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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 어른을 위한 동화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호승의 글이면 무조건 읽고 싶어진다. 그래서 또 만난 글이 바로 이 <모닥불>이다. 전에 읽었던 <항아리>처럼 짧은 동화들의 모음집이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놀랍다. 정호승의 글을 안도현은 이렇게 말했다.
'정호승의 동화는 인간의 마음 안쪽에 깃들인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캐는데서 출발한다. 소란을 피우지 않고 깨달음의 길로 고요히 독자를 인도하는 것, 이것이 <모닥불>의 매력이다.'
그렇다. 정호승의 글은 따뜻하다. 우리가 무심히 바라보는 사물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놓고 있다. 항아리, 모닥불, 나무, 종메, 조각배, 참게, 몽당빗자루, 자살바위, 난초와 수선화……. 이 모든 것이 그와 함께라면 가치가 있고 생명이 있다. 그 중 나는 「열쇠와 자물쇠」라는 글에서 잠시 내가 멈추어 서는 것을 느꼈다.
어느날 자물쇠는 열쇠의 거친 말투에 화가 난다.
'자물쇠야, 넌 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야. 넌 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자물쇠는 항상 주인의 주머니 속에서 따뜻하게 지내는 열쇠를 질투했다. 그러던 중 주인은 열쇠를 잃어버린다. 자물쇠는 이제야 주인의 사랑이 자기에게 올 거라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주인은 망치로 자물쇠를 단숨에 부숴버렸다.
그렇게 자물쇠도 열쇠도 함께 있을 때는 몰랐던 것이다. 서로에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말이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했다. 열쇠도, 자물쇠도 이제는 알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함께 있을 때야 비로소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런 열쇠의 모습이, 자물쇠의 모습이 오늘의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추어서게 되었다 보다. 그럼 난 이제 어쩌지? 내가 자물쇠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