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 2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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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때 또 함께되어 난로 앞에서 끝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자신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들을 길러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T.S엘리엇의 시극 중에서 -

 

196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전쟁이라는 상흔은 남아있을지라도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낭만이라는 멋이 있다.녹지대라는 음악살롱자체가 멋이 아닐까? 그 시절의 낭만을 대변해주는 곳이 바로 음악살롱이다. 대학 시절 우리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다. 클래식 다방으로 꾸며놓아 디제이들에게 음악을 신청하면 신청곡과 사연을 소개해주는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차마 말로 못하는 마음을 시나 노래가사로 고백하곤 하였다. 우리가 잘 가던 곳은 , 명동성당 옆 후미진 골목 모퉁이를 돌면 우중충한 반지하다방 <오렌지 카운티>였었는데, 지금도 아마 그곳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광석과 양희은의 노래를 모르면 바보취급했고 통키타를 치지 못하면 모임에 끼워주지도 않을 정도로 우리만의 세계가 있던 패기만만한 젊음 하나 믿고 살았던 그 시절을 우린 오렌지타운티에서 보냈다. 혼란한 시국과는 상관없이 낭만이라는 멋에 취해 살던 그 시절은 하나 둘, 세상이라는 현실과 맞딱뜨리게 되면서 흐지부지 되었는데 한 놈은 군대에 , 한 놈은 실연의 상처에, 오렌지 카운티에도 그렇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비록 짧은 시절의 방황과도 같은 멋이었지만, 그런 젊은 시절의 도피처가 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이었고 추억이 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나이들면 추억으로 먹고 산다고... <녹지대>에 모이는 이 젊은이들이 마치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려보게 한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만나면 좋은 사람들, 그리고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친구들이 있던 그 곳, 녹지대...

 

그러나 그 녹지대에도 세대교체 시기가 돌아온다. 김정현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어건만 더이상의 연락이 없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인애와 사랑하지만 맺어지리라는 희망은 가져본 적이 없는 박광수와의 연애에 시큰둥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은자, 바람처럼 닿지 않을 지라도 민상건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숙배, 이들은 이제 녹지대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자신들은 이미 늙어버렸다고 자조한다. 그것은 이들에게도 변화라는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인데 은자는 양공주의 딸이라는 열등감 속에서 박광수의 숨겨진 여자로 살아가기 보다는 한철의 여자가 되는 것을 택함으로써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변화를 보이고 김정현을 사랑하는 인애는 김정현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김정현이 인애를 사랑함으로 치루게 된 고통의 댓가가 쓰여져 있는 편지를 받고 충격을 받는다. 그런 인애에게 한철이 섬에서 살아보지 않겠냐는 제의는 인애에게 또 다른 탈출구가 되어준다. 민상건을 사랑하는 숙배는 민상건의 고백을 통하여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스스로 바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 세 주인공에게 닥친 마음의 변화는 녹지대에 세대교체라는 바람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세대교체는 소설속에서 기성세대로서의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데 인애가 섬에서 처음 만난 김정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 욕망과 미래와 희망 그리고 젊음을 다 버리고 가는 ' 섬'으로 떠나는 것은 이 소설이 말해주고자 하는 젊은이의 표상이다. 기성세대들이 엘리엇의 시극에서 보여주는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인애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때 또 함께되어 난로 앞에서 끝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자신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들을 길러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에서 김정현을 속박하고 있는 그 여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그 여자는 비밀에 휩싸인 인물로 수예점에서 인애와 단 한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여자' 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설 전반에 강한 존재감으로 남는데 , 김정현과 동거녀이자 민상건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민상건은 '그 여자'의 독특한 분위기 탓으로 결혼 일 년이 못 되어 갈라서게 되었는데 김정현은 '그 여자'를 자신을 파멸시킬 그 여자에게 육체를 팔았으며 , 인애는 '그 여자'의 분위기가 무섭고 변화무쌍한 표정을 가지고 있고 팽팽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다. 세 사람이 말하는 '그 여자'는 편집증적인 집착과 소유욕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그 집착은 김정현을 파멸시킨다.

2권의 녹지대의 세대교체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치열한 고독을 안은 채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며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을 ,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하는 욕구와 치열하게 싸우다가 고독을 이상이 아닌 실체로 느끼면서 모순적 심리에서 벗어나 삶 자체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직 인애만이 이 고통을 끌어안고 섬으로의 도피로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고안해냄으로서 기성세대로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거부하고 스스로 녹지대의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킨다.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비상하려 하는 신여성의 표상을 보여주는 인애는 토지의 주인공 서희아씨가 맞닿아있는 듯하다.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을 오랜만에 접하였는데 그 분이 문학작품속에서 보여주는 신여성의 표상은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이다.1960년대 여성이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모습과 남성에게 의지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여성을 그리고 있는 것도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보여진다. 자유와 낭만이 있는 그 곳, 녹지대는 우리들의 젊음의 낭만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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