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문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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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아들로 살아온 다지마에게 가난한 구라모치가 다가온다. 초등학교 때의 만남 이후로 구라모치는 특유의 말솜씨와 남다른 사기술로 다지마를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그들의 질긴 악연은 다지마가 성장해서 취직하고 결혼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구라모치는 다지마에게 친절을 베풀고 돈을 벌게 해줄 것처럼 다가와 언제나 모든 것을 다 뺏고 처절한 고통만을 남기고 떠난다. 그럴 때마다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죽이고 싶지만 매번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마침내 폭발할 듯한 분노에 휩싸인 다지마는 오래도록 미뤄왔던 살인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구라모치와 만난다. 그러나 예측치 못한 사태와 직면하며 걷잡을 수 없는 진실의 혼돈 속에 빠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살인의 문'을 읽으며 내내 샤르트르가 했던 '타자는 지옥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물정 모르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다지마는 뱀 같은 구라모치에게 끝없이 당한다.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노라, 이제 더는 상대도 하지 않겠노라, 매번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마수에 걸려들어 마리오네트처럼 허우적대다 추락한다. 그때마다 다지마는 분노를 느낀다. 구라모치를 죽여야겠다는 살의에 빠진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늘 그것을 실행하지 못한다. 살인자가 되는 마지막 단계, 그 최후의 문을 그는 늘 열지 못해 좌절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문 너머로 갈 수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 어디에 있을까? 


머나먼 옛날, 공동체 생활을 하던 원시시절, 늑대나 사자처럼 무리지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며 지내던 그 시절- 그때는 함께 움직여 먹이를 구하고, 함께 움직여 침입자를 몰아냈다. 그 집단시대가 오늘날에 와서는 개개인으로 조각조각 나눠진 1인시대로 변모했다. 이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이다. 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온기를 나누던 시대는 끝났다. 얼음 갑옷을 두른 것처럼 한 명 한 명 차가운 냉기를 풍기며 살아간다. 먼저 등을 밀지 않으면 내가 밀리는 세상이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세상이다. 타자는 모두 적이다. 그들이 언제 가면을 벗고 등뒤에 숨긴 칼을 꺼내들지 누구도 모른다. 말 그대로 타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이해할 수 없기에 타자는 지옥이다. 


소설을 읽으며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도 떠올랐다. 평온했던 일상이 느닷없이 무너지고, 나랑 아무 관계 없던 타인이 섬뜩한 미소와 함께 다가와 나를 처절한 공포와 고통 속으로 몰고간다. 지옥 속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하나다. 적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적은 놀랍게도 교묘한 화장을 하고 있기에 순간순간 눈이 현혹되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때문에 적을 죽이려면 내가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타자가 지옥이 된 세상 속에서. 소설 속 다지마는 정말 타자라는 무수한 지옥에 둘러싸여 처절하게 고통받고 철저하게 농락당한다. 그리고 결국 폭발한다. 타자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죽이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다지마는 금단의 마지막 문을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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