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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평점 :
소설의 목차는 단순합니다. 10월, 11월, 12월.
10월은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라는 진노랑 포스트잇을 발견한 소설의 주인공 유리가 함께 살고 있는 언니가 아마도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었구나 하는 추측을 하며 시작됩니다. 언니와 같이 산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과 오버랩 되는 3년 전, 그리고 3년 전부터 일기 같은 글을 쓰기 시작한 유리와 친언니도 아닌 언니와 같이 살게 된 사연들이 서서히 베일을 벗습니다.
성이 유, 이름이 리인 유리는 3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쯤 혼자 지내다가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러 나간 자리에서 할머니와 살던 집을 빼면서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고모에게 진 빚을 갚고도 여전히 7천만 원이라는 빚은 남아있고, 수중에는 현금 2만 원과 통장잔고 408원이 전부였던 날이 떠올립니다. 지내던 고시원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집에 간 줄 알았던 언니는 무심하게 ‘이거 너 해.‘라며 3등에 당첨 된 복권을 건네줬습니다. 언니는 망설이는 유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같은 동네에 집을 얻으라고 했고 유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카페에 취직을 하고 번 돈으로 방이 두 개인 곳으로 이사를 했고, 지금은 창고로 쓰던 빈방에 언니가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16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 둔지 이제 2주, 보름, 3주, 한 달이 되고 50일이 되었을 뿐인데 주변에서는 걱정을 하고 언니의 동생도 찾아와 남인 유리의 집에 살고 있는 언니를 걱정합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할머니와 살던 옛집을 찾아가 주변을 배회하는 유리는 부모님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사랑만큼은 듬쁙 받고 자랐습니다. 언니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함께 살던 시절에 불을 냈던 기억과 그 이후로 집안의 혼나는 사람이 되었던 날들을 이제 모두 정리해 별거 중인 엄마에게 집을 마련해 드리고 유리의 작은 공간에 더 작은 자신만의 방을 마련하고 나름 편안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11월의 분노할 일이 생길 거라는 운세, 그럼에도 10월의 가을 보다 11월의 가을을 좋아하는 두 사람과 유리의 카페 단골 손님이자 동네 친구인 재한 씨까지 세 사람이 포항에 가게 된 날과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긴 터널을 가봤으면 하는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날 정작 그 터널을 가고 싶어했던 언니는 천연덕스럽게 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잤다며 웃습니다. 오래 기억 될 시간을 지나 12월에 이르러 이제는 포항으로 내려가 살게 된 재한에게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있으면 좋대요, 그 이유가 여행의 이유가 되어 주기 때문이라 말 할 줄 아는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소설은 끝이 납니다.
[어느 날의 나]는 대화를 읽을 때도 누구의 말인지 두세 번 읽고 나서야 짐작하고 유추해야지만 과연 누가 한 말인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내년이면 서른 아홉인 언니와 88년 생이라 이제 곧 서른 중반이 되는 유리는 너무도 다른 데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인 두 사람과 일상으로 가득한 유리의 글을 읽는 독자 사이엔 명확하지 않는 막이 존재합니다. 모호하고 은유적인 시선과 일상적인 태도를 타고 등장하는 비범하고 특별한 관계 속에서 소설은 좋은 일도 있는 만큼 나쁜 일도 일어 날 수 있는 그런 날들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뒤돌아선 나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혼자 사는걸 싫어하고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게 나약한 것인지, 나약한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인지(33쪽) 묻는 유리의 질문에 저 역시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혼자인게 편한 날들, 누군가가 그리워 울적한 날들, 함께 있어도 외로운 날들을 누구나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답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의 나]는 특정할 수 없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추천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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