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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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작가가 무슨 말하려는지 대충 감은 온다. 연애는 낭만적이지만 그 후의 일상, 결혼은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이라는 말이다. 이걸 누가 모르나. 그러나 정확히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낭만적 관계가 지긋지긋한 일상이 되는지 고찰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개의 소설이나 영화는 그들이 어떤 역경을 딛고 관계에 성공하게 되는지에만 집중하지 그 후의 일상은 말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정말 그럴까. 미녀와 야수는 그 후로 정말 행복하게만 살았을까? 성격 차이, 육아 문제, 구질구질한 개인사, 그도 아니라면 외도같은 문제는 전혀 없었을까?

 

통상 말하는 결혼 적령기(란 게 있나요)에 속하는 나이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연애는 몇 번 했지만 그때마다 구질구질하게 헤어졌다. <500일의 썸머>의 톰은 썸머 목의 반점을 두고 처음엔 하트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선 바퀴벌레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호르몬 변화로 설명된다. 이건 과학이다. 낭만적 사랑이 식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번번이 그런 시간 앞에서 물러났던 것 같고.

 

완벽히 같은 사람은 없고, 사람이 변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평생을 같이 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고 장점 많았던 그/녀가 이기적이고 단점 많은 그/녀로 보일 텐데 말이다. 해법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읽어봐도 좋다. 좋게 말하면 현실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교훈적이라 재미가 있진 않았다. 낭만적 사랑 - 힘든 일상 - 권태 - 외도의 순서를 거치는 그들 부부가 어떻게 될지를 지켜보며 사랑의 규칙을 되새겨보는 것은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실패를 반추해보게 되니 씁쓸할 수밖에.

 

너무 많이 체크해서 그가 말하는 사랑의 법칙을 전부 옮길 순 없다. 가장 핵심적인, 뻔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말만 옮겨본다.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279p"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283p" 그러니까, 평생 같이 할 사람과 어떻게 같이 행복할지를 상상하지 말고 어떻게 고통을 분담하고 합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라는 말 되겠다. 그러면 치명적인 실수도 줄어들 거란 말.

 

보통도 직접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는데 결혼과 그 후의 일상에 미치는 현실 조건의 영향이다. 행복과 불행을 떠나서 일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갈등 소지가 분명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배우자 월 소득이 얼마 이상이면 이혼율이 현저히 낮다는 기사를 봤다. 사람들이 속물이라 그런 게 아니라 결혼 이후엔 사랑보다 삶을 영위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소설의 남자가 좀 더 능력 있었다면, 그들이 좀 더 넉넉한 형편으로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결혼 전 숙고해야 할 불편한 진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혼하신 분들 존경합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ㅡ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ㅡ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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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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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을 때 딱 편혜영 소설이다 싶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쯤에 있는 그로테스크한 설정, 더럽고 축축한 것의 적나라한 묘사, 배경에 깔린 불안한 정서. 편혜영 좋아한다고 선뜻 말은 안 하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번 소설은 솔직히 별로였다고 말해야겠다. 일단 작가가 그려낸 디스토피아가 너무 현실성 없다. 도시 전체가 쓰레기로 뒤덮이고 시체와 병자의 산 몸이 불타오르고. 끔찍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여 상상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 디스토피아가 어느샌가 멀쩡히 회복되어 버리는데, 이해 안 된다. 그 정도 자정 능력을 갖춘 나라였다면 애당초 전염병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환경이 생겨나지도 않았겠지. 

 

신형철 선생 말마따나 독후의 감을 말하는 데 작품 허물의 기소에 집중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이쯤 하고 복기할 만한 지점만 생각해보려 한다. 소설의 초점 화자인 '그'는 현실 도피하듯 외국 파견 근무를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또다시 현실을 피해 도망쳐야 한다. 전처는 죽었고, 자신은 용의자로 몰리고, 수사를 피해 도피한 현실은 더러운 시궁이다. 그 속에서 그야말로 쥐처럼 살아가는 그는 원래 쥐를 잘 잡는다는 이유로 해외 본사로 파견됐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버려지고 상한 음식을 찾아먹고, 아무 곳에서나 배설하고, 당연히 씻지도 못하고. 자신이 잘 잡던 쥐보다 별달리 나아보이지도 않는 그가 하수도에서 쥐를 다시 맞닥뜨렸을 땐? 역시 잡을 수밖에. "처음에는 자신이 쥐와 같은 처지라는 게 무서웠고 나중에는 쥐를 잡을 때에만 쥐와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안도를 느끼"기 때문이다. 달리 쥐와 쥐처럼 더러워진 인간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이런 역학 관계는 일반적이다. 같은 환경의 타인을 억압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줄 때 맞이하는 우월감과 안도감이 있다. 이런 이유로 같은 곳에 있어도 인간들이 저마다 느끼는 고통의 층위와 정도는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느끼는 우월감과 안도감이 인간 악의 근원일 수도 있다. 나는 쥐인가 아니면 쥐를 잡으며 나는 그래도 다르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쥐 같은 인간인가?

 

편혜영 데뷔 단편집 <아오이 가든>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장편 소설이었다. 편혜영 소설을 읽으며 섬뜩함과 불쾌함 자체를 문장으로 즐겨보라는 어떤 평론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 말대로 섬뜩함과 불쾌함 자체는 즐길 수 있는데 그것으로 그친다면 소설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재와 빨강, 조금 아쉽다. 쥐어짜내며 의미 찾아내기 힘들다. 감기에도 걸렸거니와, 감기약의 진정 효과가 세서 영 퉁명스럽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가 처방한 약인데!) 다행히 이 소설은 편혜영의 2010년 작품이다. 요즘 그의 소설은 이보다 더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그러므로 이 작품만 놓고 작가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 문단에 이만한 스타일리스트는 드물기도 하고.

"나는 연민은 있어도 관용은 없는 사람이야. 불쌍한 사람은 봐줘도 어리석은 사람은 못 봐주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거든. 어리석어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데 사람들은 선하거나 순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일을 망치는 건 결국 그런 사람들이야. 설마 퍼스트클래스 뭐 이런 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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