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서 집착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는 이짓이 하고 싶었다. 이렇게 되면 헌책방에는 이 장을 뜯어내고서밖에 팔 수 없을 거다. 하긴 책을 팔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지만. 뭐든 한 번 가지게 된 건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이짓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책에 대한 진정한 소유라고 가정할 때,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소유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예상한 것보다 도장을 찍어야 할 책이 많다는 것을 알고나서, 내가 마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전봇대나 벤치 아래 열심히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개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문득 이 면을 펼쳐서 저 흔적을 확인하곤 하면서, 내가 살면서 뭔가에 대한 소유를 끊임없이 확인했던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봤다. 일상적인 물건들은 자매들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거의 공동소유나 다름 없고, 옷 같은 경우에도 각자의 취향과 조금씩 다른 사이즈 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유자가 정해져서 니꺼내꺼할 필요성을 별로 못느꼈다. 내 필요에 의해 물건을 살 때도 어느 정도는 가족들 중 누군가가 써야할 경우를 생각하며 사게 된다. 그 외에 내가 독립을 하게 되면 꼭 가져가고 싶은 물건은 기껏해야 논문쓰면서 장만한 스탠드 정도?
그치만 책만은 언니 꺼, 내 꺼, 동생 꺼, 확실하게 갈라서 가져갈 것이다. 책은 내가 가족들 중 누구도 배려하지 않고 - 엄마에게 선물한 책을 제외하고 - 온전히 내 취향에 따른 것이고, 내 동생이 아무리 자신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재미를 못느끼겠다고 해도, 내가 동생으로서 널 사랑하는 이유가 그 책에 담겨있기 때문에 나는 그 책을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집 식구들 중에 내가 이런 짓을 한다고 해서 야박하다 할 사람은 없다. 스스로 좀 유별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물질에 집착하는게 죄악이라는 인식이 무의식 중에 자리잡고 있어서인가보다. 그렇다하더라도 내가 뭐 책으로 집을 짓는 가학적 수준에까지야 이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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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의 실명을 알게 되었네요. 책도장도 이름도 참 깔끔하고 어여쁘네요.. 님의 성정과 닮아보여요^^

부엉이 2006-07-2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말씀 너무 감사드려요~^^ (칭찬 들으면 요즘 마냥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