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람세스 - 전5권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8월
평점 :
다섯권이나 되는 이 책속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차치하고, 람세스의 군주적 면모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대통령이든 우리 마을 이장님이든 사람들을 거느려야 하는 윗분들께서 이 책을 읽어보시면 어떨까하는 약간은 반항적인 생각에서. 물론 이건 단지 소설일 뿐이지만, 마법과 신화가 존재했던 이 시대에는 그러한 힘들이 실제로 통치력의 일부로 여겨졌다는 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강력한 군주 람세스의 그 신비로운 힘은 끊임없는 자기 정제와 신에 대한 공경 그리고 정의(마아트)의 실현을 위한 그의 강력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권력과 물질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 없다.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내적으로는 의지가 갖추어져야 하고, 네페르타리와 같은 일심동체의 이상적인 반려자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좋은 참모를 두어야 한다. 아메니, 아샤, 세타우, (모세)와 같은 친구들 말이다. 그래야 끊임없는 반목과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개똥철학일지는 몰라도 이러한 기준이 지금의 정치하시는 분들에게도 일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종교를 가졌다면 개인적으로는 자기 삶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고, 공인으로서는 나라와 국민의 삶을 위해 기도하면 되겠다. 그리고 반려자의 최우선 조건으로 재물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어야겠다. 신문지상의 뉴스보도에서 가장 볼썽사나운 것이 반려자와 그 친인척들의 뇌물수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썩은 우물가로 인도하는 사람과 그 우물에서 건져내 주는 사람을 잘 구별해야 할 것이다. 리더의 능력은 그 자신이 가진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부리는데 있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부리는 능력 말이다. 람세스는 그런 면에서는 정말이지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완벽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다. 전투나 극한 상황에서는 때로 그 자신만의 힘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주변인들의 도움과 사랑이 없이는 그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정치의 '정'자라면 치가 떨리는 나도, 탄핵이다 뭐다해서 시끄러운 정국에 람세스 씩이나 읽으며 주제넘게 '다스리는 자'에 대한 방향까지 제시해버렸다. 하지만 여기엔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만 있는게 아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반전, 빠른 장면 전환과 줄거리 구성, 역사적 사건과의 접목 등이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어, 다섯 권이나 되지만 순식간에 한 권, 두 권 넘어간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등과 같은 환타지 문학/영화가 전성기를 맞고 있는 요즘, 정말로 그런 세계가 존재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엉뚱한 상상을 가끔 한다. 재미도 있겠거니와 편리하기도 하고 선과 악의 경계도 뚜렷하니,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겠는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고, 산사람과 정령이 함께 어울려 인간이 정령의 힘을 빌릴 수도 있는 세상. 몇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면 그런 세계에 도달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