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변두리에서 중심지로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절반 밖에 모르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바로 임진왜란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이 근대 서구 외교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면, 임진왜란은 오늘날의 동아시아 질서를 열어젖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저자 김시덕은 민족주의 과잉의 거북함과 친미사대의 단순함을 모두 비판하며, 풍부한 사료에 입각해 임진왜란 이후 전개된 동아시아의 역사를 넓은 안목으로 새로 풀어썼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냉전질서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는 당시 중화질서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대륙의 한족 정권은 수-당과 고구려, 신라와의 전쟁을 통해 한반도의 병합에서 막대한 출혈을 입자, 한반도의 국가들과 모종의 타협을 이루어낸다. 천년이나 지속된 사대 관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해양 세력인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의 완전한 정복을 꾀했으며, 대륙의 한인 세력은 해양의 일본 세력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이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대두한 사건이었다. p.9


또한 저자는 한반도의 주된 안보위협은 해양세력 일본이 아닌 대륙세력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몽골과 여진족이 포함되는 대륙의 유목 민족들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저자는 왜란 초기 조선군의 졸전을 색다르게 묘사한다. 남부의 조선군이 일본군으로부터 급속도로 쉽게 허물어진 까닭은 조선의 정예군이 주적인 야인들을 대적하기 위해 북방에 집중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종교전쟁과 국제노예무역, 그리고 임진왜란과 대항해시대

임진왜란을 종교 전쟁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 역시 신선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했지만, 각지에서 할거하는 종교 세력을 완전히 통제·장악 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특히 일본에서는 불교와 가톨릭이 정치세력화하며 강세를 보였다.

조선침략의 쌍두마차였던 불교도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게는 조선침략이 불교를 통해 일종의 호국(護國)전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고, 가톨릭의 대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반도의 이교도들을 몰아내는 거룩한 전쟁이 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불교도의 깃발을 내건 가토 기요마사와 군종 신부를 데리고 다녔던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임진왜란은 일종의 성전(聖戰)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대륙세력에 맞선 해양세력으로서의 일본을 독자 문명으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일본은 중화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권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해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네덜란드의 도움과 거래를 통해 탈 중국적인 시각을 갖추며 세상을 차근차근 알아갔다. 아래는 네덜란드로부터 서양의 해부학과 의학을 받아들였을 때 일본인이 받았던 충격에 관한 생생한 묘사이다.

유럽의 해부도를 입수했으니 실물과 대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막부의 허가를 받아 사형수의 몸을 해부해보니, 과연 인간의 몸은 한의학서의 설명과는 다르고 유럽 해부학서의 도판과 같았다. 중국책과 유럽책에 그려진 인체 구조가 그토록 다르니, 저자가 "중국인과 중국인 아닌 사람 간에는 (몸에) 차이가 있는 것인가?"라고 고민한 것도 이해가 가는 바다. p.155


특히 일본은 전국시대 당시 일본인 포로를 노예로 공급하는 등,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이미 국제 노예 시장 편입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또한 임진왜란의 포로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노예무역의 상품으로 팔려나갔던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 노예무역을 일삼던 대항해시대와 임진왜란은 이렇게 연결된다.


삼국지적 세계관의 탈피를 위하여 

임진왜란은 통일된 일본 열도의 힘과 이에 맞선 반도국 조선 및 대륙의 명국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이 대충돌의 여파로 인한 동아시아의 힘의 공백은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에게는 일대의 기회였다. 그는 파죽지세로 흩어져 있던 여진족을 통일하고 몽골족까지 아우르며 후금을 건국한 이후, 두 차례의 조선정벌과 명나라와의 일전 끝에 중화질서의 새로운 맹주로 등극한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가 된 청나라는 당시 시베리아로 확장 중이던 러시아 제국과 불쾌한 만남을 갖게 되고, 조선은 청나라의 강권에 따라 나선정벌에 연루되어 러시아와의 첫 접촉을 겪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가 이미 네덜란드를 통하여 러시아 제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야망을 파악해 미리 대비하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조선 당국이 러시아와 직접 전투를 벌였음에도 직접적인 정보수집에 실패한 것(혹은 무관심했던 것)을 우리 역사의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로 꼽는다.

이에 저자는 조선의 중국에 외교 안보를 기계적으로 추종하였던 편협한 사고방식 및 한-중-일 3개국으로만 세계를 바라보는 '삼국지적 세계관'의 큰 귀책사유를 돌리며 이를 벗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제 4의 세력 러시아가 나타나 향후 아관파천 및 러일전쟁을 비롯하여 조선 내정에 깊게 관여하였고, 이후 소련의 38 이북 분할과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운명의 핵심 축이 되었던 것은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에 군사-정치-경제 등 모든 부문을 전적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p.13

어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거나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의 존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167


이 책은 저자의 간결한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 덕분에, 부록을 제외한 370페이지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벅차다는 느낌 없이 술술 읽힌다. 문헌학자인 저자의 적절한 사료배치 및 흥미진진한 일화소개가 책의 읽는 맛을 더한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다소 생소하고 불쾌하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이면은 물론 파편적 지식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한데 엮어줄 것이다.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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