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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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행복이 간절했던 꼬마의 비장했던 13

 

 

 

다섯 살 때 퇴근하신 어머니께서 작은 금붕어 두 마리가 담긴 작은 어항을 내 가슴에 안겨 주셨다. 강아지 까망이 이후로 살아 있는 동물 친구가 생겨 기뻐 날뛰던 나는 까망이와 놀듯 금붕어와 온 동네를 뛰놀기 위해 어항에서 금붕어들을 꺼냈다. 금붕어 두 마리가 손바닥 위에서 팔딱이는 걸 나는 금붕어도 나처럼 새 친구가 생겨 기분이 좋은지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금붕어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최초로 목격하고 인지한 죽음이었다. 살생을 저지르면서 생명과 죽음을 배운 비참한 경험을 겪고서야, 나는 내가 살기 위해 수많은 살생을 저지르고 사랑하는 무수한 것들의 죽음을 겪는 인간이라는 비극적 존재임을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죽을 수 있고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 사람들은 그런 나를 질풍노도의 중이병(사춘기)’라고 규정하였다. 아홉 살 때 폐렴에 걸린 적이 있다. 양육 경험이 부족하고 큰애바보였던 아버지 덕에 선천적으로 병약해 열 살을 넘기기 힘든 운명인지 오해하고 살아왔고, 그 즈음 하나같이 주인공들이 폐병으로 죽는 드라마와 위인전기에 심취했던 나는 희뿌옇게 변한 흉부 X-레이 사진을 보고 겁에 질려 소아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을 했다.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아홉 살은 죽기엔 너무 어린 나이 같아요.” 평생 놀림권을 획득한 벽 차는 일화지만, 살면서 너무 힘들어 나쁜 마음을 먹을 때마다 그 기억이 번번이 나를 살게 하였다.

 

 

그런 개인적 경험 때문에 항상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 있다. 10세 이하의 건강한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실제로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어른들의 욕심일까 하고 말이다. 내 인생의 영화 중에 전쟁을 겪고 있는 어린 아이가 죽음으로 행복을 이루는 작품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영화를 동심 파괴 영화이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판타지라고 했고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나는 어린 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아이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욕망이 설정한 픽션이거나, 전쟁 등 어른이 아이에게 나쁜 상황을 만들어줘 아이를 겉늙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88년생 작가의 소설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를 읽으면서도, 비교적 젊기에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을 잘 그린 동화라고 느끼기보다 20대 후반도 완전한 어른의 눈을 갖는구나 하며 서글퍼졌다. ‘테오의 13이란 부제가 달린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죽고자 하는 여섯 살 테오의 13일간의 자살준비기이다.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목표하는 것처럼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과 입을 통해 절로 웃음 짓게 하는 동시에 어른의 세계를 낯설게혹은 따갑게봄으로써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저승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보다. 자기들이 사용한 나쁜 말들 때문에 지옥에 갈까 봐 두렵기 때문에 말이다. - p.50

 

"이 책 읽어 보셨어요?"하고 묻거나 "이 영화 보셨어요?"하고 물어보면 어른들은 안 봤다는 대답을 두 가지 방법으로 한다. 1. ", 오래 전에." 2. "뭔가 의미가 담긴 제목이었지." 두 가지 모두 그게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 알고 있는 척을 해서 자신은 더 이상 알고 싶은 것도 없고, 또 사람들이 다른 질문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 p.77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며칠 후에 있을 굴리엘모의 생일잔치 이야기를 했다. 평소엔 운동장에 나가서 노는 여자애들까지 모여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생일잔치에 갈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이 어디에 있는지 하느님이 신호를 보내 주면 나는 그를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리엘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생일잔치에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 p.103

 

 

이탈리아인인 주인공 테오는 여덟 살 난 남자 꼬마애이다. 테오의 고민은 엄마와 아빠가 너무 자주 싸워 온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는 늘 테오에게 인생에서 승리하는 게 중요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래서 테오는 부모님과의 전투에서 승리해서 부모님을 서로 못 싸우게 만들어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부모님께서 주신 생일 선물이 테오의 삶을 바꿨다. 나폴레옹에 관한 책이었는데 그는 모든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이란다. 테오는 부모님과의 전투에서 필승하기 위해 나폴레옹의 조언이 꼭 필요하였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죽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을 만나겠다는 단 한 가지 열망 때문에 테오는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는 하루하루 자살하는 방법과 나폴레옹이 있는 곳을 찾으며 묵묵히 자살을 준비하는 테오의 13일을 담은 책이다. 출판사의 연륜 만큼 외국문학을 선택하는 열린책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수상 타이틀 하나 없던 신인 작가의 데뷔작 판권을 샀는데(두 번째로 판권을 사서 심지어 영역본보다 우리말 번역본이 먼저 나왔다) 번역 중에 작가가 자국에서 문학상을 탔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을 중역이 아닌 전공자의 직역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원서엔 테오가 여섯 살로 설정되어 있는데 우리식 나이인 여덟 살로 바꾸는 등 섬세한 번역을 엿볼 수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언어와 정서 차이 상 우리나라에서 외서 번역시 제목을 바꾸는 일은 정말 흔한데, 부주의하게 서지사항에 있는 원제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고생을 좀 하였다. 대체 왜 책 제목이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인지가 궁금한데 책을 두 번 읽어도 테오가 바람이 되고 싶다는 대목이 나오지 않았다. 멍청하면 사서 고생한다고 난독장애가 재발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저자 홈페이지 뿐 아니라, 원서 출판사나 이탈리아 온라인 서점의 리뷰까지 힘겹게 읽으면서 책을 잘못 읽은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어야 하였다. 편집자에게 직접 문의해야 확실한 이유를 알겠지만 아마 죽음에 대한 은유적 표현을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거나 후에 이 책을 읽을 독자가 부디 같은 생각과 같은 실수를 안 하길 빈다. 이 책의 원제는 그냥 ‘TEO’, 부제도 따로 없다. 테오의, 테오에 의한, 테오를 위한 책 그 자체이다. 열린책들의 책 소개글을 보고 몹시 기대했는데, 처음 읽을 땐 흩날리는 바람처럼 가볍고 평이해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다시 읽었더니 문학상을 받을 만한 구석이 있구나 싶고 책에 대한 감정이 한결 나아졌다. 내내 촌철살인이고 미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멈칫거리게 하는 괜찮은 문장들이 있어 기분 좋게 완독할 수 있었다.

 

 

- 테오. 때로는 꿈속에서 답을 찾기도 한단다.

꿈은 진짜가 아니잖아요. 아빠가 그랬어요.”

테오, 꿈은 현실보다 더 진짜일 수도 있어. 왜냐하면 네 안에 있는 거니까. 네 거니까.

수지 아줌마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꿈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 꿈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또 계속 바뀌는데. 나는 로셀라 선생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유령 꿈과 용이 혀로 불을 뿜는 꿈을 자주 꾼다. 어느 날 밤엔 전쟁터에서 누나와 적이 되어 싸우는 꿈을 꾼 적도 있다. 누나는 칼로 나를 찌르면서 말했다. “테오, 사랑하는 나의 동생.” 하지만 누나는 현실에서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만 빼고는. - p.106

 

우리 집의 행복을 되찾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러면 누나도 다시 행복해질 것이고, 나도 그럴 거다. 비록 그때가 오면 나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다행히 바보가 아니라서 보이지 않게 되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죽는 것이다. 갑자기 추위가 느껴졌다. 죽는다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노인들한테 일어나는 일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린 아이가 죽을 때는 하나의 가능성이 죽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더 자라지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하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되지 못하는 게 어른들한테는 슬프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어차피 결혼도 하고 싶지 않고 아이도 낳고 싶지 않다. 우리 반 여자아이들도 좋아하지 않고, 여자아이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공기를 마셨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유령 퇴치용 램프를 껐다. 이제 무서움 따위는 없었다. 내 전투의 가장 어려운 한 걸음이 될 테지만, 이제 나는 죽음이 불행한 것이 아니며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계속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안다. - p.173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괜찮다는 테오. 좋은 말만 대충 하는 어린이 도서 속 나폴레옹에 대한 묘사를 철썩 같이 믿는 테오가, 구글에서 자살만 검색하지 않고 나폴레옹’(의 패배)에 대해서도 검색했더라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그 나이 특유의 저돌적인 기세, 너무나 순수하고 간절한 바람 때문에 귀여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짠하였다. 그리고 어른이 어린 아이의 시선을 흉내 낸 것임을 알면서도 테오가 수긍하지 못하는 어른의 이율배반적이거나 무책임한 모습들을 보며 뜨끔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다. 한편 테오처럼 우리가 13일 동안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가장 열망하는 한 가지 바람에 대해 몰두한다면 얼마만큼의 깨달음을 얻을까 궁금해졌다. 일기장처럼 하루하루 끊어져 있는 이 책은 그 소소한 전개와 구성처럼 결말도 아주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테오의 치기어린 질주에 브레이크 같은 결말이었고, 테오의 13일이 헛되지 않으면서 아무도 울지 않아도 되는 결말이어서 좋았다. 다 읽고 책을 덮으니 표지에서 뒷짐 진 나폴레옹과 테오의 뒤로 제제나 어린 왕자, 니콜라나 토토 같은 익숙한 아이들이 아른거리는 듯하였다. 반가워 손을 뻗으니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 바람이었나 보다.



p.s.- 이번 열린책들의 우리말 번역본 표지는 Marco Cazzato의 원화를 커버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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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2-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나이로 10살쯤 되는건데.. 예를 들어 아빠 어디가 같은 데 나오는 애들 보면 테오가 전신적으로 너무 순진한 면은 있어요.

이섬 2015-02-05 18:43   좋아요 0 | URL
서평에도 썼지만 원서엔 여섯살 설정. 역자가 번역하면서 여덟살로 바꿨어요. 그 정도 나이면 충분히 가능한 미숙함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이러나 저러나 테오가 어른들의 상상 속에 구현된 아이라고 느꼈습니다

CREBBP 2015-02-0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덞살이라고 하기엔... 구글링이랑 좀 성숙한 거 아닌가요 ㅎㅎㅎ 이래저래 안맞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