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있었다. 부산 특유의 막돼먹은 언덕은 노년의 관절과 근력을 기어코 주저 앉혔다. 하필이면 오늘은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보자기로 꽁꽁 싸맨 노구의 여인은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세워놓고 어쩔 줄 몰라 주저앉는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 눈물이 섞인다. 서럽다.

 

_

 

이 때, 편의점에서 콜라를 들이키다 나온 남방계 청년이 이를 목격한다. 이 동네는 외노자가 많은 동네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추정한다. 더듬더듬하는 한국어로 괜찮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손짓 발짓 몸짓 고갯짓으로 노인을 돕는다. 리어카를 지지하며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내려보낸 후, 특유의 경상도 남자처럼 아무일 없다는 듯이 언덕을 다시 올라 제 갈 길을 간다.

 

_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먹고 살기 힘들어 만주로 연해주로 불법체류했던 조선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배우면서도, 파독광부와 시체닦이로 외화벌이에 나선 근성의 한국인 영화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노자는 왜 혐오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가 앞으로도 계속 한국어를 못해서 댓글을 주의 깊게 읽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



2018.7.20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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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청 앞 분향소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죽음이 익숙하지 않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과 죽음도 어울리지 않는다.
영혼의 한 귀퉁이가 고장난 느낌이다.
정치란게 뭐고 죽음이란게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왜 하필 정치를 전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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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6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프리즘메이커 2018-07-26 20:26   좋아요 1 | URL
슬픕니다... 착잡합니다...
 







지정학적 변두리에서 중심지로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절반 밖에 모르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바로 임진왜란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이 근대 서구 외교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면, 임진왜란은 오늘날의 동아시아 질서를 열어젖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저자 김시덕은 민족주의 과잉의 거북함과 친미사대의 단순함을 모두 비판하며, 풍부한 사료에 입각해 임진왜란 이후 전개된 동아시아의 역사를 넓은 안목으로 새로 풀어썼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냉전질서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는 당시 중화질서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대륙의 한족 정권은 수-당과 고구려, 신라와의 전쟁을 통해 한반도의 병합에서 막대한 출혈을 입자, 한반도의 국가들과 모종의 타협을 이루어낸다. 천년이나 지속된 사대 관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해양 세력인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의 완전한 정복을 꾀했으며, 대륙의 한인 세력은 해양의 일본 세력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이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대두한 사건이었다. p.9


또한 저자는 한반도의 주된 안보위협은 해양세력 일본이 아닌 대륙세력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몽골과 여진족이 포함되는 대륙의 유목 민족들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저자는 왜란 초기 조선군의 졸전을 색다르게 묘사한다. 남부의 조선군이 일본군으로부터 급속도로 쉽게 허물어진 까닭은 조선의 정예군이 주적인 야인들을 대적하기 위해 북방에 집중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종교전쟁과 국제노예무역, 그리고 임진왜란과 대항해시대

임진왜란을 종교 전쟁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 역시 신선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했지만, 각지에서 할거하는 종교 세력을 완전히 통제·장악 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특히 일본에서는 불교와 가톨릭이 정치세력화하며 강세를 보였다.

조선침략의 쌍두마차였던 불교도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게는 조선침략이 불교를 통해 일종의 호국(護國)전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고, 가톨릭의 대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반도의 이교도들을 몰아내는 거룩한 전쟁이 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불교도의 깃발을 내건 가토 기요마사와 군종 신부를 데리고 다녔던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임진왜란은 일종의 성전(聖戰)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대륙세력에 맞선 해양세력으로서의 일본을 독자 문명으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일본은 중화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권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해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네덜란드의 도움과 거래를 통해 탈 중국적인 시각을 갖추며 세상을 차근차근 알아갔다. 아래는 네덜란드로부터 서양의 해부학과 의학을 받아들였을 때 일본인이 받았던 충격에 관한 생생한 묘사이다.

유럽의 해부도를 입수했으니 실물과 대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막부의 허가를 받아 사형수의 몸을 해부해보니, 과연 인간의 몸은 한의학서의 설명과는 다르고 유럽 해부학서의 도판과 같았다. 중국책과 유럽책에 그려진 인체 구조가 그토록 다르니, 저자가 "중국인과 중국인 아닌 사람 간에는 (몸에) 차이가 있는 것인가?"라고 고민한 것도 이해가 가는 바다. p.155


특히 일본은 전국시대 당시 일본인 포로를 노예로 공급하는 등,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이미 국제 노예 시장 편입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또한 임진왜란의 포로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노예무역의 상품으로 팔려나갔던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 노예무역을 일삼던 대항해시대와 임진왜란은 이렇게 연결된다.


삼국지적 세계관의 탈피를 위하여 

임진왜란은 통일된 일본 열도의 힘과 이에 맞선 반도국 조선 및 대륙의 명국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이 대충돌의 여파로 인한 동아시아의 힘의 공백은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에게는 일대의 기회였다. 그는 파죽지세로 흩어져 있던 여진족을 통일하고 몽골족까지 아우르며 후금을 건국한 이후, 두 차례의 조선정벌과 명나라와의 일전 끝에 중화질서의 새로운 맹주로 등극한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가 된 청나라는 당시 시베리아로 확장 중이던 러시아 제국과 불쾌한 만남을 갖게 되고, 조선은 청나라의 강권에 따라 나선정벌에 연루되어 러시아와의 첫 접촉을 겪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가 이미 네덜란드를 통하여 러시아 제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야망을 파악해 미리 대비하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조선 당국이 러시아와 직접 전투를 벌였음에도 직접적인 정보수집에 실패한 것(혹은 무관심했던 것)을 우리 역사의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로 꼽는다.

이에 저자는 조선의 중국에 외교 안보를 기계적으로 추종하였던 편협한 사고방식 및 한-중-일 3개국으로만 세계를 바라보는 '삼국지적 세계관'의 큰 귀책사유를 돌리며 이를 벗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제 4의 세력 러시아가 나타나 향후 아관파천 및 러일전쟁을 비롯하여 조선 내정에 깊게 관여하였고, 이후 소련의 38 이북 분할과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운명의 핵심 축이 되었던 것은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에 군사-정치-경제 등 모든 부문을 전적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p.13

어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거나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의 존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167


이 책은 저자의 간결한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 덕분에, 부록을 제외한 370페이지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벅차다는 느낌 없이 술술 읽힌다. 문헌학자인 저자의 적절한 사료배치 및 흥미진진한 일화소개가 책의 읽는 맛을 더한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다소 생소하고 불쾌하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이면은 물론 파편적 지식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한데 엮어줄 것이다.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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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텅페이 삼국지 강의 - 역사보다 재미있고 소설보다 깊이 있는
위안텅페이 지음, 심규호 옮김 / 라의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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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궁녀들과 함께 헤엄을 치다 뇌에 물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심지어 항시 곁에 있는 엄적을 부모라 부르기도 했다. p.13



원소가 보기에 하진은 도둑이면서 도둑놈 심보가 없고, 물고기를 먹고 싶지만 비린내가 두려워 주저하는 꼴이었다. p.32



칼자루를 다른 이에게 주고 칼날을 쥐면 결국 다른 이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번 일로 시끄럽게 된다면 틀림없이 천하가 크게 혼란해질 것입니다. p.33



천하를 움직이는 것은 쉽지만 천하를 안정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고려하시길 바라옵니다. p.71



손견이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마침 누군가 확 불을 댕겨버렸다. 격문이 진짜든 가짜든 쳐들어가보자는 것이었다. p.85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형님이 없으셔야 되겠습니까! p.88



황건군과 싸우면서 조조가 살육만 일삼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황건군의 투항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 p.163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죽이면 범죄자가 되지만 수만 명을 죽이면 장군이 되고, 그보다 많은 수십만 명을 살상하면 황상이 된다. p.170



헌제는 어진 군주였다. 동한 말년에 이런 황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헌제를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 망국의 운세를 맞이한 군주'라고 말하는 것이다. p.223



어쩌면 부친이 배를 사다 준 날 배가 아팠을 수도 있고, 그냥 배가 불러 먹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는데, 여하튼 배 한 알을 양보했다고 2,000년 동안 칭송된 이는 아마도 공융 한 사람뿐 일 것이다. p.269


공융은 커서 당연하게 관리 생활을 하였는데, 실제로 그가 행정 관리에 능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나름 포부가 대단했으나 재주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책벌레일 뿐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공자 왈 맹자 왈 하면서 걸핏하면 어려운 말로 학식을 자랑할 뿐이었다. 북해태수로 임명된 후에도 고담준론을 좋아할 뿐, 구체적인 행정 업무에는 그리 정통하지 못했다. pp.269-270



가후가 대답했다.

"천하가 태평하다면 유표는 대단한 인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난세의 여러 가지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으며,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턱대고 그를 따라가다가는 나무에 목이 매달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 p. 277



생각해보면 유비의 가족은 정말 재수가 없다. 걸핏하면 포로가 되니 말이다. 유비가 과연 고조 유방의 직계 또는 방계 후손인지 정확하게 따질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부류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라도 절묘하게 도망쳐 자신의 목숨은 부지하면서 처자식은 나 몰라라 내팽개쳐 포로가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p.303



군사 문제에서 풋내기는 전략과 전술을 따지지만, 진짜 전략가는 병참을 중시하는 법이다. pp.313-314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내통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조조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서신을 모두 불태우면서, 과거의 잘못은 묻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pp.319-320



"원소가 강성했을 때는 나도 내 자신을 지킬 수 없었는데, 일반 대중이야 오죽하겠는가? " p.320


그러니 그도 참을 만큼 참은 셈이다. 만약 그래도 참았다면 스트레스로 더 일찍 죽지 않았을까? 결국 승상은 자신의 죽음 대신 공융과 일가족의 죽음을 택했다. p.358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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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모든 것을 잊어야 몰입할 수 있다 말하지만,

거꾸로 모두에게 잊혀야 몰입할 수 있다.

몰입은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그것 밖에 남지 않았을 때,

하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그것의 바짓가랑이를

지독한 심심함으로 구질거리며 붙잡고야 마는 것.

사람들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무언가에 지겹도록 몰두한다.

잊혔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

호선, <몰입>



-20180712 @PrismMaker


※본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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