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정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지구를 덮어버린 미지의 존재. 커다란 해파리 같은 것이 지구를 덮고, 그로 인해 지구상엔 푸니라는 찹쌀떡같이 생긴 괴물이 등장한다. 푸니는 아무리 공격해도 분열할 뿐 끝없이 생존한다. 불에 태우면 죽지만 그로 인해 대규모 화제가 발발, 지구는 대재앙에 빠진다. 과학자들이 해파리를 분석한 끝에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해파리 중심에 핵이 있고 그 핵 바로 옆에 뭔가가 뒤엉켜 있다. 그것은 행방불명 된 스즈가미 세이치라는 사람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지겹고 무의미한 하루를 시작하는 스즈가미 세이치. 문득 무기력한 절망감에 빠진 세이치는 출근길을 이탈하고, 의식도 없이 길을 걷는다. 그러다 눈을 떠보니, 평화롭고 아름다운 낯선 풍경이 보인다. 모두 친절하고, 원하는 것을 쉽게 이룰 수 있는 마을. 세이치는 그곳에서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딸까지 생긴다. 모든 게 만족스럽고 평온하던 그때, 한 남자가 세이치를 찾아와 말한다.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닙니다. 저는 선생을 설득해서 이 세계의 핵을 파괴해 지구를 구하고자 왔습니다.


'야시', '금색기계'등 이제껏 한 번도 만족하지 않은 적이 없던 쓰네카와 고타로의 신작 '멸망의 정원'. 이계와 현계의 이야기가 교차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대재앙을 다룬 아포칼립스물에 가깝다. 느닷없이 지구에 들러붙은 미지의 존재로 인해 지구엔 푸니라는 괴물이 발생하고, 인간도 건물도 자연도 모든 것이 푸니화되며 지구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푸니 대책반 요원들이 푸니와 싸우고, 그런 한편 지구에 붙은 존재의 핵을 파괴하고자 그곳으로 돌입대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줄거리를 더 얘기하면 독서의 재미가 반감하므로 여기서 줄거리를 더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금색 기계'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이 작가는 스토리텔링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멸망의 정원'은 평화로운 이계와 지옥이 된 현계가 교차하며 두 세계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금색 기계'와 비슷하게 이 작품에도 많은 인물이 등장하며 제각각의 사연을 풍성하게 담아낸다.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며 또 장대한 서사의 줄기 속에서 자신의 몫을 다한다. 때문에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독자의 마음은 미묘해진다. 두 세계가 격돌할 수밖에 없을 때, 과연 독자는 어느 세계에 더 마음을 줄까? 작가는 그 미묘한 지점을 쥐고 흔드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평화로운 이계도, 푸니와 맞서 싸우는 지구인들도- 어느 쪽도 미워할 수 없는 아득한 여운이 밀려든다. 아름다운 꿈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힘든 현실을 버려도 되는 것일까?(그래도 나는 세이치를 응원했다) 


과연 지구를 덮은 '미지의 존재'는 무엇일까? 책을 덮고 그것을 생각해봤다. 어쩌면 그것은 '희망을 잃은 시대'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마침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재앙의 시대다. 그뿐 아니라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로 뒤덮였다. 희망보다는 절망 쪽으로 무게추가 한참 기울어진 세상이다. 희망은 모두 소멸해서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날아간 희망들이 뭉쳐진 결정체가 어쩌면 그 '미지의 존재'일 테다. 미지의 존재가 절망을 부른 게 아니라 지구는 이미 절망으로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다. 멸망은 우주의 어떤 존재가 아닌 인간들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구를 덮은 '미지의 존재'는 지구인에게 희망을 던진다.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결국 희망을 갖게 한다. 


정말로 뒷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도저히 책장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가독성이 있는 작품이다. 다시 한번 쓰네카와 고타로의 필력에 감탄하며 빨리 작가의 다음 작품이 출간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분명 과작하는 작가는 아닐 텐데, 일본 출간작은 꽤 많을 것 같은데 좀 다른 작품들도 출간해주길 바란다) 놀라운 상상력과 매력적인 세계관, 흥미로운 인물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아련한 슬픔을 자극하는 마법 같은 스토리에 빠져들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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