다. 그래서 가독성은 높은 편이다. 복선 회수 및 추리의 논리성, 그리고 스토리를 뒤집는 반전까지- 미스터리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구성과 기교에도 흠잡을 곳이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말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과연 누가 살인귀일까'를 놓고 내내 벌이던 심리적 추격전의 재미가 라스트에 드러나는 뜻밖의 진상에서 조금 허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라스트의 반전은 그때까지의 스토리를 뒤집는 반전이기도 하지만 정서상의 분위기까지 뒤집는 반전이었다. 아쉬운 부분은 이 '정서상의 반전'이었다. 이 반전으로 인해 초반부 가슴을 아련하게 했던 '감수성'이 왕창 깨져버렸다. 나는 이 미스터리의 서사가 종국에 이르면 좀 더 깊고 감성적인 영역까지 아우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오락적 측면은 강하지만 드라마성이 얕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앞서 말했듯, 미스터리로서의 묘미와 완성도에는 별다른 흠이 없었기에, 클로즈드 서클물로서는 성공작이라 볼 수 있겠다.


이 작가의 책은 이미 국내 출간한 '앨리스 더 원더 킬러'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보다 '00000000 살인사건'등 미 출간작들에 더 관심이 많다. 부디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국내 출간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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