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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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작가들의 단편소설들, 가령 이상 문학상이라든지 현대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볼 때면 작가들이 지나치게 관념적 주제에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가와 독자가 생각하는 소설의 가치는 제각각 다를 테지만, 소설도 본디 유희의 한 목적이자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마도 최근 한국 문학에서 보이는 그런 기조가 기존 독자들에게선 피로감을 유발하고 새로운 독자들에겐 유입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짐짓 우려를 표하고 있으니 내가 한국 문단의 권위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독서량으로 따지면 파워 독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주제에(ㅎ). 뭐 아무튼 요즘 단편 소설들은 왠지 현실과의 접점이 부족하고, 그래서 내게는 별로 와 닿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왜 저런 이야기를 열심히 썼느냐면, 뻔하지. 8년 전에 나온 이 소설집은 요즘 소설들과 달리 고상한 척하지 않고 아주 재밌기 때문이다. 문장 이곳저곳에서 숨길 수 없는 여류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묻어난다. 여류 작가들을 아주 거칠고 단순하게 문체로 분류해보면 신경숙, 한강, 편혜영, 김숨이 진중한 문체의 작가로 분류될 것이고 정이현은 양귀자, 은희경, 김애란과 함께 가볍고 활기찬 문체의 작가로 분류될 것이다. 이렇게 가볍게 읽히는 문체는 역시 가벼운 일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장점이 극대화된다. (주제가 가볍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작가의 장기는 가독성 좋은 문체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작가는 짐짓 가벼워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내면을 담담하고 치밀하게 그려낸다. 『삼풍 백화점』은 별로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다. 취직도 연애도 신통치 않던 화자는 동창 R을 다시 만난다. R은 결코 화자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학교는 졸업했는지 묻는 법이 없다. 둘은 담담하게 적당히 가까워진다. 화자도 R에게 왜 혼자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이 예의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무너진 삼풍 백화점과 함께 사라진 R을 담담하지만 참으로 힘겹게 소회하곤 한다. 이런 관계를 통해서 적절한 마음과 마음 사이의 알맞은 거리가 무엇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반문한다. 『어금니』에서는 아들 현우가 조건 만남으로 만난 열 여섯 살 여자 아이를 조수석에 태우고 음주운전을 한다. 여자 아이는 현장에서 죽고, 현우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에 그친다. 현우의 아버지는 합의를 통해 사건을 정리하는 데만 집중하고, 현우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병실에서 만화책을 읽는다. 망자에 대한 애도와 죄책감이 결여되어 있는 이 풍경 속에서 오직 현우 어머니의 죄책감만이 뽑지 않은 어금니처럼 묵묵히 썩어 들어간다. 『위험한 독신녀』에선 철없던 시절의 악의에 대한 묵묵한 참회를 이야기하고 『익명의 당신에게』에선 사랑에 대한 확증 편향적 사고가 얼마나 비겁한 행동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교묘히 이야기한다. 


요즘 재밌는 책이 통 없다면 이 책을 권한다. 때론 과민한, 때론 담담한 우리들 이야기 속에서 무너지는 양심과 그것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려 하는 안간힘이 이루는 긴장을 느껴보자. 읽어보면 알겠지만 돌싱, 노처녀가 얼마나 예민한지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건 덤이다. (ㅎㅎ 농담!)

어쩌다 가끔, 예컨대 휴일 오후 긴 낮잠에서 깨어 보니 이미 캄캄한 밤이 되어 버렸다든가 할 때에는 문득 어리벙벙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 정도 고독이야 현대인들 누구나 느낄 만한 수준이므로 나도 견딜만하다고 생각한다. 삶에 절정이 없다는 것쯤은 진즉에 눈치챘다. 9p

엄마 미쳤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 어떻게 살라는 거야? 너 계속 영어학원 다녔잖아. 기껏 비싼 돈 처들여 학원 보내줬더니 말이 왜 안 통해? 아무튼 안 돼. 난 절대 다른 나라에서는 못 살아. 왜? 왜냐면 나는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니까. 그제야 내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3월이 코앞이었다. 51p

물어봤으면 대답해주었겠지만, R에게 왜 혼자 사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R은 그걸 섭섭하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마음과 마음 사이 알맞은 거리를 측정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몹시 어렵기만 하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시집들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입을 닫았다. 캐러멜 색 표지의 `文學과 知性 詩人選 80 기형도 詩集` 『입 속의 검은 잎』은 나도 가지고 있는 시집이었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그렇게 시작하는 뒤 표지의 시작 메모를 R의 집에서 다시 읽었을 때,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이 땅의 날씨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59p

아주 어렸을 적, 쇠줄에 종일 묶여 있던 옆집 개의 이름을 붙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노랑이, 라는 이름은 털 색깔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검둥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명명은 책임질 수 있을 때나 하는 것임을, 나는 이제 어렴풋 알고 있었다. 72p

남편이 다정하게 잔을 부딪쳐왔다.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 94p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빳빳하게 투명 코팅된 컬러 사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중에 이선희를 선택하든 허재를 선택하든, 어쨌든, 너는 백 원의 동전을 지불해야만 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선택의 폭은 넓었다. 허재인가, 이선희인가. 결정하지 못하고 너는 늘 쭈뼜댔다. 그때 너는 몰랐다. 제 안의 욕망을 냉랭하게 응시하는 일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171p

엄마는 오해했다. 그가 상처(喪妻)한 남자라 싫은 게 아니라, 상처(傷處)를 가지고 있어서 싫었다. 247p

부정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응징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녀가 62명 중에 62등이라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언제든 알려질 비밀이었다. 그 소문이 산불처럼 번지는 데 대해 나는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대걸레라는 별명을 붙인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채린의 뒤에 대걸레와 주전자밖에 없잖아, 라고 커다랗게 말했을 뿐이다. 그 말 속에 들어 있던 악의를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단정하고 규범적인 소녀라면 누구나 그녀에 대해 그만큼의 악의는 품고 있었을 것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채린에게 어디서부터 사과해야 할지 막막했다. 253p

연희는 자신이 이름 모를 커다란 괴물의 뱃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제 안의 부적절한 욕망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숭고하고 비루한 때라는 것을 연희는 깨달았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억지로라도 식욕을 내야 했다. 연희는 샌드위치 조각을 맹렬히 씹어 삼켰다. 3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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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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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지루하고 읽기 어렵지만 읽을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작품이 있다. 긴 이야기를 끝내 다 헤쳐나가고 그 끝에 당도했을 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큰 감동이 온다. 그것은 단편 소설에는 없는 장편 소설만의 미덕이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5년,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그리고 에필로그의 1999년에까지 이르는 길고 지난한 이야기다. 책은 무려 521페이지에 달한다. 


제1부에선 브리오니와 그녀의 가족들,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서술된다. 답답하리만치 자세한 풍경 묘사와 꼼꼼한 심리 서술은 작가가 의도한 소설의 문법이다. 브리오니가 쓰려 했던 20세기 초반 소설 문체와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1부에서 브리오니는 거짓 증언으로 로비와 세실리아의 삶과 사랑을 파멸로 몬다.


제2부는 로비의 이야기다. 브리오니의 위증과 진범의 침묵으로 로비는 강간죄를 뒤집어쓰게 되고, 출소 후엔 2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징집된다. 감옥에서 로비와 세실리아를 이어주는 것은 편지뿐이다. 그나마도 검열 때문에 사랑 표현은 할 수가 없었다. 출소 후 전장으로 나가기 전 세실리아와의 짧은 재회에선 수도 없이 되뇌던 말(사랑해. 너로 인해 살았어)을 하지 못하고 하숙집에 대해서나 묻는다. 짧은 키스 후 작별은 기약이 없다. 로비가 발 디딘 프랑스는 피 냄새나고 갈증나는 지옥이다. 전장의 묘사는 참혹하고 문장 호흡은 빠르다. 스투카 폭격기의 폭격 장면에선 독자도 공포를 느낀다.


제3부는 브리오니의 이야기다. 브리오니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위증이 죄였음을, 그것이 두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음을, 그래서 그것이 용서받지 못할 큰 죄였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보장된 삶을 버리고 언니의 삶을 뒤쫓듯 간호사의 길로 자처해 들어선다. 브리오니는 세실리아 언니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속죄의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이 간호사가 되기 전 로비와 세실리아에 대해 썼던 소설 '분수대 옆의 두 사람'이 죄책감이 결여된 비겁한 글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세실리아 언니와 재회한 후 진정한 속죄의 마음으로 새로운 소설 '속죄'를 쓰리라 다짐한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적기를 놓친, 그래서 결코 하지 못하는 속죄가 있기 마련이다. 고해성사를 해야겠다. 그때 피아노 학원에서 원생 신발을 차도로 던진 건 저였어요. 9살이었고 그게 재밌었어요. 죄송합니다 원장님. 신발값 물어주셨죠. 죄를 알고 나니 피아노 학원은 없어졌어요. 선생님 이름도 기억이 안 나네요. 속죄할 길이 없네요. 롯데 슈퍼 사장님 죄송합니다. 19살 때 술에 취해 사람 없는 틈을 타 소시지 한 개를 몰래 주머니에 넣었어요. 돈이 없는 것도, 소시지가 먹고 싶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바로 지금 남의 것을 훔칠 수 있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저지른 짓이었어요. 쾌감은 잠깐이고 찝찝함은 영원할 거란 걸 그 순간은 몰랐어요. 아직도 집 앞엔 슈퍼가 있는데 언젠가는 문틈에 지폐라도 끼워 넣어야 할까 봐요.


중죄를 고백한다. 그땐 나름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20대였다. 브리오니처럼 말로 지은 죄였다. 알량한 정의감이었다. 익명의 힘을 빌려 정의의 투사라도 된 양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건 부정한 일이었다고. 저격당한 사람은 큰 상처를 받았다. 다른 누군가는 그 글을 쓴 게 당신 아니냐며 여러 사람의 오해를 받았다. 나는 문제 제기만 하고 결코 수면 위로 나오지 않았다. 일이 커진 후엔 뒷감당이 두려워 내가 그 글을 썼노라고 고백할 수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내가 비판한 사람과 수면 위에선 아주 무난히 웃으며 잘 지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속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그때 그 일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었던 해프닝으로 기억하길, 아니면 그냥 잊어버렸길 바랐을 뿐이었다.


마음으로 하는 속죄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일종의 자기 기만이 아닐까? 브리오니는 자학하듯 자신의 삶을 고행으로 던졌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용서할 주체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삶의 태도만 변화시키는 건 죄책감을 덜어낼 요량의 취소(undoing)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변해도 죄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용서를 구할 상대가 없다는 건 속죄할 길이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브리오니는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용서해 줄 사람 없는 속죄의 길에서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리오니는 평생 속죄하며 글을 썼다. 사람들은 많은 죄를 짓고 때론 침묵한다. 죄많은 세상에 뉘우침은 적다. 용서와 속죄가 따로 성립할 수 있는가. 소설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그녀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선과 악, 영웅과 악당이라는 피곤한 투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세 사람 중에는 악한 사람도 특별히 선한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굳이 교훈이 있어야 할 까닭도 없었다. 단지 타인의 마음도 똑같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는 각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었다. 67p

그녀는 또한 자신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마음의 평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남에 대한 친절이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법이었다. 107p

그렇게도 뻣뻣하고 오만하던 여자애가 아홉 살짜리 남동생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브리오니는 신기하게 느껴졌고, 더불어 자신의 강인함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바로 이거야. 기쁨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된 건 자기 내면의 힘 덕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결국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때때로 더른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170p

심지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역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치밀하게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그녀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들의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증거였다. 214p

로비와 세실리아는 지난 수년 동안 사랑을 나눠왔다ㅡ편지로. 암호를 교환하며 서로 더욱더 가까워졌는데, 이제 실제로 만나 예의바른 질문과 대답을 나누다보니 그 가까움이란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편지에서 너무 앞서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순간을 너무나 오랬동안 열망하고 상상해온 게 문제인 것 같았다. 현실이 상상과 희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세상에서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에게는 한 걸음 물러나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랑해. 너로 인해 살았어. 수도 없이 되뇌었던 그 말이 지금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가 사는 하숙집에 대해 물었다. 290p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편지는 그녀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었다. 소녀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에게 끔찍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녀는 보잘것없는 글재주로 하찮은 소설 하나 써냄으로써 그 사실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소설을 잡지사에 보냄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했던 건 아닐까? 빛과 돌과 물에 대한 장황한 묘사, 세명의 관점으로 나뉜 서술방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끝없이 계속되는 고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비겁함을 숨길 수는 없다.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ㅡ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ㅡ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그녀 인생의 척추였다. 449p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5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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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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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났으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이 한 몸 기꺼이 조국과 민족에 바치는 독립투사가 되었을까? 아니면 부귀영화를 좇는 친일파가 되었을까? 이도 저도 아닌, 민족의 개념 같은 건 없이 각자도생하는 소시민처럼 살았을까? 


사람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아마도 이미 그건 개인의 선택을 벗어난 문제일 것이다. 역사가 격동하는 순간에 개인은 자신의 삶은 선택할 수 없고 그저 휘말려 들어갈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역사의 폭력 앞에서 개인의 실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역사 앞에 놓인 개인의 삶을 고찰하게 한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의무 교육을 통한 역사 교육만 받은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1930년대의 만주와 '대한민국'이 가르치지 않았던 사회주의 세력의 항일 운동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만주는 1677년 청나라가 봉금(封禁) 조치를 시행하며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땅이었으나 청의 빈민들이 화적과 기아를 피해 만주로 이주해 살기 시작한 곳이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청 정부는 만주에서의 거주와 개간을 공식적으로 승인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도 국경의 조선인들은 기아에 시달렸고 새로운 땅을 찾아 만주로 이동한다. 중국인과 조선인이 혼재해 살고 있던 만주를 일본은 1931년 무력으로 제패한 뒤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운다. 


1932년의 만주는 중국인들과 일제의 식민지인이 돼버린 조선인들도 살고 있으며 일본의 관동군이 지배하는 땅이었다. 당시 만주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조선 공산당이 각기 항일 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나 조선 공산당은 해체됐다. 해체된 조선 공산당의 인원들은 당 앞에 국가와 민족을 통일하여 집결하라는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이라는 지침에 따라 중국 공산당에 합류하여 항일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는 그 '하나의 공산당'을 분열시키기 위해 조선인 민생단을 조직해 침투 시킨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김해연은 20대 초반의 조선인으로 만철(滿鐵)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식민지 체제 하의 일본인으로 자랐을 그에겐 '민족'이라든지 '조국'같은 개념이 희미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없었을 지도. 만주는 황량하고 차가운 땅이다. 그 땅에는 일본 제국에 항거하는 중국 공산당과 조선인 소비에트가 있다. 치열한 민족과 사상의 투쟁터에서 김해연은 오로지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있었다. 


김해연은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사망 사건에 휘말린다. 그것은 그 자신과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모두 거짓으로 만든다. 이 사건으로 그는 한 번 건너면 다시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불타는 다리'를 건넌다. 이제 잔인하게 깨달은,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삶은 진실이어야 할 텐데 그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죽음을 택한다. 그는 역사의 조연도 되지 못한 무기력한 개인으로 삶을 마감하려 한다. 


하지만 만주에서 사진관을 하고 있던 조선인 식구들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이후 그는 실어증을 앓는다. 얼큰해진 술자리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에게 분노한 길송이형에게 실컷 두드려 맞는다. 막힌 그의 입에서 갑자기 서러운 울음과 외침이 터져 나온다. 복수할 거라고. 


그는 순전히 타의에 의해 이제까지 살던 세계가 송두리째로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 그의 가슴속엔 복수심이 조용히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배신감에 찾아간 나카지마를 총으로 쏠 수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복수할 구체적인 의지도 힘도 없었다. 그에겐 어떤 무력감만이 남았다.


내 몸에는 어떠한 소망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겁낸 건 바로 눈물이었다. 늙은 나무에 피는 꽃처럼, 내 마른 몸에서 눈물 같은 게 나올까 봐.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인간으로 볼까 봐. 친절을 베풀고 나를 감싸 안을까 봐. 그리하여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나 같은 놈도,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놈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까 봐.

123p


그는 다시 태어난 세계에서 새로 만난 사랑을 택한다. 여옥이와 경성으로 돌아가려 한다.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 사진관 식구들이 유정촌에서 있는 여옥이 언니 결혼식에 참가하던 날 그들은 관동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는다. 유정촌은 항일 조선인 소비에트였고 그 결혼식은 유격대에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위장 행사였음이 발각된 것이다. 


당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역사는 비참하다. 폐허로 된 어랑촌과 즐비한 시체 속에서 그를 발견하고 살려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변절한 항일 독립운동가 최도식이었다. "너만은 살려줄 꼬마" 민족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었는지, 양심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너 같은 놈은 살아있어도 아무런 해도 안된다는 건지 알 수는 없다. 여옥이는 한 다리를 잃은 채로 김해연과 헤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김해연은 두 번째로 모든 걸 잃는다. 하지만 이 두 번째 역사의 폭력을 계기로 그는 변한다. 살아남은 몸을 항일 유격구로 끌고 들어간다. 


그가 항일 유격구에 들어가 항일 운동에 매진한 이유는 민족과 국가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세상을 빼앗아 간 일제에 대한 복수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항일 유격구가 민생단으로 인해 술렁거리고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그곳엔 두 명의 조선인 지도자가 있었다. 


박도만은 현실적인 사상가다. 중국 공산당의 지침인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을 따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공산당으로 항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맞서는 박길룡은 민생단으로 이상을 좇는 민족주의자다. 항일 유격구의 정보가 민생단 첩자에 의해 새어나간다는 소문으로 유격구는 광기에 휩싸인다. 서로를 의심하고, 적을 쏴야 할 총구는 동료의 머리통을 향한다. 광기는 걷잡을 수 없다. 수백 명이 서로 죽이고 서로 죽는다.


민생단과 반민생단이 서로를 서로의 이유로 몰아세워 죽이는 동안 김해연은 그 지옥에서 탈출한다. 역사의 폭력은 유순한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카지마를 찾아가 오른팔을 쏘고 그를 인질 삼아 유격구의 포위를 풀고 그곳에서 빠져나간다. 마지막 발걸음 전 어둠 속에서 노래 부르던 한 남자를 죽인다. 다시 그는 온전한 하나의 개인으로 돌아간다. 


1942년, 처음으로부터 10년이 지나고 그는 최도식을 찾는다. 변절자 최도식을 찾아 그를 죽이려 한다. 최도식에게 이정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그에게 거짓이었지만 최후의 순간에 그를 지키려 자살했다. 권총을 빼려는 순간 최도식의 자식들을 본다. 김해연은 최도식을 자식들 앞에서 죽일 수 없다. 복수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죽고 죽이는 복수의 나선에서 내려온다. 


김해연은 결정적인 전환점마다 선택을 한다.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항일 유격구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을 넘어선 사상의 문제로 서로를 죽이는 유격구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빠져나간다. 흔히 인간은 역사라는 거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김해연은 역사의 톱니바퀴로 마모되지 않았다. 삶의 전환점에서 민족이나 이념이 아닌 삶과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으므로. 역사에 휘말렸을지언정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었고 그는 살아남았다. 


반면 자신의 실존보다 이념을 우선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정희, 안세훈, 박도만, 최도식은 모두 독립을 꿈꾸며 모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오해하기 시작하고 서로를 죽이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유가 오로지 이념과 사상이었던 이들은 낮을 꿈꾸며 밤에 노래했다. 그들은 모두 비극을 맞았다. 


아마도 소설이라 가능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역사를 이루는 부품이 아니라 오롯한 자신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유기체임을, 그래야만 함을 믿고 싶다. 


지금 우리 역사에선 만주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했던 항일 운동을 말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흘렸던 피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소설가 김연수는 그들을 지면으로 불러냈다. 춥고 황량한 땅에서 피 흘리며 서로 죽이고, 죽어갔던 청춘들이 있었다. 개인의 역사는 공적 역사로 치환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당위에 알맞게 취사선택된다. 하지만 역사엔 당위가 없다. 잊혀야 할 역사도 없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밤은 노래하고 있다.

"아까 그놈들은 토비들이었다. 우리와는 전혀 싸울 마음이 없는 마적단에 불과하지. 저런 토비 따위 말고 말이야. 공비를 만나본 적은 없겠지? 생포해보면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녀석들이 수두룩 해. 그런 녀석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공산당 만세를 외친다. 그놈들의 머리통에다가 총알을 발사할 때, 우리는 공히 고통을 잊어버리지. 내게는 총이 있고, 그놈들에게는 신념이 있으니까." 23p

시간의 흐름을 일일이 느껴가면서 천천히 일했고 자주 암실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 가만히 암등을 바라봤다. 직시할 수 있는 빛, 볼 수 있는 어둠. 암등은 빛도, 어둠도 아니지만 동시에 빛이자 어둠이다. 영국더기 언덕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빛의 세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빛의 세계 속에 어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채게 됐다. 인화된 양화(陽畵)는 필연적으로 음화(陰畵)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진실은 현상한 필름에도, 인화한 사진에도 있지 않았다. 진실은 음화와 양화, 두 세계에 동시에 걸쳐 있다. 126p

누군가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내가 살아온 과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다. 내 인생을 모두 바꿀 수 있었다. 나는 고문받았고, 그때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들을 모두 목격한 후에 살아남은 자에게 고통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다만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이 아직은 살아있다고 자각하는 일이 좀더 우리가 아는 고통에 가깝다. 173p

그 말에 나는 눈을 떴다. 산등성이만 바라봐도 눈이 푸르게 물들 것 같은 7월의 화창한 날이었다. 남산 보자구드니 맘은 벌써 뎌길 넘어가 있는겐데. 문득 여옥이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먼저 적위대 쪽에서 총구를 내렸고 이에 호응해 구국군이 총구를 돌렸다. 산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돌리다가 나를 바라보는 한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서 있던 어린 학생이었다. 우리에게 토벌대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소선대원이었다. 그 학생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누가 볼세라 얼른 양쪽 소매로 그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동자.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어둠을 보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는 두 개의 검은 눈동자. 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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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만약 어느 날 잠에서 일어났는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사소한 디테일들이 변해있다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에게서 너무나도 낯선 타인의 느낌을 받는다면 어떨까. 故 최인호 작가의 마지막 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뒤틀리는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새로운 세계에선 사람과 관계들이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려 있다. 한순간에 내던져진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선 금지되어 있지만 감추어져 있던 욕망들, 편집증적 의심, 증오가 감추어지지 않고 그대로 펼쳐진다. 주차장에서 카섹스를 하는 연인, 노출증의 여인, 아내의 간음 동영상, 매형이었던 대학교수의 여장 취향. 주인공 K는 이런 터부들을 목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도 그 터부에 다가선다. 이는 수년 만에 만난 누이에게 느낀 성욕과 키스방에서 세일러복을 입은 어린 여자와의 키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처럼 몰래 금기를 욕망하던 사람들은 그저 타인이 아닌 모든 주변인이며 또한 나 자신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 낯선 타인들은 결국 타인이 아니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게 된다. 같은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또 다른 자신과 그 가족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음을 방증한다. 마치 해리된 자아같은 또 다른 나는, 순수를 상징하는 키스방의 세일러복 소녀를 구하는 장면에서 하나가 된다. 


내재적 관점의 해석도 분분할 수밖에 없는 마당에 외재적 관점의 해석은 더욱 무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이 최인호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소설임을 상기해보고자 한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지만 암 투병으로 그 마지막이 어렴풋이 보일 때의 심정이 어떨까.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소설에서 일관되게 보이던 주인공 K의 염세적, 냉소적인 태도가 그것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극단적 이타심을(문장은 혼돈의 범벅일지라도) 보여준 것은 뒤틀린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자신이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 마지막 소설에 남긴 게 아닐까 한다. 

알 수 없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타인들의 집합체 같았다. 잠시 시간을 내 연병장에 모인 오합지졸의 예비군 같은 모임이었다. 서로 피를 나눈 혈연관계라고는 하지만 친숙함이나 다정함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기도박꾼 집단처럼 느껴졌다.
"자, 카메라를 보세요. 저 뒷줄 맨 오른쪽 분 바짝 더 다가서세요."
사진사는 오합지졸의 예비군들을 통솔하는 조교처럼 익숙하게 사람들을 다루었다. K는 너무 더워 땀이 났으므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K는 자신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잘 팔리지도 않으면서 매대에 진열된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같다고 생각하였다. 가족이라는 슈퍼마켓에 아내는 아내라는 이름의 상표로, 장인은 신부의 아버지라는 라벨로, 처제는 신부의 역할을 맡은 신상품의 견본으로 이렇게 함께 서 있는 것이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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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이런 말 장난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편혜영 소설은 불편해영" (웃음)


맞다. 이 소설집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불편함을 넘어서 불쾌하기까지 하다. 갈라지는 쥐와 고양이의 배. 시체와 그것을 파먹는 구더기. 역류하는 하수와 시취. 독자를 충격에 빠트리는 건 서사보단 털이 쭈뼛 설 정도로 오감을 자극하는 잔혹하고도 생생한 묘사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의 세계는 모두 절망적이다. 


『만국 박람회』에서 소년은 삼촌에 의해 도박장 철창 안에 갇혀 투견과 싸움을 해야 한다. 현실에서의 구원은 없다. 투견에 다리가 물려 체념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 소년을 구원하는 건 환상의 이미지인 원숭이와 마술사의 손길뿐이다. 『저수지』에서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세 아이가 나온다. 이들은 끝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아오이 가든』에서는 역병에 걸린 사람들이 나온다. 화자는 어머니를 그녀로 지칭한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에서 철저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 세계에선 기댈 곳이 없는 것이다. 이야기의 종국에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화자는 무심히 창밖으로 던져져 퍽퍽하고 배가 터져 죽던 개구리에 다름 아니다. 『마술피리』에서 작가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실험용 쥐와 엄마의 무관심 속에 앓고 야위어가는 동생 미아를 병치 시킨다. 이 둘은 결국 동일시되어 가족의 결핍과 가난이 빚는 비극을 말한다.


도대체 편혜영은 왜 이런 소설들을 썼을까. 왜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며, 추악한 세상을 그렸을까. 글은 끔찍하고 작가는 무표정하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일본 괴기 소설처럼 엽기적인 이미지로만 남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라 말했다. 그렇다면 이 기괴한 소설의 독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없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얼핏 기괴한 이미지의 나열로만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그것들의 초점은 모두 삶의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약자들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야기들은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을 넘어선다. 이야기들은 약자들에게 행해지는 사회의 저열한 폭력을 폭로한다. 그렇기에 직시하기 어려운 악몽 같은 이야기들은 반대로 직시해야만 하는 현실의 한 부분이 된다. 


소설집『아오이 가든』은 2005년 한국 문단에서 충격이었을 것이다. 편혜영은 이후 근 십 년의 시간을 거치며 이상 문학상, 현대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작가가 되었다. 그가 최근 내놓은『선의 법칙』에 일부 기존 독자들은 실망했다. 착한 이야기는 흔하고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편혜영의 글을 사랑하던 독자들은 남들이 애써 피하려 하는 이야기를 들춰내 꺼내어 놓는 편혜영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불편한 편혜영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셋째는 쥐의 배를 가르는 일을 계속했다. 셋째가 던져준 과자 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자란 쥐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셋째는 녹이 슨 칼로 쥐의 배를 갈랐다. 가른 배에서는 붉은 피와 내장에 휩쓸려 새끼 쥐 몇 마리가 튀어나왔다. 피를 묻힌 맨살의 죽은 쥐들이 방 안을 솜처럼 떠다녔다. 사방의 벽에서 떨어진 벌레들이 쥐를 피해 갈라진 틈으로 숨었다.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벌레들은 아이들의 벌린 입 속으로 드나들었다. 둘째의 귀로 꼬물거리는 구더기가 몇 마리 숨었다. 구더기들은 둘째 몸에 기생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p.31

엄마는 미아에게 챙겨줄 만한 돈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외곽의 여자 대학 식품영양학과에 다니는 내게는 그 흔한 과외도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영양사 시험 준비를 한답시고 아르바이트로 하지 않는다. 가급적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벌이지만 이제는 그나마 쓸 돈도 없다. 돈이 없으면 원래 가난했던 것에서 하루치씩 더 가난해져야 하지만 가난에는 그런 산술적인 계산이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몇 년치의 가난을 한꺼번에 맞았고 이후로도 몇 달치씩 가난해지고 있다. 가난이란 본래 평생의 가난이 일시에 들이닥치는 법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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