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사의 명작과 만나다

내가 집을 만든 것은 약 10년 전인 1999년이다. 당시 직장에서 어떤 집을 만났다. 그 집은 전후 주택 불황이 심각했던 1952년에 지어진 것으로, 일본 주택 역사의 명작이다. 건축가 마쓰자와 마코토 씨의 자택으로, ‘최소한의 주거(最小限住居)’라고 불린다. 매년 개최되어 온 ‘일본인과 주거’ 시리즈 제4회, ‘기둥’을 테마로 한 전람회에 집의 기둥과 들보의 목조 구조만을 재현했다. 즉 집 짓기 중 상량식 때의 모습이다. 정말 아름다웠다. 3×3=9평의 정방형으로 통풍이 잘 되는 2층짜리 작은 집이다. 손에 잡힐 듯한 크기였다. 둥근 기둥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다.

이 공간에 몸을 두고 있으니 나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집을 완성시키고 싶다’는. 집을 완성시키기 위해 선택한 손쉬운 방법은 내 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전람회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그 집은 직장에서 일로 만난 것이다. “일을 집에 들고 가서 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이 경우는 “일로 집을 들고 간다.”가 된 셈이다.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기둥전은 1999년 1월 9일부터 2월 9일까지 개최되었다. 마쓰자와 주택의 목조축조가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목조축조는 벽과 바닥면에 기대지않고 기둥과 보의축조로 지탱하는 공법이다. )


평생 임대생활을 해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시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고 우리집은 4인 가족이었다. 나는 37세, 전업주부인 마누라도 37세, 스미레는 여덟 살, 아오이는 여섯 살이었다. 그때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은 방이 두 개에 부엌이 달린 53평방미터 크기의 집으로 고엔지에 있는 임대아파트(일본의 ‘아파트’는 우리의 낡은 2층 주택쯤 된다. 우리식의 아파트를 일본에서는 ‘맨션’이라 부른다. —옮긴이)였다. 역까지 15분으로 월세는 15만 8천 엔(약 210만 원)이었다. 슬슬 마음 편한 곳으로 이사할까 생각하던 중이었지만 집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돈을 빌리는 것도, 땅에 묶이는 것도 싫었다. 평생 임대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누라는 누군가 집을 소유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달 비싼 월세를 낼 바에야 집을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집을 짓고 싶다는 말을 꺼내니 마누라는 꽤 놀란 눈치였다. 집을 짓는 것에는 찬성했지만, 전람회에 재현된 주량(柱梁, 기둥과 대들보)을 가지고 만들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것이었다. 건축 면적상으로 지금보다도 더 좁은 집인데, 네 식구가 정말 살 수 있을지, 나중에 곤란해지느니 처음부터 좀 더 넓게 만드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했다.

건축 면적 외에도 커다란 문제가 두 가지 더 있었다. 우선은 땅이다. 우리에게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었다. 땅도 없는 사람이 아무리 집을 짓고 싶다고 해 봐야 현실성이 없다. 전람회가 끝날 때까지 약 1개월 안에 땅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번째는 돈이다. 착수금을 어쩔 것인가. 빌릴 수는 있을까. 연봉에서 얼마쯤 빌릴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것보다 집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는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가’인데, 내게는 처음부터 답이 있었다. 설계는 기둥전람회의 디자인을 부탁했던, 동년배인 고이즈미 마코토 씨에게 부탁했다. 성실은 기본이고 디자인을 생각하는 그의 사고와 표현법에 공감하고 있었다.

시공은 전람회에서 재현을 부탁했던 이바타 건축에 부탁했다. 예전에 마쓰자와 마코토 씨의 일을 여러 번 해 보기도 했고, 우연이지만 우리가 이사를 생각하고 있던 지역에 있는 회사다.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는 설계와 시공이 금세 정해져 버렸다, 라고 할까. 신뢰할 수 있는 두 곳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집을 집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10년간 살고서 발견한 것들

나는 이 집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동안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던 집 짓기를 내 것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고 집을 만드는 사람의 기분을 알게 되었다. 자기 집을 짓는다는 것과 주거에 대한 생각에도 자신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10년을 살고 나자 이 집의 좋은 점을 실감했다. 집의 이름은 두 딸에게서 따와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라고 붙였다. 아이가 자라는 집이라는 기분을 담았다. 두 딸아이들은 이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었다.

집 짓기 책은 많이 있지만, 이 책에는 내가 실제 체험한 집 짓기와 살아있는 느낌을 적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집 짓기는 내 일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전람회는 끝났지만, 자신의 집에 전시장을 옮겨와 여전히 전람회를 계속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또는 작은 집에 4인 가족이 사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꽤 특이한 집이다. 또, 이 책에는 평소 디자인 관련 일을 하며 보거나 듣거나 했던 나의 생각들이 모여 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이 책 속의 나는 생활인으로서의 입장과 전문가로서의 입장을 왔다 갔다 한다. 이 책이 이제부터 집을 만들려는 사람은 물론, 자신과 주거의 관계를 새로 보려는 사람, 이제부터의 주거는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참고가 된다면 행복하겠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매일 기분 좋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기분 좋은 집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집에 대한 생각을 한번 자유롭게 해 보자.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좋은 집은 무엇일까. 모두들 한 발 내딛어 본다면 좋겠다.


1999년. 스미레는 여덟살 아오이는 여섯살. 막 이사 와서 박스 안에서 놀고 있다.



2010년 2월. 스미레는 열여덟살, 아오이는 열여섯살. 미대생이 된 스미레는 집을 떠나 혼자 살 예정이다. 좋은 물건을 고집해 찾아다니고 있다.


(이 글은 신간 [아홉 평 나의 집]의 '여는 글'입니다. 월~금 오전 11시, 한달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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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dandy 2012-10-2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 집과 식구가 정말 한 가족이라는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