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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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우리가 배운 과목 중 지구과학이 있다. 지학이라고 줄여서 불렀는데 이 과목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지구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우주와 해양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땅 아래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흥미로운 주제다. 땅을 파들어가면 땅속에는 용암이 들끓는 지옥이 있다는 심연에 관한 막연한 공포는 과학이 발달한 지금의 우리에게는 종교적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핵이며 맨틀과 같은 지구 핵심부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며 땅 아래에 관한 다수의 호기심은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의 발밑에 있는 공간에 대한 그 알 수 없는 태곳적 신비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상념 속에 아주 매력적인 책 한 권을 만났다. 붉은 기운이 충만한 북 커버가 인상적인 땅속 세상에 관한 보고서 <언더랜드>는 제목 그대로 땅 아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저자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자연과 경관의 신비에 대한 관심 속에 직접 찾아가서 경험하고 느낀 그대로의 사실과 감정을 지면 위에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가는 자연 작가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땅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지학 수업시간에 배운 객관적 사실을 잠시 밀어놓고 책을 접한다면 땅속 세상에 대한 낯선 풍경이 흥미로움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p16

저자는 책을 통해서 지하라는 공간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제공한다. 책을 펼치고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키워드는 은신처, 생산지, 처리이다. 언더랜드는 인류에게 있어서 3가지의 키워드로 대변되는 공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은 몸을 땅 아래로 내려보내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함께 묻는다. 다양한 광물과 천연자원을 땅 아래로부터 추출하여 지상의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 또한 언더랜드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이다. 동시에 지상의 사람들이 쓰고 버린 각종 쓰레기와 핵폐기물과 같은 위험천만한 부산물 또한 지상의 사람들은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이렇듯 언더랜드는 망자와 그에 대한 기억들이 묻히는 곳이며 동시에 지상의 사람들에게 쓸 것을 공급하고 다시 그 소비된 쓸 것의 잔재와 죽음의 물질을 회수하는 종말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언더랜드는 산자와 죽은 자가 보이지 않는 유기적 관계로 엮어져 영원히 타자화할 수 없는 운명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 세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언더랜드의 숨겨진 의미를 밝힌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책의 내용이 우리가 중고교 시절 지학 시간에 배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독자는 잘 다듬어진 교양 과학 에세이 한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별히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 깊게 각인된다. 한 조림지에서 백자작나무 묘목을 솎아내자 함께 자라던 주변의 더글러스전나무 묘목들이 시들해지다가 죽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 생태학자들이 숲 바닥을 벗겨내고 땅 아래를 관찰한 결과 아무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곰팡이가 토양에 퍼뜨린 가늘고 옅은 균사의 난립이었다. 거미줄과 같이 연결된 엄청난 균사들은 나무뿌리에 접점을 갖고 나무 상호 간의 영양물질을 운반해 주는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곰팡이들은 광합성 산물의 일부를 빼돌려 자신들의 대사에 사용함으로써 마침내 곰팡이와 나무들 간의 거대한 공생관계를 형성해갔던 것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컴컴하고 어두운 지하 세계에 이러한 역동적인 생명의 활동이 있을 줄이야 지상의 사람들 중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이렇듯 언더랜드는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를 지나는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있어서 터부시되며 마냥 타자화하고만 싶은 제3의 공간이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금 언더랜드의 가치와 숨겨진 진의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좋은 것은 내어주고 모든 이들이 거부하는 부정적인 것들은 받아들이는 이 한없이 이타적인 공간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아래에 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스토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단지 한편의 잘 쓰인 과학 탐험기라고 보기에는 책이 가진 가치가 아깝고 아쉽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초딩들의 Why? 책을 통해서도 적지 않게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 쌔고 쌨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책의 감흥은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인과 관계로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들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통해 확인됨으로부터 온다. 언더랜드는 지상의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지상의 존재들 또한 언더랜드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사람들은 죽음과 기억을 언더랜드로 가져갔고, 그것을 통해 언더랜드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환전 받았다. 그리고 가지고 올라간 생명 에너지의 네거티브한 부산물들을 다시금 언더랜드로 가져가 반환했다. 돌고도는 순환과 인과관계를 통해 언더랜드와 지상의 존재들이 유무형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법칙이다. 더불어 언더랜드가 지상의 사람들에게 주는 겸손과 겸허함의 교훈을 놓칠 수 없다. 베일에 싸여 있던 절대적 무의 공간이었던 언더랜드가 지상에 값없이 베푸는 시혜는 너무나 크고 광대하다. 자연의 은혜를 망각한 채 끊임없는 개발을 통한 파괴가 미덕이 된 세상 속에서 암흑의 언더랜드가 보여주는 겸손과 겸허의 태도는 지상의 인간들이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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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 - 화폐가 세상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서수지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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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다. 계약 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와 같이 세입자들을 위한 새로운 부동산법이라고 한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찬반 의견이 뜨겁고 이권 당사자들은 서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곤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특히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정말 '돈'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는 남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러한 상념 속에 만난 책은 바로 이 돈에 관한 역사를 다룬 저작이다. 책을 받아들고 저자의 이름이 눈에 익었기에 찾아보니 오래전 읽었던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쓴 '미야자키 마사카츠' 교수였다. 이전 책을 제법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본서 또한 기대감을 가지고서 펼친다.

 

총 크게 6장으로 나뉘어서 초반부에는 돈의 탄생과 문명과의 관계를 통해 인류 문명의 태동과 함께 돈이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해왔는지를 흥미롭게 기술한다. 이후 대항해 시대를 통해 유럽의 각국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그곳에서 파생되는 각종 자원과 물품들이 어떻게 각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다. 한 예로 네덜란드에서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튤립은 원래 오스만 제국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품종의 꽃이다. 그런데 이 튤립의 알뿌리가 변종을 일으키면서 독특하고 화려한 무늬의 튤립이 양산되기 시작했고, 이것을 엄청난 돈벌이의 기회로 삼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튤립의 변종 품종들을 다량으로 수입했다. 이후 튤립의 엄청난 가격 폭등으로 말미암아 너도나도 튤립을 사들이려는 붐이 일어났다고 하니 일개 밭에서 자라는 꽃송이 하나도 돈이라는 가치로서 높이 평가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또한 우리가 먹는 수많은 음식 속에 빠지지 않고 첨가되는 설탕 또한 엄청난 금액의 경제적 부를 창출시킨 품목이었다는 사실과 그 설탕이 노예무역과 연관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행하는 유럽의 농장주들은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전염병으로 선주민의 수가 감소함으로써 노동력을 얻지 못하자 아프리카 노예들을 사들여서 늘어나는 설탕의 수요를 충당했고, 이로 인해 그들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다. 설탕이 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그로 인해 노예 무역이 더욱더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돈을 통해 인간의 존엄도 손쉽게 폐기될 수 있다는 돈의 어두운 면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나는 경제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경제 관련 이야기들은 내게는 머나먼 이국의 언어다. 경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경제관념이 이처럼 없다. 그래서 가끔 돈의 기준은 무엇일까? 유아적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들은 바로는 금의 보유량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금이라는 것도 일종의 광물이고 사람이 직접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렇게 큰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매우 무식한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금본위 체제와 국제통화로서의 금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배가 고프다고 당장 금괴를 씹어먹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살 수 있도록 매개체의 역할을 해주는 종잇조각으로서의 돈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금이며 그것은 반드시 희소성이라는 필수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 반드시 희소해서 구하기 어려워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 데나 굴러다니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맹이를 가지고 가서 음식을 사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제정신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제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영향력있는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자신의 수하에 있는 간부급 공무원들 가운데 집이 2채 이상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할 집만 빼고 나머지 집들은 모두 매각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단다. 부동산이 투기의 온상이 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부동산뿐 아니라 돈 자체가 투기가 된 오랜 역사를 책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돈이 투자와 투기의 외줄타기를 해 온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더불어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 현물을 직접거래하는 시기를 지나서 무엇인가 손쉽게 가볍게 다양한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화폐의 탄생 그리고 그에 얽힌 여러 가지 다양한 비화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당장 지금이라도 생활필수품을 장만하고 밥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누구 하나 이 세계의 경제 구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우리 지갑 속 돈이 지나온 역사를 읽어보는 것도 이번 여름 휴가철을 맞아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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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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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책 한 권이 있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읽어본 적은 없더라도 책 제목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그 책은 바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죽음에 대한 단상을 매우 절제된 언어 속에 녹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이 책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이 낳은 또 다른 소설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을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생을 즐기라고 말한다. 희망 가득한 삶으로의 초대와 메시지가 우리 주변에 지금처럼 널려있었던 적이 또 있었는가? 웰빙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잘 먹고 잘 사는 삶에 관한 식상한 단상들이 넘쳐나는 세대 속에서 죽음은 마치 터부시되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은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역설이며 어폐지만 저자의 책을 펼쳐드는 순간만큼은 그것이 결코 역설적이지 않으며 마치 아침 햇살을 즐기듯 매우 자연스러운 것임을 느낀다.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찌 진정한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의 책 전면을 관통하는 숨은 메시지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책에서만큼 죽음은 곧 삶이며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의 본질이다.

주인공 '애니'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여성이다. 8살 때 놀이공원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장애를 입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다양한 성장 과정 속에서 상처와 시련을 경험한다. 그녀는 늘 자신의 삶이 실수의 연속이며 자기의 실수가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아프게 만들었다는 말할 수 없는 자책감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20대 초 한 번의 결혼 실패와 함께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깊은 상처와 상실감이 그녀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지만 이후 중학교 동창이면서 오랜 시간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남자 '파울로'를 만나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식 다음 날 열기구를 타러 갔다가 열기구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며 죽음의 문턱 가운데 가게 된다. 그녀가 눈을 뜨고 그곳이 천국임을 인지한 후 그녀는 차례로 다섯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일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이 죽기 전 세상 속에서 만난 의미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용서해야 할 사람과 사랑해야 할 존재들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웰빙적 의미의 삶만을 강조하다 보니 진짜 삶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놓쳐버리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고 이제서야 인생의 참의미를 알았기에 이제는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순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발견하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죽음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라는 실재를 더욱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소설에서만큼 죽음은 터부시될 만한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진정 어린 눈으로 관조하며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그 무엇 이상이다. 자신의 실수와 상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던 일들. 그로 인해 자신 또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자책감의 굴레와 속박 속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애니의 모습이 보는 내내 마음 한켠을 아리게 만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의 시간 속에서 우리 주변의 진정 사랑하지만 결코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자기의 삶이 지닌 그 고귀한 가치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주인공 애니의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는지?

상처받은 존재의 아픔은 상처받은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애니의 삶의 모습과 그녀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들의 모습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낳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과 연을 맺으며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저자 미치 앨봄은 눈앞에 작은 것을 좇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애니는 자신의 삶에 대해 "다 괜찮아요!"라고 천국이 들려주는 위로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당당하게 살아내기 위하여 일어난다.

작은 책 한 권이 마음속에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책장을 덮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떠올랐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가장 소홀히 대했던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나와 언약으로 맺어진 이들과의 깊은 사랑을 독려하게 되는 작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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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리어 왕 - 160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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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문호 하면 당연히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걸작 중에서 우리는 주저함 없이 4대 비극이라 불리는 네 편의 희곡을 꼽게 되는데 본서 <리어 왕>은 햄릿, 오셀로, 맥베스와 더불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초판본 커버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 고풍스럽고 중후한 이미지를 부활시킨 미르북 더스토리의 이 책을 받아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편다. 저자 셰익스피어는 책을 통해서 인간 세상의 무정함과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 인간 군상 추악함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권력에 대한 말할 수 없는 탐욕은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도 헌신짝처럼 던져버릴 수 있음을 셰익스피어는 책을 통해 당시와 지금의 독자들에게 하나의 교훈으로서 전달하는 수고를 마다않는다.

희곡 형식으로 구성된 책은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의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한편의 연극을 관람하는 것과 같이 생생하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언어의 마법사답게 셰익스피어의 수려하고 지적인 문체는 위대한 고전으로서의 품격과 가치를 드러내주기에 손색이 없다. 고전이 가지는 난해함과 의미 전달의 고루함이라는 편견은 이 책을 집어 들고 읽는 순간만큼은 저 멀리 던져버려도 좋다!

 

 

세 딸을 둔 영국의 리어 왕은 자신에게 부모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쪼개어서 양도하고, 자신은 권력의 뒷자리로 물러나 딸들의 봉양 속에 편안한 여생을 꿈꾼다. 큰딸 거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갖은 아양과 아첨으로 아버지의 환심을 사서 많은 영토를 물려받지만 막내딸 코딜리어 만큼은 아버지를 자식 된 도리로서 사랑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밝힘으로써 아버지의 분노를 사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던 프랑스왕과 결혼 후 단 한 푼의 지참금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로부터 내침을 당한다.

이후 이미 모든 영토와 권력을 이양 받은 두 딸들은 아버지의 봉양을 귀찮아하며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은 아버지 리어를 괄시하며 경멸한다. 경솔하게 권력을 이양한 후 하루아침에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해버린 리어는 이제 반 정신질환자가 되어버린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리어 왕의 비극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등장시키는데 그것은 리어 왕의 충실한 신하인 글로스터 백작과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는 자신의 신분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복형이자 아버지의 적자인 에드거가 아버지 글로스터 백작의 지위를 노리고 반역을 꾀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아버지 글로스터로 하여금 형을 제거하도록 부추긴다. 이로 인해 에드거는 아버지의 칼날을 피해 미치광이로 분하여 도망자로서 유리한다. 반면 에드먼드는 형인 에드거를 제거하고 자신이 적자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넘어 이제는 아버지마저 제거하고 자신이 백작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 리어의 두 딸 거너릴, 리건과 반역의 손을 잡기에 이르는데...

 

 

책의 결말은 악인들의 죽음과 선인들의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말 그대로 비극 그 자체로서 끝난다. 인간이 가진 끝없는 탐욕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그 탐욕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임을 발견하게 된다. 세 치 혀가 놀리는 아첨에 자신의 권력을 내버림과 동시에 충직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충신과 사랑하는 딸을 내쳐버린 리어 왕의 멍청함과 무지함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텅 빈 깡통 같은 존재인지에 대한 존재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음모와 술수, 거짓과 탐욕 거기에 어리석음이 더해져 피할 수 없는 가족 비극사 한편을 만들어냈다. 돈에 대한 탐욕과 쾌락으로 점철된 두 딸 거너릴과 리건 그리고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는 돈과 욕정이라면 영혼까지도 팔어버리는 지금의 세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짐승들도 하지 않을법한 윤리와 인륜이 실종된 작금의 세대가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시대이기에 16세기를 살다 간 셰익스피어가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던져주는 메시지에 소름이 돋는다.

믿음과 신뢰의 실종으로 인한 끊임없는 의심,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과 욕망에 기인한 미움과 반목 급기야는 살인까지...지금의 세대를 어쩌면 이토록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자연스레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셰익스피어가 셰익스피어인지에 대해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적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을 이처럼 예리하게 베어낸 작품이 또 있을까? 위대한 고전의 향기가 지적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본서와 함께 올여름밤 인간 본연의 속살을 마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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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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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세계 영화팬들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다름 아닌 보는 내내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케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손등을 꼬집어봐야만 했던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친다는 전혀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제작된 영화는 국내에서만 거의 6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놀랄 말한 영화가 생각나게 만드는 책 한 권을 만났으니 그 책이 바로 오늘 리뷰하게 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작가이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선호하지 않기에 그의 작품을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래전 출간되었던 본서가 이번에 합본 특별판으로 재간되었고, 좋은 기회가 생겨서 책을 펼쳐드는 순간 왜 한때 한국 서점가에 '무라카미 붐'이 일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본서는 의식의 중첩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로서 느낌이나 분위기가 서두에서 이야기한 영화 인셉션의 그것과 비슷함을 느끼게 만든다. 소설은 두 가지의 제목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느낌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 속에서 각기 평행선을 그으며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결말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두 개의 이야기가 마치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잘 짜인 직조물의 그것과 같이 질서정연하다. 그리고 소위 시쳇말로 독자들을 '멍' 때리게 만드는 소설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반전을 보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천재성에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감탄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어느 날 정체불명의 뇌 생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老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의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2개의 의식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인간의 의식 구조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세계를 향해 열려있다는 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오래전 자신을 포함한 26명의 사람들이 어느 조직에 의해 선발되어 자신들의 뇌가 이용된 생체실험의 대상자였음을 듣고 알게 된다. 실험 직후 25명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주인공 혼자만 살아남아 인간 의식이 가진 잠재적인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이 가진 비범한 능력에 대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취하려고 덤벼드는 각기 다른 조직들의 위협 앞에서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인지하게 되는데...

더불어 '세계의 끝'은 어느 특정한 가상의 마을이라는 공간을 상정한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의 완결성과 또 다른 인격을 대변하는 본인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는 불사의 존재들이다. 더불어 마을에 존재하는 전설 속 동물 일각수들은 죽음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반쪽자리 의식과 꿈을 자신의 두개골 속에 간직한 채 죽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마을에 갇혀서 일각수라는 전설 속 동물의 두개골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꿈을 읽어내는 '꿈 읽기'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언젠가는 자신의 잃어버린 그림자를 되찾아서 이 불사의 공간에서 탈출하겠다는 계획을 품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나가게 되는데...

 

 

79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소설책 한 권이 뿜어내는 저작의 무게감이 대단하다. 소설이라고 하면 킬링타임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르로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책이 가진 저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생각을 훔치는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활약 앞에 열광했던 영화 인셉션에서와 같이 결코 결말을 예상할 수 없는 각기 다른 두 세상의 주인공들이 펼쳐가는 스토리는 매우 흥미롭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덮을 때쯤 잘 짜인 각본 한편을 읽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끝이 결말에서 서로 만났는가? 만나지 않았는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실제로 이 책의 후기를 보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의견과 해석이 분분하다. 책을 읽고 난 후까지도 독자로 하여금 논쟁의 여지를 던져주는 책이 가진 그 원초적 매력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본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한 박수갈채가 책이 출간된 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이 아닐까?

결말의 합치점과 그 이견에 대한 이슈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에 대해 할 말은 많다. 한 명의 평범한 독자로서 책을 덮으며 내가 느낀 책에 대한 단상은 인간 의식의 중첩을 통해 작가 하루키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고 구조와 의식 세계의 불안정함을 꼬집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머릿속에 단 하나의 생각만을 간직한 채 그것만을 위해서 달려갔던 이전 세기 사람들의 전통적 사고가 가지는 가치는 나와 가정, 기성 사회와 국가에 대한 바른 이미지가 전부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발달하며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과 사고 구조 안의 의식 또한 다양한 형태로 분화와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즉 의식의 분열은 전통적인 인간의 사고가 가지고 있었던 나와 가정, 사회와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놓은 것이다. 근현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소설을 통해 교묘하게 비꼰 하루키의 혜안이 돋보이면서도 조금은 무섭다. 소설 속에서는 26명 중 1명만이 자신의 뇌 속에 2개의 각기 다른 의식의 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는 더 많은 익명의 대중들이 이러한 다중적이고 이중적인 의식의 중첩을 갖고 이 사회를 활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머리털이 곤두선다.

 

우리를 둘러싼 삶은 부요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내면과 의식은 더없이 팍팍해진 현실을 생각할 때 어찌 보면 소설의 제목과 같이 세계의 끝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흐릿해진 의식의 흐름을 파리한 손으로 부여잡고 따라가는 메마르고 건조한 현대인들에게 이 소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숨겨진 의미를 알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본 천재 작가의 책 한 권을 통해 무더위를 날려보내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될 것 같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의 서평 제안을 통해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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