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엔 지루하고 읽기 어렵지만 읽을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작품이 있다. 긴 이야기를 끝내 다 헤쳐나가고 그 끝에 당도했을 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큰 감동이 온다. 그것은 단편 소설에는 없는 장편 소설만의 미덕이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5년,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그리고 에필로그의 1999년에까지 이르는 길고 지난한 이야기다. 책은 무려 521페이지에 달한다. 


제1부에선 브리오니와 그녀의 가족들,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서술된다. 답답하리만치 자세한 풍경 묘사와 꼼꼼한 심리 서술은 작가가 의도한 소설의 문법이다. 브리오니가 쓰려 했던 20세기 초반 소설 문체와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1부에서 브리오니는 거짓 증언으로 로비와 세실리아의 삶과 사랑을 파멸로 몬다.


제2부는 로비의 이야기다. 브리오니의 위증과 진범의 침묵으로 로비는 강간죄를 뒤집어쓰게 되고, 출소 후엔 2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징집된다. 감옥에서 로비와 세실리아를 이어주는 것은 편지뿐이다. 그나마도 검열 때문에 사랑 표현은 할 수가 없었다. 출소 후 전장으로 나가기 전 세실리아와의 짧은 재회에선 수도 없이 되뇌던 말(사랑해. 너로 인해 살았어)을 하지 못하고 하숙집에 대해서나 묻는다. 짧은 키스 후 작별은 기약이 없다. 로비가 발 디딘 프랑스는 피 냄새나고 갈증나는 지옥이다. 전장의 묘사는 참혹하고 문장 호흡은 빠르다. 스투카 폭격기의 폭격 장면에선 독자도 공포를 느낀다.


제3부는 브리오니의 이야기다. 브리오니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위증이 죄였음을, 그것이 두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음을, 그래서 그것이 용서받지 못할 큰 죄였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보장된 삶을 버리고 언니의 삶을 뒤쫓듯 간호사의 길로 자처해 들어선다. 브리오니는 세실리아 언니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속죄의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이 간호사가 되기 전 로비와 세실리아에 대해 썼던 소설 '분수대 옆의 두 사람'이 죄책감이 결여된 비겁한 글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세실리아 언니와 재회한 후 진정한 속죄의 마음으로 새로운 소설 '속죄'를 쓰리라 다짐한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적기를 놓친, 그래서 결코 하지 못하는 속죄가 있기 마련이다. 고해성사를 해야겠다. 그때 피아노 학원에서 원생 신발을 차도로 던진 건 저였어요. 9살이었고 그게 재밌었어요. 죄송합니다 원장님. 신발값 물어주셨죠. 죄를 알고 나니 피아노 학원은 없어졌어요. 선생님 이름도 기억이 안 나네요. 속죄할 길이 없네요. 롯데 슈퍼 사장님 죄송합니다. 19살 때 술에 취해 사람 없는 틈을 타 소시지 한 개를 몰래 주머니에 넣었어요. 돈이 없는 것도, 소시지가 먹고 싶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바로 지금 남의 것을 훔칠 수 있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저지른 짓이었어요. 쾌감은 잠깐이고 찝찝함은 영원할 거란 걸 그 순간은 몰랐어요. 아직도 집 앞엔 슈퍼가 있는데 언젠가는 문틈에 지폐라도 끼워 넣어야 할까 봐요.


중죄를 고백한다. 그땐 나름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20대였다. 브리오니처럼 말로 지은 죄였다. 알량한 정의감이었다. 익명의 힘을 빌려 정의의 투사라도 된 양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건 부정한 일이었다고. 저격당한 사람은 큰 상처를 받았다. 다른 누군가는 그 글을 쓴 게 당신 아니냐며 여러 사람의 오해를 받았다. 나는 문제 제기만 하고 결코 수면 위로 나오지 않았다. 일이 커진 후엔 뒷감당이 두려워 내가 그 글을 썼노라고 고백할 수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내가 비판한 사람과 수면 위에선 아주 무난히 웃으며 잘 지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속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그때 그 일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었던 해프닝으로 기억하길, 아니면 그냥 잊어버렸길 바랐을 뿐이었다.


마음으로 하는 속죄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일종의 자기 기만이 아닐까? 브리오니는 자학하듯 자신의 삶을 고행으로 던졌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용서할 주체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삶의 태도만 변화시키는 건 죄책감을 덜어낼 요량의 취소(undoing)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변해도 죄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용서를 구할 상대가 없다는 건 속죄할 길이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브리오니는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용서해 줄 사람 없는 속죄의 길에서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리오니는 평생 속죄하며 글을 썼다. 사람들은 많은 죄를 짓고 때론 침묵한다. 죄많은 세상에 뉘우침은 적다. 용서와 속죄가 따로 성립할 수 있는가. 소설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그녀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선과 악, 영웅과 악당이라는 피곤한 투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세 사람 중에는 악한 사람도 특별히 선한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굳이 교훈이 있어야 할 까닭도 없었다. 단지 타인의 마음도 똑같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는 각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었다. 67p

그녀는 또한 자신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마음의 평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남에 대한 친절이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법이었다. 107p

그렇게도 뻣뻣하고 오만하던 여자애가 아홉 살짜리 남동생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브리오니는 신기하게 느껴졌고, 더불어 자신의 강인함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바로 이거야. 기쁨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된 건 자기 내면의 힘 덕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결국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때때로 더른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170p

심지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역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치밀하게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그녀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들의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증거였다. 214p

로비와 세실리아는 지난 수년 동안 사랑을 나눠왔다ㅡ편지로. 암호를 교환하며 서로 더욱더 가까워졌는데, 이제 실제로 만나 예의바른 질문과 대답을 나누다보니 그 가까움이란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편지에서 너무 앞서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순간을 너무나 오랬동안 열망하고 상상해온 게 문제인 것 같았다. 현실이 상상과 희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세상에서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에게는 한 걸음 물러나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랑해. 너로 인해 살았어. 수도 없이 되뇌었던 그 말이 지금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가 사는 하숙집에 대해 물었다. 290p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편지는 그녀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었다. 소녀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에게 끔찍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녀는 보잘것없는 글재주로 하찮은 소설 하나 써냄으로써 그 사실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소설을 잡지사에 보냄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했던 건 아닐까? 빛과 돌과 물에 대한 장황한 묘사, 세명의 관점으로 나뉜 서술방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끝없이 계속되는 고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비겁함을 숨길 수는 없다.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ㅡ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ㅡ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그녀 인생의 척추였다. 449p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5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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