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살인
천지혜 지음 / 책과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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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이 예정된 삼십 몇 년짜리 주공 아파트. 곧 철거될 이곳에서 한때 살았던 승언이 구백삼 호에 다다르기 위해 이미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뒤로 하고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가파른 난간을 산악 로프처럼 부여잡으며 계단을 오릅니다. 애잔한 추억의 향기에 스며드는 피 냄새. 엄마와 동생, 셋이 살던 시절에 화목함 너머 그 인간이 들어오고, 여자 패는 소음과 비명으로 가득했던 집.

스물다섯 살의 승언은 커다란 현관 거울에 비춰진 나와 나를 똑 닮은 얼굴로 찾아온 요망한 저승사자를 만납니다. 현관문에 기역자로 달린 꺾쇠, 신발 끈으로 만든 둥근 고리, 그리고 상어의 벌린 입에 멸치가 빨려 들어가듯 거울에 쑥 빨려 들어간 모든 것이 반대인 거울 너머의 세상.

1년 전 스물네 살의 승언이 철거 예정인 주공 아파트의 집으로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다 임신 팔 개월의 몸으로 돌아옵니다. 열여덟 살의 동생 제언은 이모가 된다는 것에 기뻐하며 무심코 단발머리를 뒤로 넘기는 순간 이마에 보이는 끔찍하게 일그러진 상처를 안고 학원으로 가고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는 여전히 부재 중인 그 집에 의붓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동을 느끼며 들어갑니다.

거울 이쪽과 거울 저쪽의 삶이 평행을 이루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면, 결코 놓치고 싶지 않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다 고통받는 가족을 외면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쪽의 시간이 흐른 만큼 거울 너머의 세계도 시간이 흐른 채 희망을 품고 있다면 매 순간 선택의 결과를 확인하고 점점 늪에 빠지는 것처럼 행복을 맛보려는 시점마다 어두운 그림자가 죽음의 공포를 퍼트린다면 그건 결코 나은 선택이 아니라는 결론을 승언은 내립니다.

판타지 소설 같지만 어쩌면 현실에 대한 르포르타주 같은 [거울 살인]은 선택하지 않은 플랜 B의 세상이 거울 너머에 고스란히 보여짐으로써 혼돈과 두배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더이상 또다른 삶으로 건너 갈 수 없는 유일한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게 만들어버립니다. 모르는 척하고 외면하던 세상의 어두운 면을 직접 대면한 듯한 충격이 액면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이자 재력과 권력이 없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얼마나 허무한지 목도하도록 만드는 소설입니다. 짧아서 오히려 임팩트 있는 사회부조리에 대한 소설 [거울 살인]은 독특하고 새롭고 또 진부한 만큼 어려운데 좌우가 서로 엇갈리는 거울속 세상처럼 흥미진진 합니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 함께 고민하고 싶어지는 소설입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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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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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는 그 눈빛에 힘을 얻어 다윈에게 물었다.
˝다윈 넌 미싱 링크란 게 뭔지 알지?˝
다윈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류 진화의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잃어버린 연결 고리?˝라고 대답했다. (58쪽)

다윈 영은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고 1지구 소년들은 열세 살 겨울이면 프라임 스쿨에 입학 하기 위한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한 해 오만여 명이 시도하지만 매년 단 이백 명의 신입생만 뽑게 되어 있는 규정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200년 전통의 6년제 학교 프라임 스쿨은 대학에 상응하는 최고 고등 교육 기관 입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한달에 한 번, 둘째 주 토요일 아침 집에 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낸 후 월요일 아침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도록 돼 있어 다윈의 룸메이트 에단 역시 집으로 가기 전날인 7월 둘째 주 금요일 밤부터 할아버지 서재에서 빌려 온 초판본 책을 찾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공공재 취급을 받는 책과 양말, 그리고 ‘오래된 것들‘ 행사에 집에서 가져올 ‘오래된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는 자기 일에 몰입하는 에단을 보며 본격적인 다윈의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다윈 영의 아버지 니스 영은 문화교육부 차관으로 다음 대통령 출마까지 점쳐지는 유능한 인재 입니다. 친구인 제이 헌터의 30주기 추도식까지 매년 식을 준비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 다윈까지 꼭 참석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이는 지금 다윈의 나이였던 열여섯 살 때 9지구의 후디에 의해 살해 되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렀기에 이번 30주기 추도식에는 제이의 동생 조이와 헌터 노부부, 조이의 딸 루미와 제이의 친구이자 니스의 친구인 버즈 마샬이 참석했을 뿐입니다. 다윈은 언젠가부터 루미에 대한 마음이 생겼고 제이 아저씨의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은 루미를 만나기 위한 일 년에 단 한번 뿐인 기회였기에 달에 한 번뿐인 외출의 시간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에 불만이 없었습니다.

제이 삼촌의 죽음이 결코 9지구의 후디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는 루미와 ‘오래된 물건‘으로 할아버지 러너 영의 지하실 상자에서 ‘후드‘를 발견해 가져온 다윈, 다윈의 오래된 물건을 맘에 들어하며 자신이 가진 2년이 지난 놀이동산 입장권과 바꾼 레오 마샬, 이들이 앞으로 어떤 사건을 만들고, 60년전 다윈의 할아버지가 청소년이던 시절의 12월의 폭동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고, 또한 제이 헌터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견고한 방어벽 처럼 자신들을 둘러싼 1지구라는 특권지역 너머 8지구나 9지구의 멸종을 목도하는 시점까지 따라가 숨겨졌던 진실을 발견한 다윈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악의 기원‘과 정면으로 맞닥트렸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철저한 계급사회를 표방하고 있으며 기차와 자동차, 전화 등 현대 사회와 그리 동떨어진 과거도 아닌 세상이 배경임에도 어쩌면 과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심어준 책속 세상은 온갖 악행과 범죄를 하위 계층들이 사는 9지구나 8지구의 이들에게 떠넘기며 신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을 처벌하고 심판할 자격이 오직 자신들에게 있다는 오만을 펼칩니다. 법치국가를 표방하나 평등하지 않고 사회는 구조적으로 계층간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 합니다. 다윈은 태어날 때부터 최상위 계층으로 오직 1지구에서만 살아 왔으며 아버지 니스와 할아버지 러너 역시 그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한 다윈의 진화와 악의 기원이 어떻게 미싱 링크를 찾아가는지, 과연 진실을 받아들이고 고개 숙여 반성을 하는지 후드에 가려진 인물처럼 변신하는지 꼭 찾아보시길 다시한번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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