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차와 과자를

7월 15일 상량식 이후 현장에 갈 기회가 늘었다. 건축주로서 거의 매일 들러 일꾼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과 다과를 대접하는 게 좋았다. 내 집을 잘 만들어 주실 분들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지 않을까.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이라도 같지 않을까. 돈을 지불했으니 고마워하는 마음도 없이 뭐든 요구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끝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나도 정신 차려야겠다.

마음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매일 현장에 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또 건축주가 자꾸 현장에 오면 일하는 분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요시노 씨 말로는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가 집이 완성될 때까지 현장에 한 번도 안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완벽한 도면으로 지시를 했으니 올 필요도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시공회사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일까. 먼지 날리는 현장이 싫은 걸까.

고이즈미 씨는 현장을 굉장히 좋아하는 건축가다. 독립하고 난 다음부터는 시간만 나면 여기저기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공법과 소재 공부를 했단다. 현장에 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현장에서의 회의는 어쩐지 아침 시간이 많았다. 대략 9시나 이르면 8시 반 정도에 했다. 회의에는 고이즈미 씨, 요시노 씨. 데라바야시 씨, 고이즈미 씨 사무실 직원들, 목수, 도장, 수도, 전기, 가구 담당자 등이 참석했다.

일꾼들도 전문화되어 하는 일이 다 다르다. 시공 기간 중에 순서에 따라 번갈아 가며 자신의 작업을 진행해 마무리하고 돌아갔다. 이분들에게 직접 작업 지시를 내리는 것은 현장감독인 요시노 씨다. 일꾼들에게는 이바타 건축이 발주처가 된다. 현장감독에 따라 일 굴러가는 속도가 많이 다르다고도 한다. 시공회사를 보지 않고 현장감독에게 직접 일을 부탁하는 건축가도 있다고 한다.

일꾼들과 건축가가 만나 회의하는 것은 도면으로는 잘 알 수 없는 부분을 직접 전하기 위해서다. 나는 건축주이고 이바타 건축의 발주처이지만 그들에게 직접 구체적인 주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문가인 고이즈미 씨가 한다.

이 과정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건축주라고 해서 지시계통을 무시하고 이러쿵저러쿵하면 현장이 잘 돌아가지 않고 혼란만 가중시킨다.

나도 몇 차례 현장에 들르며 집이 점점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작은 집을 만드는데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구나.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 집주인 하기와라 슈 지음

건축기사 박준호 옮김

(홍시, 2012)

본 연재는 [아홉 평 나의 집]에서 발췌하여 한달간 계속합니다. (월~금 업데이트)

이 책은 전시회 기획자였던 저자가 '9평의 집' 마쓰자와 주택을 우연히 만나 이 집을 재현해 자기 집으로 만들기 위한 분투기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는 땅 찾기부터 고집대로 집 짓기까지 좌충우돌하지만, 이를 통해 집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고 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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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지진제와 두 번째 상량식


그날은 가랑비가 내리는 조용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차분한 느낌이었다. 지진제(地鎭祭)의 준비에 대해 요시노 씨에게 다시 듣고 건축가 아카세가와 겐페이 씨의 책 『나는 건축주로소이다』를 여러 번 읽으며 뭘 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긴장된다.

우리 가족이 현장에 도착할 때쯤에는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땅을 다시 찾았다. 남쪽의 생활녹지에 차가 다니지 않아서인지 정말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사람도 다니지 않았다.

조그만 천막을 쳐 두었는데 학교운동회에서 쓰는 것과 비슷했다. 요시노 씨가 비 올 것을 걱정해 미리 마련한 것이다.

잘 보니 땅 위에 집이 들어설 자리를 정방형으로 표시해 두었다. 천막 크기와 비슷하다. 진짜 작구나. 4개월 후에는 여기서 가족 넷이서 살게 된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으니 고이즈미 씨와 데라바야시 씨가 도착했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이분들도 조금 긴장한 눈치다.

이바타 건축 관계자와 우리 부모님도 오셔서 지진제를 시작했다. 이바타 씨의 소개로 근처 신사의 신관이 오셔서 지신에게 축원을 올렸다. 스미레와 아오이도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거렸다. 건축주인 내 순서가 되었다. 고이즈미 씨를 이어 내가 괭이질 시늉을 냈다.

“영차! 영차!” 하니 앉아있던 아오이가 피식하고 웃는다.

너무 긴장해서 목소리가 많이 올라갔다. 모두들 웃었다. 재미있는 지진제 체험이었다.

지진제를 올리고 20일쯤 후인 7월 15일 상량식이 있었다. 금세다. 여름답게 제대로 더운 날이었다. 아침부터 일꾼들이 기둥과 보를 조합해 세우고 있었다. 기둥전에서 보고 6개월만인가. 이번에는 기초도 제대로 된 곳에 서 있다.

전람회에서 한 달이나 질리게 봤는데도 다른 느낌이다. 세워지는 장소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일 수도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감동적이라는 느낌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6월 26일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의 지진제가 열렸다. 가족과 고이즈미 사무소 직원들, 이바타 건축 직원들 등이 모였다. 근처의 신사에서 신관을 모셔와 지신의 노여움을 풀고 원만한 공사를 기원했다.


상량식은 저녁부터 열렸다. 공사관계자, 친척, 친구 등 30명 정도 모여 북적북적했다. 상량식은 축조공사의 마지막에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이다.

우리는 의식이라기보다는 공사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모임 정도의 성격이었다. 세운 주량들 사이에서 베니어 테이블을 놓고 술과 간단한 안주를 나눠 먹었다. 4개월 후에는 이 집에 살게 되는 걸까. 완성한 집에서 마시는 맥주는 어떤 맛일까. 어떤 공간이 만들어질까 기대된다.

요시노 씨도 “이렇게 떠들썩한 상량식은 오랜만이에요. 좋네요.”라며 즐거워하셨다. 요즘은 형식적인 상량식이 많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는 집 주위를 돌며 귀신잡기를 했다. 슬슬 어두워지고 취기도 오를 즈음 해산했다.


28평의 땅 위에 9평의 집을 축조. 7월 15일 상량식을 하고 목수들의 손으로 다음 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조금씩 집의 모양이 갖춰지는 걸 보고 있는 게 정말 즐겁고 귀중한 체험이었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 집주인 하기와라 슈 지음

건축기사 박준호 옮김

(홍시, 2012)

본 연재는 [아홉 평 나의 집]에서 발췌하여 한달간 계속합니다. (월~금 업데이트)

이 책은 전시회 기획자였던 저자가 '9평의 집' 마쓰자와 주택을 우연히 만나 이 집을 재현해 자기 집으로 만들기 위한 분투기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는 땅 찾기부터 고집대로 집 짓기까지 좌충우돌하지만, 이를 통해 집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고 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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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쓰던 가구들은 가져가지 않는다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라는 책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평균적인 가족의 소유물을 그들의 집 앞에 늘어놓고 찍은 사진집이다. 박력도 있고 그 나라의 실제 생활을 알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생활은 물건에서부터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새롭게 느꼈다.

일본 가족의 사진도 있다.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2층짜리 단독집이다. 놀라운 것은 그 집 앞에 놓인 물건의 가짓수였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집 안에 있던 물건 수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그 집이 별나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에는 마치 물건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만한 가족이 많다. 고가에 중요한 물건이라면 모를까 필요도 없어 보이는 어디에선가 받은 듯한 경품 같은 것들을 버리지도 않고 갖고 산다.

『버리는 기술』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버리는 기술이 전혀 없는 게 현재의 일본인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누라도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함부로 물건을 사는 타입은 아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못하는 쪽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은 평균보다는 물건이 적어 보인다. 고이즈미 씨도 회의하러 우리 집에 왔다가 “집에 물건이 별로 많지 않네요.”라며 놀랐다.

물건과 수납의 관계. 작은 집에 살기 위해 반드시 해결할 문제다. 어느 정도의 수납공간이 필요할까.

수납은 인테리어 잡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보기 좋게 제대로 정리하는지 보여 준다. 틈새가구 같은 이상한 물건까지 팔리는 걸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어떤 구석에라도 수납공간을 만들어 낸다.

실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식기장, 책장은 새집에는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는 마누라와 의견이 갈렸다.

“우리 부모님이 시집 올 때 마련해 주신 가구를 버리라는 거예요? 식기장도 책장도 아직 더 쓸 수 있다고요.”

보통은 가지고 있는 가구에 맞는 계획을 짜겠지만 집이 좀 작아야 말이지. 게다가 별로 비싸지도 않고 디자인도 별로인 수납가구 때문에 기껏 해둔 디자인을 바꾸는 게 싫었다. 집을 지을 때는 진짜 마음에 드는 가구가 아니라면 버리는 게 정상 아닌가.

결국,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의 수납은 전부 붙박이로 결정했다. 2층 구석에 3×0.6미터 깊이의 수납공간을 마련해 양복 등을 보관했다. 양복도 반은 버렸다.

책을 처분하는 게 참 괴로웠다. 책이 좋아 미치겠는 정도는 아니어서 넘칠 정도로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 매일 책장을 쳐다보며 “이건 버려야겠다. 아냐, 갖고 가야지.”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열다섯 박스 정도의 책을 처분했다. 책장은 2층에 폭 210, 높이 70, 깊이 36센티미터로 만들 테니 거기에 넣지 못하는 책은 다 버려야 했다.

부엌 수납은 마누라가 고생이 많았다. 새 부엌에 물건이 다 들어갈까. 작은 접시 한 장 한 장 다 크기를 측정했다. 양념통이나 술병은 식탁 밑에 수납하기로 했다.

1층 다다미 아래도 전부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건 정말 잘 결정한 일이다. 이걸 안 만들었으면 물건들을 정리할 방법이 없었다. 이곳에 골프백과 스키, 사진 앨범 등 여러 가지를 넣었다.

1층 다다미방에는 이불을 넣어 두는 공간도 60센티미터의 깊이로 만들었다.

이렇게 수납은 어떻게 해결했다. 정리하다 보니 쓸데없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갖고 살아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처음에는 물건을 버리는 것에 저항감이 들더니 막상 치우고 나자 생활에서 먼지를 털어 낸 느낌이 들었다.


차와 텔레비전이 없는 생활을 택하다

우리들이 최소한의 주거 주택에 살기에 유리한 것 중에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없다는 점이 있다. 텔레비전은 이전에 이사할 때 상태가 좋지 않아 처분했다. 아이들 교육상의 이유도 있었다.

그렇지만 난 사실 텔레비전을 무척 좋아한다. 아무리 볼품없는 프로그램이라도 끝까지 다 보고야 만다. 내 나이가 텔레비전을 보며 자란 첫 세대이기도 하다. 텔레비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적당히 보며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처럼 의지가 약한 인간은 ‘적당히’가 안 된다. 텔레비전을 없애니 꽤 의미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건축가는 어디에 텔레비전을 둘 것인가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사토 씨 말로는 난로와 텔레비전의 위치 때문에 항상 머리가 아프단다. 인테리어에서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을 없애 버리고 싶다고. 좀 더 얇은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 이런 고민도 사라지겠지.

자동차 문제는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면허가 없어 할 말이 전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면허를 따지 못했다. 마누라는 면허는 있지만 도쿄로 온 후로 운전한 적이 없는 장롱면허다. 도쿄에 살다 보니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전철, 버스, 택시로 충분했다.

차가 없으니 차고도 필요 없다. 주택단지에 가면 좁은 공간의 해결을 위해 1층에는 차고를 두고 2, 3층에 주거하는 형태가 많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좁은 땅에 정원 같은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주차장을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돈이 든다. 차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새로운 생활을 꿈꿀 때면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등을 당연시하는데,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밥통 등을 구입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얼떨결에 구입하다 보면 전자제품이 사는 건지 내가 사는 건지 알 수 없는 집이 된다. 앞으로는 물건을 훔치는 도둑보다 물건을 내키는 대로 사들이고 보는 범죄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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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위해 여성 탈의실을 만들까?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는 여자아이 둘이 살 집이기도 하다. 이때는 아직 여덟 살, 여섯 살이었지만 10년 후에는 열여덟, 열여섯이 된다. 아이들 방은 정말 필요하다.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무서웠던 2층 난간.


여자아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남자식구를 싫어하게 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정말 그럴지 신경이 쓰였다.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응석 부리는 것도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걸까.

지금은 나와 함께 목욕도 하고 가족 넷이서 같이 자고는 하지만 몇 년 후엔 많이 달라지겠지.

가족 중에 남자는 나뿐이라 옷 갈아입을 장소도 필요하겠구나.


설계 도중에 진지하게 여자탈의실을 만들 생각을 했다. 여자 셋이 안심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라는 마누라의 명령도 있었다.

이 문제는 고이즈미 씨도 고민했다. 물론 이렇게 작은 집에 그런 방을 만들 수는 없다.

“블라인드나 커튼 같은 것으로 옷 갈아입을 때만 쓸 수 있게 하죠.”라는 게 상냥한 고이즈미 씨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결국 여자탈의실 안은 그 때만 생각했을 뿐 설계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아이들 방에 대해서도 속 깊은 고이즈미 씨가 몇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아이들 방 두 개를 2층에 만드는 경우와 정원에 증축하는 계획도 있었다. 양쪽 다 제대로 된 방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최소한 공간 개념이었다. 2×2미터 정도의 공간에 침대, 의자, 책상, 작은 책장, 옷걸이를 두는게 다다. 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최소한 미리 생각해 둔 것으로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의 일을 너무 많이 생각해 두어도 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자란 집도 세 형제의 성장에 맞춰 증개축을 반복했었다. 아버지가 방안지에 방의 배치를 그리고는 근처의 목수 아저씨를 불러 일을 시켰던 기억이 있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도 아이들이 커 가면 모습이 변해 가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서 너무 앞을 내다보지 말고 현재 가족에게 어울리는 집 짓기를 하자.


2003년 아이들의 방을 만들었다. 스미레가 중학교 1학년, 아오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우유팩을 재생해 만든 보드로 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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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미야와키 마유미 씨가 어떤 책에서 “집은 가족이 눈치 볼 것 없이 풀어지는 공간”이라고 했다. 리빙룸은 가족 공유의 공간이다. 가족이 자연스레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이곳이 집에서 아주 중요한 공간이 아닐까. 가족과 집의 관계, 그런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 좋은 집이란 가능하지 않겠지.


하지만 가볍지 않은 문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자 머리가 점점 더 아파 온다.

후지와라 토모미 씨가 쓴 『집을 만든다는 것』이라는 책의 부제는 ‘후회 않는 집 짓기와 가족관계’였다. 집과 가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책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족의 헝클어진 끈을 풀어 다시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수단으로 ‘가족을 새롭게 만들기’도 가능한 것이다.”

정말 그럴까. ‘집 짓기’도 제대로 되지 않고 가족이 붕괴하는 사태도 있지 않을까. 집을 신축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계획하는 동안 결국 이혼한 경우도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가족 관계와 방의 배치를 묶어 생각해 보면 생활 시간이 다른 가족이 각자의 생활로 바빠 같이 있는 시간이 없다. 결국 각자의 방이 필요한 것뿐 같이 살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러니 ‘집을 만든다’는 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가족의 생활에 맞추어 집을 만들자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이제까지 어떻게든 같이 살아왔는데. 가족의 생활을 새롭게 본 순간에 가족으로 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담으려는 것도 위험하다. 행복한 가족을 연기하는 것보다 인연이 닿아 함께 살고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혼자다. 이런 말을 하니 “당신 정말 냉정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마누라에게 듣는 것일까.

현대가족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산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도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거나 가정폭력,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나는 세상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이유가 뭘까. 집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떤 집에 살든 일어날 문제는 일어나겠지. 문제와 집을 연관시키는 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문제가 적은 집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은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가족을 위한 집’이라는 사고방식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만이 보는 장소,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장소. 그곳에서는 뭘 해도 좋다는 느낌. “우리만의 집이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는 생각이 드는 곳.

역시 집에는 타인의 눈이 필요하다. 남의 눈이 있어서 처음으로 집과 가족이 성립하는 것이다. 남의 눈이란 친척이나, 이웃, 친구일 수도 있겠다.

가족들이 마음 편히 노는 것만으로 집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매년 기념 파티에서 연주회, 바비큐 파티, 하이쿠 발표회, 그릇 전시회 등 여러 가지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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