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쓰던 가구들은 가져가지 않는다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라는 책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평균적인 가족의 소유물을 그들의 집 앞에 늘어놓고 찍은 사진집이다. 박력도 있고 그 나라의 실제 생활을 알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생활은 물건에서부터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새롭게 느꼈다.
일본 가족의 사진도 있다.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2층짜리 단독집이다. 놀라운 것은 그 집 앞에 놓인 물건의 가짓수였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집 안에 있던 물건 수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그 집이 별나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에는 마치 물건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만한 가족이 많다. 고가에 중요한 물건이라면 모를까 필요도 없어 보이는 어디에선가 받은 듯한 경품 같은 것들을 버리지도 않고 갖고 산다.
『버리는 기술』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버리는 기술이 전혀 없는 게 현재의 일본인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누라도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함부로 물건을 사는 타입은 아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못하는 쪽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은 평균보다는 물건이 적어 보인다. 고이즈미 씨도 회의하러 우리 집에 왔다가 “집에 물건이 별로 많지 않네요.”라며 놀랐다.
물건과 수납의 관계. 작은 집에 살기 위해 반드시 해결할 문제다. 어느 정도의 수납공간이 필요할까.
수납은 인테리어 잡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보기 좋게 제대로 정리하는지 보여 준다. 틈새가구 같은 이상한 물건까지 팔리는 걸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어떤 구석에라도 수납공간을 만들어 낸다.
실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식기장, 책장은 새집에는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는 마누라와 의견이 갈렸다.
“우리 부모님이 시집 올 때 마련해 주신 가구를 버리라는 거예요? 식기장도 책장도 아직 더 쓸 수 있다고요.”
보통은 가지고 있는 가구에 맞는 계획을 짜겠지만 집이 좀 작아야 말이지. 게다가 별로 비싸지도 않고 디자인도 별로인 수납가구 때문에 기껏 해둔 디자인을 바꾸는 게 싫었다. 집을 지을 때는 진짜 마음에 드는 가구가 아니라면 버리는 게 정상 아닌가.
결국,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의 수납은 전부 붙박이로 결정했다. 2층 구석에 3×0.6미터 깊이의 수납공간을 마련해 양복 등을 보관했다. 양복도 반은 버렸다.
책을 처분하는 게 참 괴로웠다. 책이 좋아 미치겠는 정도는 아니어서 넘칠 정도로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 매일 책장을 쳐다보며 “이건 버려야겠다. 아냐, 갖고 가야지.”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열다섯 박스 정도의 책을 처분했다. 책장은 2층에 폭 210, 높이 70, 깊이 36센티미터로 만들 테니 거기에 넣지 못하는 책은 다 버려야 했다.
부엌 수납은 마누라가 고생이 많았다. 새 부엌에 물건이 다 들어갈까. 작은 접시 한 장 한 장 다 크기를 측정했다. 양념통이나 술병은 식탁 밑에 수납하기로 했다.
1층 다다미 아래도 전부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건 정말 잘 결정한 일이다. 이걸 안 만들었으면 물건들을 정리할 방법이 없었다. 이곳에 골프백과 스키, 사진 앨범 등 여러 가지를 넣었다.
1층 다다미방에는 이불을 넣어 두는 공간도 60센티미터의 깊이로 만들었다.
이렇게 수납은 어떻게 해결했다. 정리하다 보니 쓸데없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갖고 살아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처음에는 물건을 버리는 것에 저항감이 들더니 막상 치우고 나자 생활에서 먼지를 털어 낸 느낌이 들었다.
차와 텔레비전이 없는 생활을 택하다
우리들이 최소한의 주거 주택에 살기에 유리한 것 중에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없다는 점이 있다. 텔레비전은 이전에 이사할 때 상태가 좋지 않아 처분했다. 아이들 교육상의 이유도 있었다.
그렇지만 난 사실 텔레비전을 무척 좋아한다. 아무리 볼품없는 프로그램이라도 끝까지 다 보고야 만다. 내 나이가 텔레비전을 보며 자란 첫 세대이기도 하다. 텔레비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적당히 보며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처럼 의지가 약한 인간은 ‘적당히’가 안 된다. 텔레비전을 없애니 꽤 의미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건축가는 어디에 텔레비전을 둘 것인가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사토 씨 말로는 난로와 텔레비전의 위치 때문에 항상 머리가 아프단다. 인테리어에서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을 없애 버리고 싶다고. 좀 더 얇은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 이런 고민도 사라지겠지.
자동차 문제는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면허가 없어 할 말이 전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면허를 따지 못했다. 마누라는 면허는 있지만 도쿄로 온 후로 운전한 적이 없는 장롱면허다. 도쿄에 살다 보니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전철, 버스, 택시로 충분했다.
차가 없으니 차고도 필요 없다. 주택단지에 가면 좁은 공간의 해결을 위해 1층에는 차고를 두고 2, 3층에 주거하는 형태가 많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좁은 땅에 정원 같은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주차장을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돈이 든다. 차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새로운 생활을 꿈꿀 때면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등을 당연시하는데,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밥통 등을 구입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얼떨결에 구입하다 보면 전자제품이 사는 건지 내가 사는 건지 알 수 없는 집이 된다. 앞으로는 물건을 훔치는 도둑보다 물건을 내키는 대로 사들이고 보는 범죄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2013/63/cover150/8993941688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