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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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여름,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와 단 둘이 집에 남게 된 히데키. 초인종 소리가 들려 현관을 보니 반투명 유리문 너머로 회색의 그림자가 보인다. '긴지 씨 계세요? 시즈 씨 계세요?'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찾는다. 두려움을 느낀 히데키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아내 가나, 딸 치사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히데키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긴지 씨 계세요? 시즈 씨 계세요?' 오래전 외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했던 그 요괴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치린 히데키는 공포에 떤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린다. '히데키 씨? 가나 씨?'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말을 듣지 않는 히데키에게 '간코가 온다'라며 겁을 줬다. 간코는 요괴의 일종이며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고 말했다. 간코 정도로 얌전해지다니, 우리 동네엔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있지. 그게 오면 절대로 대답하거나 들여보내선 안 돼. 현관으로 오면 문을 닫으면 되는데 뒷문으로 오면 위험해. 뒷문을 열면 끝이지. 잡혀서 산으로 끌려가. 그게 뭐냐고 묻자 외할아버지는 말했다. 이름이 '보기왕'이라고 했어...


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 '보기왕이 온다'는 일본 전설과 괴담, 민속학까지 아우르며 '보기왕'이라는 새로운 요괴 캐릭터를 끌어낸다. 소설은 세 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챕터에선 보기왕이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세 번째 챕터에 이르면 마침내 그 공포의 실체와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세 챕터는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다. 보기왕과 처음 조우하게 되는 첫 번째 챕터가 가장 으스스하며 공포소설로서 완성도도 뛰어나다. 두 번째 챕터는 심리 스릴러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보기왕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다루는 세 번째 챕터는 액션 판타지로 장르가 바뀐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개인적으로는 압도적인 공포감을 선보이는 첫 번째 챕터가 가장 흥미진진했다. 첫 번째 챕터 하나만 따로 떼어놓는다면 근래 읽은 가장 무서운 소설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미쓰다 신조의 분위기도 났다) 


챕터가 바뀌면서 시점과 분위기도 바뀌며 초반의 공포감이 조금씩 옅어지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이어가는 솜씨는 훌륭했다. 무엇보다 '안으로 들여보내면 죽는다!'라는 '보기왕'이라는 요괴가 내뿜는 압도적인 공포감만으로도 마지막까지 책장을 쉼 없이 넘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 번 찍히면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집요하게, 끝까지 찾아오고야 마는 무시무시한 이 캐릭터는 '링'의 사다코만큼이나 신선했다. 오카다 준이치, 츠마부키 사토시, 쿠로키 하루, 마츠 다카코 주연으로 영화화가 이뤄졌는데 영상 속에서는 보기왕이 어떻게 표현될지도 무척 궁금하다. 초반의 압도적인 공포감,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과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면 극한의 퇴마사 고토코와 극한의 요괴 보기왕과의 최후 대결에 다다른다. 나약한 인간들은 보기왕이 뻗는 핏빛 마수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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