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두 달 전 후배 L과 술 마셨다. 내 근황을 묻는 그의 말에 그저 거의 매일 뭔가를 읽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L은 대뜸 군대에 있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 말했다. 읽을 때마다 힐링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L을 오래 봐서 알지만, 그는 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세 번이나 읽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다가 힐링? 나 히가시노 게이고도 몇 권 읽어봐서 아는데, 힐링이라니? 그 양반 소설은 늘 사연 많은 살인을 풀어나가는 날카로운 형사 이야기(ㅎㅎ)인데? 의아했다. 한 번 읽어보란 L의 강권에 그러마고 대충 대답하고 술이나 계속 마셨다. 그리고 두 달 지난 지금 책을 다 읽었다.


과연 그랬다. 살인 사건과 형사가 나오지 않는 힐링 소설이다. 이야기는 32년 전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던 나미야 할아버지의 잡화점에 우연히 들어간 3인조 범죄자들이 겪는 신비한 경험이다. 시간축이 뒤틀려 있는 나미야 잡화점에서 3인조는 과거의 고민들을 현세에서 맞이한다. 가방끈 짧고 교양도 없는 3인조의 무례한 답장은 웃음이 나오면서도 기묘하게 현실적이다. 과연 나미야 잡화점엔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은 나미야 잡화점의 조언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조언을 따랐지만 현실이 그다지 잘 풀려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상담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답을 남에게 확인받으며 위안과 확신을 얻으려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현실의 문제는 결국 자신의 손에 달려있으므로 조언이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상담은 자신의 고민을 객관화하는 과정이기에, 답변대로 행동하든 하지 않든 그 자체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대답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담 요청한 사람들의 인생이 변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고민에 대답하는 3인조도 변해간다. 쉬운 문장으로 깊은 고민을 풀어나가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L을 다시 만나면 덕분에 좋은 소설 잘 읽었다고 말해야지.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겼다. 자신의 지도가 백지인 사람들은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으니 멋진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자신의 지도가 마구 덧칠돼 있어서 더 이상 뭔가를 더 그릴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뒤집은 다음 다시 그리면 된다구요? 넹... 말은 쉽네요... 어쨌든 인생은 난문(難問)이라는 말씀만은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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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