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나는 '파르마의 수도원' 2권을 화장실 수건더미 위에 놓아둔 채, 어쩐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이 책을 화장실 갈 때마다 틈틈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책을 소리내어 읽는 버릇이 있는데, 어제는 화장실에서 책읽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물론 동생이 다른 책을 읽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늦게까지 걷어내지 않은 이불더미에서 동생이 뭉기적거리며, "언니, 이거 재밌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이 약간 지루해지던 차에 동생이 재밌다고 한 말에 약간 샘이 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그러냐고 맞장구를 쳐주곤, 잠시 생각한 후에 "근데 그거 2권인데..?"라고 말했다.  
순간적인 적막이 흐른 뒤 동생과 나는 와하하하 웃고 말았다. 물론 2권부터는 전권의 내용과는 약간 분리되어, 파브리스가 감옥에 갇히고 클렐리아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부분이 전개되긴 하지만...
"그래도 책표지에 파르마의 수도원 2라고 써 있고, 안쪽에도 15장이라고 써 있는데 못봤단 말이야?"
동생이 어떤 면에서 조금 무심한 면이 있긴 하지만, 나로서는 "두 시간 후 가엾은 파브리스는 수갑을 차고 작은 마차에 올라 파르마 성채를 향해 출발했다."는 도입부를 보면 의아하거나 궁금증이 생겨서 표지를 확인했을 것 같다.  
내가 1권부터 읽으라고 종용했지만 동생은 끝내, 자기는 줄거리가 다 이해간다면서 여전히 2권부터 읽고 있다. 내가 산세베리나 부인과 파브리스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런 건 알 필요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래, 네가 '파르마의 수도원'에 대한 새로운 독서법을 개척해봐라, 라고 비꼬듯 말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이 책을 읽는 재밌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파브리스의 성격이 어떤지,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등등 스땅달이 책 한권 분량으로 서술해 놓은 정보 없이 파브리스는, 이 소설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동생의 독후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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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3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집중이 안 되는 책은 소리내서 읽어 보곤 합니다^^

부엉이 2006-10-0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주 그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