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언제나 익명으로 여행한다
로랑 구넬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까지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어왔다. 워낙 경쟁이 치열했던 직업을 가진 탓에 젊은 날의 나를 지탱시켜 주었던 책은 자기계발서였다. 특히 양장본임에도 너덜너덜해져 최근에 다시 구입한 <세상을 보는 지혜>는 험한 세상에서 나를 바르게 살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인생의 지침서였다. 이제는 자기계발서로 나를 다잡기엔 늙어버린 이유도 있지만, 어느 정도 내 삶에 틀이 잡혀있기에 읽지 않는 이유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거 보면 아직 더 살아야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려나...이 책은 마치 자기계발서를 일상에 적용하여 이야기로 보여주는 ‘눈으로 보는 자기계발서’ 같다. 심리 치유 소설이라는 새 분야를 탁월한 스토리텔링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신은 언제나 익명으로 여행한다》는 표지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게 한다.

 

 

 

 태어나면서 버려졌고, 거듭된 불행속에서 앨런 그린모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어머니로 인해 어머니가 원하는 삶을 살았던 앨런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랑하는 여자 오드리가 떠나자, 자살하기 위해 에펠탑으로 올라간다. 자살하기 직전, 에펠탑에서 만난 이브 듀브레유와 이상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이 남자는 앨런 그린모어에게 남은 삶을 변화시켜 주겠다고 한다.

 

 

“ 자네가 죽지 않고 삶을 계속하겠다면 내가 자네를 돌보겠네. 자네가 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그래서 자네가 행복해지도록 만들어주겠네. 그 대신……. 내가 말하는 모든 걸 행해야 해. 삶 속으로 ……. 뛰어들라는 소리지.”

 

 

이제껏 남에게 맞추어오며 살았던 앨런 그린모어에게 자신에게 각인되어 왔던 것들이 앨런 스스로를  불행하게 했으며 삶에서 희생자로만 살아왔다는 질책을 하며 앨런이 삶의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인생의 희생자로서 살면서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푸념과 불평,불만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았던 삶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야 한다며 듀브레유는 몇가지 주문을 하는데,

 

 

첫 번째 미션은 빵집에 가서 빵을 여러번 주문하고 여러번 거절후에 그냥 나오는 것.

두 번째 미션은 고급시계점에서 시계 마구잡이 고르다가 그냥 나오기.

세 번째 미션은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무조건 딴지걸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았던 앨런에게 이런 것들은 힘든 주문이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시작되었던 미션들을 수행해가면서 그린모어는 자신의 삶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데 우선 이런 미션들이 요구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반대입장을 내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십사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인 '나'를 내보이는 행위였으며 그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희생자로 자처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네

 

 

 

친아버지와 양아버지 모두에게 버림받았으며, 어머니에게 억압당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앨런은 비로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이나 실수, 실패라는 부정적인 말들이 사고방식으로 굳어져 스스로를 항상 무능한 존재라는 자기비판으로 대해왔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뇌에 깊이 새겨지게 되어감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자신을 부정해왔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으로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앨런은 자신을 옭아매던  굴레의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불필요한 매듭 같은 것이 풀어진 기분을 느낀다.

 

 

우리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앨런의 변화과정은 그런 '나'를 바로볼 수 있도록 한다. 앨런의 변명과 자기부정은 비단 앨런의 것만이 아닌 우리가 평상시 자주 하던 변명이자 자기부정이다.  그 속에 ‘나’와 닮은 앨런의 모습을 보며 혼자 웃다가 울기도 한다.  남을 의식하느라고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다가 화가 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앨런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찾아가는 앨런의 모습처럼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의 모습이 아니라 자유와 기쁨이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듀브레유의 훈련으로 자신의 존재를 바로보게 되자 두 번째 훈련은 타인의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은 칼 야스퍼스의 “인간은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줌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된다.” 는 의미를 상처 치유에 적용해 볼 수 있다. 혼자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타인을 위한 사랑이 상처의 항생제가 된다' 는 것을 앨런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기존에 앨런을 지배하였던 타인에 대한 불신과 삶의 회의가 반전되며  진정한 자아를 찾으며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앨런은 새롭게 태어난다. 소설의 마지막에 듀브레유의 눈에 가득찬 눈물을 보며 , 소설속에 가득한 '상처의 항생제'를 통해 우리의 아픈 상처에서도 꽃이 피어나기를 ... ^^

 

《네 이웃의 세계를 껴안아라, 그리하면 그 세계가 네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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