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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났으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이 한 몸 기꺼이 조국과 민족에 바치는 독립투사가 되었을까? 아니면 부귀영화를 좇는 친일파가 되었을까? 이도 저도 아닌, 민족의 개념 같은 건 없이 각자도생하는 소시민처럼 살았을까?
사람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아마도 이미 그건 개인의 선택을 벗어난 문제일 것이다. 역사가 격동하는 순간에 개인은 자신의 삶은 선택할 수 없고 그저 휘말려 들어갈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역사의 폭력 앞에서 개인의 실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역사 앞에 놓인 개인의 삶을 고찰하게 한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의무 교육을 통한 역사 교육만 받은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1930년대의 만주와 '대한민국'이 가르치지 않았던 사회주의 세력의 항일 운동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만주는 1677년 청나라가 봉금(封禁) 조치를 시행하며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땅이었으나 청의 빈민들이 화적과 기아를 피해 만주로 이주해 살기 시작한 곳이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청 정부는 만주에서의 거주와 개간을 공식적으로 승인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도 국경의 조선인들은 기아에 시달렸고 새로운 땅을 찾아 만주로 이동한다. 중국인과 조선인이 혼재해 살고 있던 만주를 일본은 1931년 무력으로 제패한 뒤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운다.
1932년의 만주는 중국인들과 일제의 식민지인이 돼버린 조선인들도 살고 있으며 일본의 관동군이 지배하는 땅이었다. 당시 만주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조선 공산당이 각기 항일 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나 조선 공산당은 해체됐다. 해체된 조선 공산당의 인원들은 당 앞에 국가와 민족을 통일하여 집결하라는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이라는 지침에 따라 중국 공산당에 합류하여 항일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는 그 '하나의 공산당'을 분열시키기 위해 조선인 민생단을 조직해 침투 시킨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김해연은 20대 초반의 조선인으로 만철(滿鐵)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식민지 체제 하의 일본인으로 자랐을 그에겐 '민족'이라든지 '조국'같은 개념이 희미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없었을 지도. 만주는 황량하고 차가운 땅이다. 그 땅에는 일본 제국에 항거하는 중국 공산당과 조선인 소비에트가 있다. 치열한 민족과 사상의 투쟁터에서 김해연은 오로지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있었다.
김해연은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사망 사건에 휘말린다. 그것은 그 자신과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모두 거짓으로 만든다. 이 사건으로 그는 한 번 건너면 다시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불타는 다리'를 건넌다. 이제 잔인하게 깨달은,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삶은 진실이어야 할 텐데 그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죽음을 택한다. 그는 역사의 조연도 되지 못한 무기력한 개인으로 삶을 마감하려 한다.
하지만 만주에서 사진관을 하고 있던 조선인 식구들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이후 그는 실어증을 앓는다. 얼큰해진 술자리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에게 분노한 길송이형에게 실컷 두드려 맞는다. 막힌 그의 입에서 갑자기 서러운 울음과 외침이 터져 나온다. 복수할 거라고.
그는 순전히 타의에 의해 이제까지 살던 세계가 송두리째로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 그의 가슴속엔 복수심이 조용히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배신감에 찾아간 나카지마를 총으로 쏠 수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복수할 구체적인 의지도 힘도 없었다. 그에겐 어떤 무력감만이 남았다.
내 몸에는 어떠한 소망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겁낸 건 바로 눈물이었다. 늙은 나무에 피는 꽃처럼, 내 마른 몸에서 눈물 같은 게 나올까 봐.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인간으로 볼까 봐. 친절을 베풀고 나를 감싸 안을까 봐. 그리하여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나 같은 놈도,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놈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까 봐.
123p
그는 다시 태어난 세계에서 새로 만난 사랑을 택한다. 여옥이와 경성으로 돌아가려 한다.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 사진관 식구들이 유정촌에서 있는 여옥이 언니 결혼식에 참가하던 날 그들은 관동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는다. 유정촌은 항일 조선인 소비에트였고 그 결혼식은 유격대에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위장 행사였음이 발각된 것이다.
당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역사는 비참하다. 폐허로 된 어랑촌과 즐비한 시체 속에서 그를 발견하고 살려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변절한 항일 독립운동가 최도식이었다. "너만은 살려줄 꼬마" 민족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었는지, 양심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너 같은 놈은 살아있어도 아무런 해도 안된다는 건지 알 수는 없다. 여옥이는 한 다리를 잃은 채로 김해연과 헤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김해연은 두 번째로 모든 걸 잃는다. 하지만 이 두 번째 역사의 폭력을 계기로 그는 변한다. 살아남은 몸을 항일 유격구로 끌고 들어간다.
그가 항일 유격구에 들어가 항일 운동에 매진한 이유는 민족과 국가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세상을 빼앗아 간 일제에 대한 복수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항일 유격구가 민생단으로 인해 술렁거리고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그곳엔 두 명의 조선인 지도자가 있었다.
박도만은 현실적인 사상가다. 중국 공산당의 지침인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을 따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공산당으로 항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맞서는 박길룡은 민생단으로 이상을 좇는 민족주의자다. 항일 유격구의 정보가 민생단 첩자에 의해 새어나간다는 소문으로 유격구는 광기에 휩싸인다. 서로를 의심하고, 적을 쏴야 할 총구는 동료의 머리통을 향한다. 광기는 걷잡을 수 없다. 수백 명이 서로 죽이고 서로 죽는다.
민생단과 반민생단이 서로를 서로의 이유로 몰아세워 죽이는 동안 김해연은 그 지옥에서 탈출한다. 역사의 폭력은 유순한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카지마를 찾아가 오른팔을 쏘고 그를 인질 삼아 유격구의 포위를 풀고 그곳에서 빠져나간다. 마지막 발걸음 전 어둠 속에서 노래 부르던 한 남자를 죽인다. 다시 그는 온전한 하나의 개인으로 돌아간다.
1942년, 처음으로부터 10년이 지나고 그는 최도식을 찾는다. 변절자 최도식을 찾아 그를 죽이려 한다. 최도식에게 이정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그에게 거짓이었지만 최후의 순간에 그를 지키려 자살했다. 권총을 빼려는 순간 최도식의 자식들을 본다. 김해연은 최도식을 자식들 앞에서 죽일 수 없다. 복수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죽고 죽이는 복수의 나선에서 내려온다.
김해연은 결정적인 전환점마다 선택을 한다.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항일 유격구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을 넘어선 사상의 문제로 서로를 죽이는 유격구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빠져나간다. 흔히 인간은 역사라는 거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김해연은 역사의 톱니바퀴로 마모되지 않았다. 삶의 전환점에서 민족이나 이념이 아닌 삶과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으므로. 역사에 휘말렸을지언정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었고 그는 살아남았다.
반면 자신의 실존보다 이념을 우선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정희, 안세훈, 박도만, 최도식은 모두 독립을 꿈꾸며 모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오해하기 시작하고 서로를 죽이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유가 오로지 이념과 사상이었던 이들은 낮을 꿈꾸며 밤에 노래했다. 그들은 모두 비극을 맞았다.
아마도 소설이라 가능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역사를 이루는 부품이 아니라 오롯한 자신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유기체임을, 그래야만 함을 믿고 싶다.
지금 우리 역사에선 만주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했던 항일 운동을 말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흘렸던 피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소설가 김연수는 그들을 지면으로 불러냈다. 춥고 황량한 땅에서 피 흘리며 서로 죽이고, 죽어갔던 청춘들이 있었다. 개인의 역사는 공적 역사로 치환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당위에 알맞게 취사선택된다. 하지만 역사엔 당위가 없다. 잊혀야 할 역사도 없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밤은 노래하고 있다.
"아까 그놈들은 토비들이었다. 우리와는 전혀 싸울 마음이 없는 마적단에 불과하지. 저런 토비 따위 말고 말이야. 공비를 만나본 적은 없겠지? 생포해보면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녀석들이 수두룩 해. 그런 녀석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공산당 만세를 외친다. 그놈들의 머리통에다가 총알을 발사할 때, 우리는 공히 고통을 잊어버리지. 내게는 총이 있고, 그놈들에게는 신념이 있으니까." 23p
시간의 흐름을 일일이 느껴가면서 천천히 일했고 자주 암실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 가만히 암등을 바라봤다. 직시할 수 있는 빛, 볼 수 있는 어둠. 암등은 빛도, 어둠도 아니지만 동시에 빛이자 어둠이다. 영국더기 언덕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빛의 세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빛의 세계 속에 어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채게 됐다. 인화된 양화(陽畵)는 필연적으로 음화(陰畵)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진실은 현상한 필름에도, 인화한 사진에도 있지 않았다. 진실은 음화와 양화, 두 세계에 동시에 걸쳐 있다. 126p
누군가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내가 살아온 과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다. 내 인생을 모두 바꿀 수 있었다. 나는 고문받았고, 그때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들을 모두 목격한 후에 살아남은 자에게 고통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다만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이 아직은 살아있다고 자각하는 일이 좀더 우리가 아는 고통에 가깝다. 173p
그 말에 나는 눈을 떴다. 산등성이만 바라봐도 눈이 푸르게 물들 것 같은 7월의 화창한 날이었다. 남산 보자구드니 맘은 벌써 뎌길 넘어가 있는겐데. 문득 여옥이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먼저 적위대 쪽에서 총구를 내렸고 이에 호응해 구국군이 총구를 돌렸다. 산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돌리다가 나를 바라보는 한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서 있던 어린 학생이었다. 우리에게 토벌대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소선대원이었다. 그 학생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누가 볼세라 얼른 양쪽 소매로 그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동자.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어둠을 보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는 두 개의 검은 눈동자. 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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