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불로소득이 있다.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완패하고 로봇이 일자리를 잡아먹는 세상에서 바람직한 불로소득을 꿈꾸어 보자고 말하는 책이 있다. 시장을 움직일 돈을 더 이상 노동하는 사람의 월급이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른 상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기본 소득과 기초 자본을 다루는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의 신간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이다.
저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초래할 기술 실업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본소득과 기초 자본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는 기본 소득과 기초 자본은 크게 분배 방식과 금액, 설계 목적에 따라 설명하면서도 그 역사적 기원과 논의의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먼저 기본소득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한 '사회적 배당금'으로, 매월 일정한 액수를 조건 없이 시민권에 근거하여 분배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저자는 기본소득은 최종소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은 한 사람의 최소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기본소득에 추가적인 노동소득을 보태어 더 높은 의욕과 생활 수준을 기대하게끔 보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기초 자본은 세상의 첫걸음을 떼는 성년기에 도달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인생을 계획할 목돈을 나눠주자는 '사회적 상속금'에 해당한다. 기초 자본은 생계유지와 소비 창출의 큰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목돈을 제공하여 아예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기초 자본은 불평등한 결과를 뒤늦게 보정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상속하는 유산으로 모두가 해볼 만한 출발선을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둔다고 저자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로봇 문명의 혜택을 인간이 누리자며, 로봇세를 거두어 기본 소득을 제공하자 주장하는 빌게이츠를 비롯해서, 기본소득 논의에 동참한 세계적인 경제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본소득과 기초 자본에 대한 논의는 시대착오적인 좌파들의 불온한 선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제기된 일종의 '시장안보' 정책이자, 현실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진행 중인 유의미한 실험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각장의 시작을 카드 뉴스로 시작하며, 생소한 개념을 핵심만 간추려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신선한 형식이 인상 깊다. 또한 어려운 학술용어를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전반적으로 쉽고 간결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강연문의 구어체는 단숨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감을 제공하면서도, 전달된 내용의 신선함과 깊이가 알맞게 배합되어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노동자의 부족은 곧 소비자의 부족'이라는 간단한 시장의 이치를 통해, 부족할 소비를 창출하면서, 고착화된 불평등을 해갈시킬 새롭고도 유력한 두 가지 대안을 두고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안인 셈이다.
동시에 이 책은 기본소득과 기초 자본에 대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식과 외국의 사례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담아둔 해설서의 역할을 한다. 저자가 세간의 편견에 맞서가며 두 가지 제안 중에서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이 책의 또 다른 별미일 것이다.
위기와 기회는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온다. 실업의 공포는 분배의 상상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새로운 미래와 시대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해묵은 편견과 변화의 조류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지적인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잘 계산된 현실은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어도 디스토피아는 극복해낼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우리사회가 더 나은 미래를 그린다면, 더욱더 기초자본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