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죽다 - 정사情死의 정치학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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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사랑 때문에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서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
그 많은 인연에 왜 하필 우리 만나서 사랑하고 그대 먼저 떠나요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한 시절 잊진 못할 거야....

임재범의 사랑노래 中에서 -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임재범의 <<사랑>>이다. 임재범의 애절하고 허스키한 분위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들을 때마다 찌르르하다. 얼마나 사랑하면 다시 볼 수 없을 것을 걱정하고 먼저 떠나라고 하는지, 그리고 항상 머리에 강한 충격으로 남아있는 영화<<글루미 선데이>>에서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사랑싸움을 벌이다가 두남자가 한말, " 일루미와 헤어지느니 반으로 나누자." 는 말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 , 자신을 위해서 살아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해 들어가는 영상은 오랜 세월동안 사랑과 함께 떠오르던 기억의 편린들이다. 이렇게 둘이서 끔찍이 사랑하다 어느 한쪽이 먼저 목숨을 끊거나 함께 죽는 ‘그 일’을 우리는 ‘정사(情死)’라 부른다. 

 

이 책 <<사랑하다 죽다>>에서는 이제 껏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의 관점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여 역사속에서 모든 것이 변해왔듯이 '정사' 또한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본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과는 틀린 접근방법이다. 저자는 사랑을 '인문학적 주제이자 사회과학적 탐구대상'이라은 시선으로 책을 집필한 듯 하나, 사랑이라는 것이 탐구대상인 것은 맞지만 과연 정치적이고 사회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첫장의 시작에서 '연애'를 '정치'라고 하는 이유를 저자는 '관계'의 지탱과 확장 혹은 단점과 소멸까지 말하며 굳이 깐깐하게 굴지 않더라도 사람이 기다리며 간절해하는 '다스림'의 정치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랑해서 기꺼이 대신 죽어도 좋은 , 오로지 죽음만이 사랑의 완결을 가져오는 경우 또한 흔치는 않은 경우이다. 따라서 사랑 또한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죽음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데도 멈출 수 없는 무한소유 욕구의 독한 패러독스와 세상 모두가 사라져도 둘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제로섬'논리로 인한 결과는 죽음뿐이다. 러나 결국 이런 정사 情死는 '자신을 위해 죽는 이기적이고 급진적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왕조국가에서 정사情死는 가부장제 국가 남성 특권과 그 영속적 향유를 의식한 권력의 의지로서, 사랑이 하나의 학습과 체험을 통한 교화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신분사회 조선이 강요한 복종의 일방성과 그로써 무르익은 위선의 문화가 부추긴 귀결은 자연적으로 情死로 이어져 열녀문(열행)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식민시대의 정사情死를 살펴보면 신분의 제약도 사라지고 유교 격식과 율법또한 자유로와지지만 그 속에서 탄생하는 '신여성'이란 " 서양의 물질, 육체성을 정신의 부재와 타락 및 퇴페'가 내재된 식민지 조선에서 부르주아의 자식과 유녀층이 따라하는 퇴페적인 현상이며 겉치레만 따라하는 어설픔 모방, 불완전한 모방의 모습이었다. 이 사이를 연애라는 자유감정이 근대와 함께 스며들게 되는데 왕조국가에서 보았던 열행의 정사 情死의 모습은 사라지지만 식민지시대의 정사情死는 훨씬 엽기적이고 살벌한 죽음과 죽임의 형식으로 분화, 발전하게 된다. 저자는 이 변화의 모습이 3.1운동 이후로 본격적으로 도드라지기 시작했으며 나라 잃고 모국어를 쓰지 못하는 삶이 맺지 못할 님과의 인연이 더욱 처절하고 기구하게 다가와 죽음마저 불사하는 모습의 정사情死로서 암울한 시대상을 자기 부정성과 연결되어 표출된 모습으로서 메커니즘이 작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신여성은 계층과 신분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의식수준과 행태의 파격을 함축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봇물 터지듯이 강점기에 터진 정사情死의 모습은 부호의 아들과 기생, 교수와 여제자, 유부남과 처녀, 카페여급과 혼외 남녀가 일상의 불륜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이미 사랑의 감정이 인습으로도 막지 못할 역사적 한계에 다다랐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해방 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분화와 기능적 전문화는 그만큼 세상의 복잡화를 유도하였고 해방의 감격과 찾아온 자유의 파편들 속에 상실과 소외감을 느끼며 식민의 시대가 주는 척박함과는 또 다른 경쟁과 갈등의 그늘이 삶을 지치게 하고 그 속에서 자살수치는 증가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국내 변사인구 가운데 남녀 간 애정문제로 자살한 숫자가 5만이 넘었다는 것은 실제로 사회안정망으로의 국가기능을 하지 못한채 1970년대 중반 , 애정 자살인구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 것을 저자는 자살을 인문학적 생소함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거부감을 이유로 집중 분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증가하는 자살인구는 국가의 무능과 권력의 무기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시민과 공공정책의 단절 혹은 허구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살이라는 것이 여전히 국민 각자의 사적인 일로 치부되어 있듯이 정사情死에 국가가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좁아보인다. 맥락을 같이하여 가정폭력이나 가족의 문제 또한 여전이 국가의 개입은 없다. 하지만 사회면에 나는 사건과 사고는 거의 정사情死로 인한 사건과 가족내의 빈번한 다툼으로 인한 죽음이 대부분이다. 정사情死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신선하고 자살이든 정사이든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허나 글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썻고 우선 문장자체에 주어가 없다. 따라서 누구를 위해 글을 쓴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책이다. 일반적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펴냈다면 좀더 쉬운 접근을 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긴 장문의 글과 주어가 없는 글에 다소 황당함이 든다. 한국말을 번역해서 읽기는 처음인 것 같다. 정사情死의 사회적 접근 , 의도는 좋았으나,저자의 문체에 심히 유감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무척 힘들었으며, 남는 것이 있다면 사랑해서 죽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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