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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행복한 하루 - 포토명상, 길상사의 사계
이종승 글.사진 / 예담 / 2006년 4월
평점 :
길상사에 갔다가 냉큼 사 온 책이라며 아는 이가 빌려 주었다. 지하철로 혜화에 갔다 오는 내내 마음이 울컥했다가 따스해졌다가 발걸음 하나하나도 마음을 담아 내딛어야겠다는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그득 느끼게 했다.
2년 전 여름이었던가. 장마가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 든 틈을 타 친구와 길상사에 갔다.
집 앞의 큰 산도 비온 뒤 안개 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더 그윽하더니, 도시 속 길상사도 산사만큼이나 청아한 모습이었다. 젖어있는 길, 젖어있는 돌, 젖어있는 나무 기둥. 불공을 드린 것도 아닌데 단비에 한여름 더위를 식힌 듯, 얼음 띄운 청량음료로 목을 축인 듯, 몸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니 차고 맑아졌던 마음도 새로워지는 듯 했다.
신문에서 이 책에 관한 기사를 보고 길상사 자체의 모습을 담았겠거니 기대했는데, 여기 담겨 있는 건 길상사에 머무는 사람들과 길상사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구도하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문득문득 멈추게 했다. 바닥에 엎드려 참회하는 한 스님의 파르라니 깎은 뒤통수, 삼천배에 땀으로 범벅된 한 아주머니의 벌건 얼굴. 좋은 사진이란 비싼 카메라로 찍은 화려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포착이었다.
대관절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고개숙이게 했으며, 그 무엇이 저토록 간절히 기도하게 만들었을까. 이유야 무엇이건 간에 사진 속 사람들의 절절함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내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가, 민족종교인 불교의 사원은 성당이나 교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 역시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절에 들어가면 내 집에 온 듯하고 성당에 가면 손님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고나 할까. 길상사가 비록 도시 속 한 귀퉁이일망정 자연과 어우러져 나를 갈고 닦을 수 있는 수평적 공간이기에, 인간을 압도하는 성전의 수직적 공간보다는 훨씬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요즘처럼 무얼 해도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길상사 한바퀴 휘 돌고 오면 마음의 무게가 반은 줄어들 것만 같다. 올 여름, 장마가 잠시 잦아들면 길상사에 들러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