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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하얀 표지 속에 빨간 글씨로 '연인'이라는 제목이 진하게 써 있다. 그 넓은 표지의 하얀 공간 속에 가운데도 아닌 밀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에 그림이 하나 붙어 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그림도 표지의 끝에 매달려 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표지의 깨끗함과 풋풋함만으로도 나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운주사 대웅전의 처마 양 끝에 달린 풍경들의 사랑 이야기. 푸른눈이 툭 튀어 나와 있다고 해서 '푸른툭눈'이라는 풍경과 검은눈이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검은툭눈'이라는 이들의 사랑은 서로 방법이 달랐다.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삶이 지루하고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푸른툭눈, 서로 사랑하면서 이웃을 즐겁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라고 말하는 검은툭눈. 오랜 만남 끝에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들의 사랑도 그렇다. 모두들 오랫동안 변치않는 사랑을 꿈꾸지만, 그런 사랑 중에는 항상 생각지도 않은 갈등과 고통이 따라온다. 그래서 '푸른툭눈'처럼 풍경줄을 끊고 대자유를 찾아 떠나나 보다. 나만 이런 것일까, 내 사랑이 완성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런 생각에 빠져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입는 나의 친구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여기 있어 적어 본다.
'상처 없는 아름다움이란 없다. 진주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도 바로 그 상처 때문이다.'
풍경줄을 끊고, 검은툭눈을 버리고 떠난 푸른툭눈은 자신이 그리던 사랑과 꿈을 향해 날아가지만, 생각과 달리 많은 아픔과 이별을 겪게 된다. 푸른툭눈이 선택한 세상이 바로 우리들 앞에도 놓여 있으리라. 하지만 두려워 할 것은 없다. 우리는 아름다운 장미꽃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세상에 완성된 사랑이란 없어.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과정만 있을 뿐…… 그 과정의 연속이 바로 사랑이야.'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결말…… 그 때문인가. 왠지 사랑의 완성은 그렇게 끝이 나야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사랑에는 완성이 없단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의 아픔까지도 인내해야 하나 보다.
난 이 책을 읽고 나의 사랑에 대해 한없이 감사했고, 그리고 인사동으로 달려가 풍경을 샀다. 푸른눈이 툭 튀어나온 '푸른툭눈'을. 그리고 외쳤다.
'아저씨, 한지에 둘둘 말아주세요.'
인사동에서 풍경을 사서 운주사에 가져가 달았던 그 스님처럼 말이다. 스님의 걸망 대신 나의 가방에 고이 넣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운주사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 사람의 창가에 걸린 '푸른툭눈'의 몸을 감싸 쉼 없는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