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 무삭제판 (2disc) - 할인행사
양윤호 감독, 이성재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아주아주 강렬한 영화다. 줄거리나 배우들의 연기나. 다각적으로 변하는 이성재라는 배우의 캐릭터나, 오히려 이성재보다는 폭이 좁게 느껴지지만 어쨌든 악의 화신이라는 진부한 수식어로는 다 표현 못할 최민수의 캐릭터가 영화의 75%쯤 차지하지 않나 싶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구도가 너무도 극명하게 양분되기 때문에 뭐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강혁(이성재)이 김안석(최민수)에게 '불쌍한 놈'이라고 말한 것처럼 김안석은 죽도록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인간을 쓰레기와 청소부로 이분하며 자신의 컴플렉스를 그 쓰레기 치우는 일로 해소하는 인간. 예수를 밀고해야만 하는 운명을 지녔던 유다처럼 오로지 평생을 남에게 분노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게다가 김안석은 영화 끝까지 자신과 화해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 물론 그것을 기대한 바도 아니었지만 - 더 큰 연민이 느껴진다.

1988년에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그해 여름방학 담임 선생님과 우리들은 한학기 동안 쓴 글을 가지고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널리 보급된 시기가 아니라서, 선생님이 뽑아주신 반 아이들의 글을 일일이 손으로 베끼는 수작업을 해야했다. 그 문집에 담긴 글의 주제는 다양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올림픽 개최로 인한 노점상 철거에 대하여' 찬반의견을 논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대외적 이미지와 노점상 철거를 연결시키는 것에 숨겨진 의미를 그당시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로서도 문제의 원인을 애꿎은 데서 찾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어쨌든,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데모 때문에 대학교와 나란히 붙어있던 학교 안에 갇히기가 일쑤였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초등학생들에겐 상당히 급진적인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선생님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대통령은 곧 전두환, 전두환은 좋은 대통령이라는 등식으로 세뇌된 우리들의 의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선생님께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때로 진실은 너무 꼭꼭 감춰져서 애써 파헤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려고 하셨던게 아닐까 하는 뒤늦은 생각을 해본다. 

민주화가 무엇일까. 영화에서 지강혁의 동생은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잘못된 걸 '합리적으로' 잘된 상태로 고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치만 이 민주화에는 함정이 있다. 돈과 권력이면 진실도 살 수 있고, 합리도 조작할 수 있는 거다. 그 어떤 사회의 형태보다 민주주의가 조작될 가능성이 짙은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순이다.
민주화라는 거추장스럽고 왜곡의 혐의가 짙은 단어를 쓰기가 부담스럽다면 사람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모순이 없다고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해두자. 아니, 영화의 막바지에서처럼 햇살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달린 마지막 잎새가 언제 떨어질지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는 곳이라고 하면 너무 낭만적일까. 그러나 이 간단명료하고 대단치 않고, 돈이라곤 한 푼 안드는 설명이 제대로 통용되는 사회는 불행히도 아직 까마득하다. 
그건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 영화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흥행실패'라는 비극적 운명이 고스란히 증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재구성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회피, 더 나쁘게는 무관심. 이 영화의 성공 여부가 민주의식의 척도로 사용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눈뜬 장님처럼 살아왔던 내 자신이 더욱 부끄럽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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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0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봤어요. 최민수의 악역 역할, 참 최민수아니면 하기 힘든 오버 카리스마였죠^^ 나중엔 웃음밖에 안 나오더군요. 이성재는 좋았어요. 깡마른 몸에 까칠한 얼굴, 현실과는 다르게 포장되었지만 괜찮은 영화로 그저 기억되네요. 88년 전 대학을 졸업한 해였죠. 인질극을 벌이던 장면에서의 쇠창살이 잊히지 않아요. 당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장면과 거의 흡사했어요..

부엉이 2006-07-2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 어렸다는 것으로 무관심을 변명해도 될지... 저는 솔직히 이 사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이성재나 최민수는 무서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딘가에서 배우란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을 읽었는데, 저 사람들 정말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